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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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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도 굵은 인연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BBK 주소지에 2000년 LKe뱅크 들어서… 2001년 이 후보가 대표 사임하며 관계 정리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차기 대통령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그리고 회삿돈 384억원을 빼돌려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지금은 미국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경준(41)씨.

한때 같은 회사에서 동업자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했던 두 사람은 지금은 전혀 상반된 삶을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거액의 사기 사건에 대해서도 상충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김씨는 6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교포 1.5세대다. 미국 코넬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전공했고 시카고-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졸업 뒤에는 살로먼스미스바니와 모건스탠리 등 대형 증권사에서 일했다.

여러 언론에서 화제가 된 수익률

이곳에 근무할 때 김씨는 파생상품 거래, 특히 차익(아비트리지) 거래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김씨는 국내에 돌아온 뒤에도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관련업계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1997년 주가지수가 29% 하락하는 동안 주식시장에서 수익률 75%, 2000년 주가지수가 74% 하락하는 동안 수익률 31%를 기록했다는 일화는 여러 언론을 통해 소개됐을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김씨의 상사로 함께 근무한 홍아무개씨는 이같은 김씨의 수완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홍씨는 “회사에 근무할 때는 겉으로 드러난 실적이 좋으면 유능하다고 평가를 받는데, 실적이란 것이 순전히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한때 김씨가 대표로 있던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공동대표로 거론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양쪽의 주장과 언론 보도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 우선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김씨의 친누나인 에리카 김이 원래 이 후보와 가까운 관계였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에리카 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에리카 김은 1995년 10월 서울 힐튼호텔에서 이라는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이 후보가 이 자리에 참석해서 에리카 김과 축하 케이크를 함께 자르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일부 언론에 소개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 후보가 김씨를 알게 된 것도 에리카 김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후보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교회 장로이자 권사였던 김씨 부모의 당부가 있었고, 김씨 역시 그 분야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함께 사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일하고 있던 1999년 (이 후보의 측근인) 김백준씨가 연락을 해와 이 후보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 후보와 김씨 사이의 문제는 두 사람이 관계된 회사가 설립되기 시작한 시점인 1999년부터 출발한다. 우선 1999년 11월 김씨가 대표이사로 등록된 BBK가 세워진다. BBK는 서울 중구 삼성생명빌딩 17층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100% 지분” vs “아무 관련 없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0년 2월18일 같은 주소지에 LKe뱅크가 들어섰다. 확인된 사실만 놓고 본다면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는 LKe뱅크에 공동대표로 함께 취임하며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01년 3월 BBK에 대한 금융감독원 조사가 시작되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김씨가 펀드 운용보고서와 정산지시서를 위·변조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BBK는 투자자문업 등록취소 처분을 받고 말았다. BBK등록 취소 결정으로 직격탄을 맞은 쪽은 BBK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 삼성생명, 심텍, 다스 등의 업체들이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 즉 BBK와 LKe뱅크의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 후보의 큰형 상은씨, 그리고 처남 김재정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주)다스도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심텍 역시 50억원을 여기에 투자했다.

이 후보와 BBK의 관계도 의혹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LKe뱅크가 BBK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지주회사”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 쪽 주장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 후보 쪽은 그동안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같은 일련의 의혹의 핵심은 결국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BBK 사건’에 이 후보가 개입했느냐, 특히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데에 이 후보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는 부분으로 모아진다. 김씨는 이에 대해 “이명박 회장님이 투자를 전부 유치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와 옵셔널벤처스코리아 공동대표로 거론됐던 홍씨 역시 “펀드 모집에 이 후보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누구든지 일정 수수료를 받고 펀드를 모집할 수 있고 권유할 수도 있는데, 그 사실만 가지고 이 후보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즉 김씨와 함께 사전에 모의하고 투자자를 모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경력과 이름 때문에 손잡았던 두 사람

BBK 사건에 대해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맡기고 있는 이 후보와 김씨의 관계는 2001년 이 후보가 LKe뱅크의 대표직을 사임하며 정리 수순을 밟았다. 김씨 역시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후 이 후보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며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반면 김씨의 도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2003년 미국에서 한국법에 따른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된 김씨는 LA에서 횡령한 돈을 세탁한 혐의로 자산도 동결됐다. 여기에 한국 법인을 설립할 때 미국 법인의 서류를 위조한 사실이 적발돼 공문서 및 사문서 위조 혐의가 추가됐다.

김씨의 신병을 한국에 인도하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은 2004년에 나왔지만 그동안 김씨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한국행을 거부해왔다. 이런 가운데 김씨가 최근 태도를 바꿔 한국에 돌아와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배경과 향배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때 상대방의 경력과 이름 때문에 손을 잡았던 두 사람은 헤어진 지 6년이 지난 지금,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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