노동자 돌연사 관련 역학조사 결과…사태의 핵심인 화학물질 관련성 밝혀내지 못해
▣ 인천=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낮에는 참을 만했지만 밤에는 혹독했다. 해가 지면 천막 안으로 차가운 칼바람이 몰아쳐왔다. ‘한국타이어 유가족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조호영 위원장은 유가족 16명과 대전지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농성이 시작된 것은 지난 2월18일이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떼죽음과 작업환경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기 위한 한국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최종 결과를 3일 앞둔 시점이었다.
뜬눈으로 밤새운 유가족들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조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년2개월 전에 숨진 아들이 생각났다. 아들은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다른 날은 몰라도 그날만큼은 기억이 생생하다. 2006년 12월28일 집에서 점심을 먹던 중 한국타이어 직원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동권이가 위독하니 대전으로 빨리 와달라”고 했다. 집은 충북 청주였고, 회사는 대전이었다. 그해 스물아홉이던 아들은 입사 이후 줄곧 대전에 있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건장한 체격에 운동을 좋아하던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거라며 대전으로 차를 몰았다.
대전에 도착한 조씨는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안내를 받았다. 직원들은 그를 대전 을지병원 영안실로 안내했다. 아들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의사는 “조동권씨는 오늘 새벽 5시께 회사 기숙사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동권씨는 회사에 입사한 지 정확히 363일 만에 숨졌다. 스물아홉의 젊은 죽음이었다.
죽기 전 동권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다.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조씨는 근무 환경과 아들의 죽음에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산재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회사, 지방 노동청,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언론사 등을 찾아다니며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그 와중에 한국타이어에서 아들과 같은 젊은 죽음들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모두 13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그중에 심장질환은 7명이었다. 유가족들은 모여 대책위를 꾸렸다. 그들의 사연은 ‘한국타이어 괴담’으로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문제가 확산되자 2007년 1월 대전지방노동청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하 연구원) 쪽에 한국타이어 노동자 돌연사와 관련한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연구원은 그해 11월28일 1차 설명회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업무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가, 올해 1월8일 2차 설명회에서 말을 바꿨다. “작업환경 조사에서 돌연사의 공통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최종 결과는 어떤 쪽으로 나올까. 유족들은 긴장했다.
조씨는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죽은 아들의 얼굴과 연구원의 발표 내용이 겹쳐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월20일 아침 유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최종 발표가 예정된 인천 부평구 한국산업안전공단으로 향했다. 공단 회의실에는 회사 쪽 사람들과 노동조합원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회의장에 들어서면서도 최종 발표가 연기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어요.”
유기용제 중독은 왜 빠졌나
그날 오후 2시 연구원은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한 심장성 돌연사 등 질병 사망은 직무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박정선 직업병 연구센터 소장은 “심장성 돌연사의 유발 요인으로는 고열이, 관상동맥질환 위험 요인으로는 교대작업 및 연장근무 등으로 인한 과로가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아!” 유가족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의 가류공정 노동자들은 여름에는 40℃ 이상의 고온에 시달렸다. 뜨거운 고무를 가공하면서 발생하는 수증기가 열기를 더욱 높였다. 11월까지도 가류공정이 진행되는 작업장 주위는 30℃ 이상의 고온이 유지된다. 지난 1월 대전에서 만난 한 한국타이어 노동자는 “여름에 온도가 너무 높아 숨쉬기가 곤란할 때도 있다”며 “작업복은 항상 땀에 흠뻑 젖어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한국타이어에서 혈액 공급이 장애를 받아 생기는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사무직에서는 발생되지 않고, 현장직·기술직·연구직에서만 발견됐다고 밝혔다. 또 퇴직 노동자에 견줘 현직 노동자에게서 많이 발견됐다.
그러나 연구원은 화학물질이 심장성 돌연사와 심혈관질환을 일으켰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박 소장은 “심장성 돌연사의 유발 요인으로 알려져 있는 염화불화탄화수소, 메틸렌클로라이드, 질산염은 역학조사 당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산화탄소와 이황화탄소 역시 조사 당시 정량 한계 미만이었다”고 발표했다.
한국타이어에서 15년간 근무한 정승기씨는 이같은 발표에 “노동자들의 돌연사가 직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역학조사에 앞서 한국타이어가 공장을 청소하고 환기를 시켰기 때문에 ‘조사 당시’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응용 피해자대책위원장도 “심장질환과 암 등으로 돌연사한 사람 외에도 현재 유기용제 중독으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많다”며 “이 부분에 대한 조사는 왜 빠졌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두용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은 “유기용제 중독은 이번 역학조사의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전지방노동청으로부터 의뢰받은 것은 심장질환과 암 등으로 발생한 돌연사에 대해 공통적인 원인을 찾는 작업뿐이라는 것이다. 박 원장은 “유기용제 중독 문제가 새로 제기된 만큼 구체적인 징후가 발견되면 당연히 역학조사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타이어의 ‘밝은’ 보도자료
결국 명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구원은 젊은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따라서 그들의 죽음이 ‘직업병’이며 ‘산업재해’에 해당된다고 결론짓지 못했다. “심장질환과 암은 개인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산재 승인 여부는 개별적으로 사안별로 판단해야 합니다.” 조호영 위원장은 “조사 결과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며 “죽은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를 추가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타이어는 최종 결과 발표가 끝나자마자 ‘역학조사 최종 결과 발표에 따른 한국타이어 공식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국타이어의 자료에는 ‘화학물질에 의한 심장성 돌연사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판명’ ‘법과 원칙에 의해 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예정’ ‘유관기관의 개선 권고 사항은 이미 95% 이상 이행 완료’ ‘환경·안전·보건 분야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 수준을 지향할 방침’ 등의 구호들이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그들은 연구원의 결과 발표를 면죄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젊은이들의 이른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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