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의 진단과 전망…“과민반응이나 지나친 우려는 금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미국에서 비롯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세계 각국으로 퍼지는 양상은, 긴밀하게 얽혀 강한 전염성을 보이는 국제 금융시장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미국 → 캐나다 → 독일 → 오스트레일리아 → 프랑스…. 한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어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에 살얼음 기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한바탕 퍼부은 뒤 지나갈 소나기일까,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쳐 치명상을 입힐 충격파가 될까? 다양한 국내외 금융 정보가 모이는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동걸(54) 원장에게서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한 의견과 전망을 들어봤다. 이 원장은 인터뷰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규모가 크지 않아 감내할 수준이라고 본다”면서도 “이게 증권 발행으로 이어지면서 파생금융 상품으로 전환돼 위험 규모를 잘 파악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은행들이 충격을 흡수할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어 과민반응이나 불필요한 우려는 금물”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금융연구원 은행팀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올 7월부터 한국금융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인터뷰는 8월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8층 원장실에서 이뤄졌다.
쓸데없는 위험 증폭시키지 말아야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진 배경은 뭐라고 봐야 하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준 뒤 그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다. 그것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증권화해 팔아 자금을 조달한다. 이른바 MBS(주택저당증권)다. 주택담보 대출자의 신용도에 따라 원리금을 잘 갚는 이들은 ‘프라임’으로 묶고, 신용도 떨어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 게 ‘서브프라임’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 덕에 신용도가 낮은 이들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혜택을 얻는데, 아무래도 리스크가 크다 보니 경기가 나빠지면 ‘디폴트 레이트’(부도율)가 현실화한다. 그런 과정에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과민반응한 것 아닌가 한다. 담보대출의 상환이 제대로 되겠나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그러니 (MBS를) 환매하려고 하는데 가격 계산이 제대로 안 돼 환매에 응하지 못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쇼크(충격)가 온 거다.
미국 경기가 그렇게 나빴는가?
=경기는 늘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디폴트 레이트가 올라갔다기보다는 올라갈 확률이 커지면 금융시장이 미리 반응하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 강도는 어떻게 보는가?
=대략 알려진 걸 보면, (미국) 전체 모기지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비중은 10% 남짓이고, 그중 부실이 17~18% 정도이다. 부실한 서브프라임은 전체적으로는 1.7~1.8%라는 얘기다. 실제 부도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 (충격을) 흡수하고 감내할 상황이라고 평가함에도 현실적으로 그 부분에서 부도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니 과민반응 → 환매 사태 → 유동성 위기의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게 금융시장이다.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적절히 공급하면 본질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 문제만 남아 감내할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고 나 또한 그렇게 본다. 그런데 문제는 모기지가 증권 발행으로 이어지면서 파생금융 상품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파생금융 상품의 특성은 위험을 잘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게 더 큰 위험으로 발전한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적극 나선 게 오히려 위기감의 신호라는 견해도 있다.
=여태까지 나타난 전체 모기지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또 그중의 부실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부실 부분이 전부 손해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금융시장의) 과민반응을 진정시켜 쓸데없는 위험을 증폭시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주식시장, 조정 국면 펼쳐질 듯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의 민간소비를 비롯한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줄 요인이라고 보는가?
=경기 전문가가 아니어서 단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힘들지만 각계 의견을 취합해 판단해볼 때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엔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의 엔화로 고금리 통화를 매입해 운용한) 청산에 따른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갑자기 청산돼 돈이 빠져나가면 동요가 생기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국제 금융시장의 동요로 생기는 문제일 테니, 선진국의 금융당국 수장들끼리 조정해야 할 사안이다.
국내 주식시장은 이미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전체 금융시장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사안이라고 봐야 하는가?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입을 손실액은 크지 않다(국내 은행권이 미국 주택저당증권 및 이에 기반한 자산담보부증권(CDO)에 투자한 금액은 7억달러 정도로 파악돼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본다. 그래도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영향은 있을 수 있다. 둘째로 아직 서브프라임의 위험 크기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있다. 그런 불확실성이 걷힐 때까지 널뛰기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상당 부분 올라 조정될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세 요소가 겹치면 일정 기간 주식시장에서는 조정 국면이 펼쳐지지 않을까 한다.
서브프라임의 위험 크기가 불확실하다는 얘기는 어떤 뜻인가?
=파생상품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전체 부실률이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파생상품의 위험성은 예측하기 곤란하다. 파생상품이라는 게 이리저리 꼬아놓은 것이어서 파악이 잘 안 된다는 본질적인 속성이 있다. 움직임의 진폭도 크고…. 예컨대 100조원의 주택담보 대출이 나갔고, 90조원은 원리금 상환이 잘되는데 10조원은 잘 못 갚는 상황이라고 하자. 대출 나간 걸로 끝났다면 10조원 부분에 대해서만 위험을 감내하면 되지만, 100조원 전체가 증권화됐다면 사정이 다르다. 이게 안 돌아가기 시작하면 100조원 전체가 충격을 받아 직격탄을 맞는다. 일종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다.
국내에도 주택담보 대출 규모가 300조원에 이를 정도로 많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주택담보 대출의 증권화 속도가 느려 MBS는 거의 없다. 이제 막 역모기지(주택연금)가 시작되는 단계다. 주택담보 대출 자산을 증권화해 판 미국과는 시장 구조가 다르다.
주택담보 대출 충격 없을 것
국내 금융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인가?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주택담보 대출로 충격을 받는다? 국내 경기가 정말로 나빠져서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다든지, 집값이 엄청나게 폭락해 집을 팔아서도 상환을 못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은행들이 충분히 충격을 흡수할 능력을 갖고 있다. 금융시장에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게 있다. 망한다, 망한다 하면 진짜로 망한다. 과민반응이나 쓸데없는 우려는 금물이다. 금융기관의 자본금이나 이익 규모, 현재 경제 상황으로 보아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큼 크지 않다고 본다.
은행들이 주택담보 대출 금리를 8% 가까이로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주택담보 대출 규모가 300조원이라면 1%포인트만 올라도 3조원의 부담으로 돌아오기에 작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충격으로 받아들여져 부실의 연쇄화로 위기를 불러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전체 집값에서 담보대출의 비중은 50%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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