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봉동 구간 개통에 냉담한 반응 보이는 언론…철도에서 시작해 철도에서 끝나는 북한 경제를 보라
▣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교통정보센터장
버스 차창 너머로 판문역이 보인다. 남북 경의선 문산~봉동 간 화물열차 개통식이 열리는 그 역이다. 역이 보이는 순간, 얼마 전에 고등학생 조카에게 선물한 책의 이름이 떠올랐다. 독일 작가인 유티 리히터가 쓴 라는 책이었다. 제목을 보고는 기차역 너머에 행복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화물열차가 출발할 북쪽 역을 바라보면서, 화물열차 개통을 계기로 저 역 건너편 북녘 땅에 더 나은 내일, 미래의 행복이 다가오리라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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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화와 전력난 해결 위한 처방
지난 12월11일 화물열차 개통식이 열린 북쪽 판문역 행사장은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질척거렸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장내에 난로까지 설치됐다. 하지만 행사 열기는 정말 뜨거웠다. 특히 남북 철도 관계자들은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민족끼리 대단한 사업을 이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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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하역 장비를 통해 컨테이너가 화차에 실리고, 북쪽 역무원의 출발 신호로 남쪽의 기관차가 기적소리와 함께 출발할 때였다. 꽃종이가 휘날리는 가운데 철도공사의 기관차가 열 량의 화차를 연결한 채 판문역을 뒤로하며 서서히 움직이는 광경은 가슴 뭉클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간 우리 민족에게 철도는 이별과 분단의 아픔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남아 있었다. 역이나 기찻길이 등장하는 노래나 영화 가운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 철도는 재회와 통일을 노래하는 평화의 사자로서 우리 곁에 분명히 다가와 있었다.
수많은 남북한 보도진들의 취재 열기는 대단했지만, 방송과 신문매체에 나타난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대선 열기에 밀려, 모 재벌기업의 금융사건에 가려, 신문의 구석진 곳에 옹색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철도인의 시각에서, 북한 연구자의 처지에서 볼 때는 대단한 사건이었건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개통식 이후 남북 간에 빈 열차만 운행된다는 질타성 기사들이 여기저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북한의 개성공단을 출발한 화물이 부산항으로 수송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로부터 불과 2~3일 만에 냉소적인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열차가 움직이는 것은 인체에서 혈액이 순환되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화물 수송의 80%, 여객 수송의 60%를 철도가 담당하는 철도 중심 국가다. 도로 수송은 부족한 에너지 문제와 주민 통제를 위해 30km 이내의 단거리만 담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철도는 혈액이 순환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교통망이다. 지금 북한의 철도는 시설의 노후화로 인한 수송 능률 저하, 경제난 이후 생산시설의 마비와 전력난, 그리고 화물 부족 현상이 결합된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만성적인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 수송, 개성~신의주 간 철도 현대화, 올림픽 응원열차 운행이라는 고강도의 처방까지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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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중심으로 한 교통수단의 정상적인 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북한 경제의 회생을 기대할 수 없다. 오죽하면 생산은 곧 수송이고, 수송은 곧 생산이라는 교시까지 등장했겠는가?
향후 남북 교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실제적으로 북한 경제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철도망 중심의 교통망 구축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북한 간 화물열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봄부터 식량·비료·중장비 등 수송
선군정치가 국가 통치의 최상위 어젠다인 북한에서 ‘철도’는 군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중후장대(重厚長大)한 군수물자를 효과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최적의 교통수단이며, 모든 군부대와 군수시설로 연결되는 열차인입선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북쪽 군부가 남북한 철도 연결 사업에 번번히 ‘딴죽’을 걸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북방 얼음산과 같던 군부도 남쪽 열차가 북쪽 군사시설 지역을 통과해 개성까지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상태까지 오게 됐다. 비록 지금은 빈 화물열차지만 이 열차 운행을 통해 북한 군부가 철도 운행이 북한의 체제 유지에 아무런 장애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면, 비로소 철도를 통한 관광객 수송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빈 화물열차도 봄소식이 북녘에서 전해올 시점부터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확신한다. 우선 40만~50만t의 대북 식량차관과 비료 물동량이 철도를 통해 수송될 것이며, 개성공단 1단계 건설자재와 2단계 개발을 위한 중장비 수송도 이루어질 것이다. 한강 하구의 공동개발이 본격화되면, 도로를 통해 수송되던 모래 등의 건자재 반입도 철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필자는 지난 7월, 북한 단천 지역 자원개발 조사를 위해 현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단천항부터 광산 지역인 검덕, 대흥까지의 총연장 약 90km에 건설된 금골선이라는 철도를 조사했다. 전체 구간 중 3분의 2인 60km는 일제가 1930년대에 건설한 것이며, 나머지 30km는 북한이 지난 80년대에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눈을 의심할 만한 것이 있었다. 북한이 80년대에 건설한 철도 현황이 일제가 30년대에 건설한 철도 구간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일명 속도전이라는 구호 아래 부족한 자재로, 노동력을 집중 투입해 무조건 빨리 건설했기 때문이다. 단천 지역에는 매장량 세계 2위인 마그네사이트와 요즘 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아연 등이 대량 매장돼 있다. 이러한 자원 개발이 철도, 항만과 같은 철도망 현대화와 연계된다면 남북경협의 전망은 어둡지만은 않다. 적지 않은 남쪽 민간기업들도 북쪽 교통 인프라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정상적으로 보장된다면 북쪽 자원개발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경제로 접근하는 철도 현대화 사업을
향후 북한 철도망에 대한 지원은 물동량이 창출될 수 있고 경제성이 확보될 수 있는 노선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개보수된 노선은 남쪽의 우선적인 이용이 전제돼야 한다. 북쪽에는 경제 회생의 기회가, 남쪽에는 투자를 통한 이윤 창출이 보장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철도 현대화 사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철도사업은 ‘관’의 논리보다는 ‘민’의 논리가 사업을 주도하며, 민족이라는 개념에 호소하는 사업이 아니라 경제라는 개념에서 접근하는 사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화물열차 개통식은 끝났다. 성대한 기념식이 끝난 판문역 건너편에는 분명히 내일의 희망과 꿈이 보였다. 북해와 대서양의 넓은 바다를 동경하는 대륙을 향한 철도의 불끈거리는 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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