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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먹고 뻗어버린 하마, 민자고속도로

등록 2007-08-03 00:00 수정 2020-05-03 04:25

최초 민자도로사업 ‘이화령 터널’ 건설교통부가 625억원에 인수 1999년 최소운영수입보장제가 시행되기 전이라 천만다행일지도?

▣ 이화령=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허승은 녹색연합 활동가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정부가 600억원이 넘는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부실덩어리 터널을 떠안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화령 터널’ 민자투자사업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순 없었다. 건설교통부는 지난 6월1일 이화령 터널을 만들고 운영해온 (주)새재개발 쪽에 내년 3월 말까지 시설대금 625억원을 주고 터널 운영권을 인수하라는 서울 고등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도로사업으로 꼽혀온 ‘이화령 터널’을 둘러싼 15년에 걸친 지루한 공방은 일단락됐다.

‘비관리청 도로사업’이란 난관을 뚫고

운영권이 국가로 귀속됨에 따라 터널의 통행료 1300원(소형차 기준)은 폐지됐다. 7월25일 이 찾은 터널 안에서는 국가 반환을 앞두고 내부 청소가 한창이었고, 요금소 앞에는 “8월1일부터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는 펼침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화령 터널에 대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잘못된 민자사업의 표본이라는 비난이 있지만, 그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터널은 민간투자사업과 관련된 제도가 채 갖춰지기 전에 추진돼, 정부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어설픈 블랙코미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세상의 일이 대체로 그렇듯 이화령 터널도 처음에는 선의에서 시작됐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은 예로부터 날던 새도 잠시 쉬어 넘는다는 문경새재에 가로막혀 사람들의 통행이 쉽지 않았다. 1925년 일제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문경새재 옆의 작은 고갯길 이화령(529m)을 굽이굽이 돌아넘는 도로를 개설했고, 이는 해방 이후 경북 문경~충북 연풍을 잇는 국도 3호선으로 이어진다. 도로는 생겼지만 문제는 남았다. 커다란 고개를 넘는 이 길은 도로 모양이 구불구불한데다 겨울에는 폭설로 차량 통행이 제한되는 등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두산건설이 지분 100%를 투자한 ‘새재개발’이 이화령에 터널을 뚫으면 국도 3호선 차량 통행에 도움을 주고 돈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3년 가을의 일이다.

새재개발이 사업 구상을 시작한 1993년은 아직 민간투자사업이라는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민간사업자가 도로를 만들려면 당시 도로법 34조의 ‘비관리청 도로사업’에 따라 사업허가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비관리청 도로사업’을 쉬운 말로 바꾸면, 도로를 만드는 관리청이 아닌 새재개발이 도로를 만들어 국가에 기부채납한 뒤 일정 기간 동안 통행료를 받아 돈을 버는 사업이라는 뜻이다. 1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새재개발은 1994년 12월5일 부산국토관리청장으로부터 사업허가를 받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터널의 길이는 상행선 기준 1624m, 공사비는 604억6천만원, 완공 시점은 1998년 10월이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새재터널을 둘러싼 두 개의 상황 변화가 생기게 된다. 하나는 이화령 터널 사업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될 큰 악재였고, 다른 하나는 그 악재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길 수 있게 한 커다란 호재였다.

악재부터 살펴보자. 이화령 터널로 구간이 단축되는 국도 3호선 충북 괴산~경북 문경 구간의 바로 옆으로 2004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중부내륙고속국도가 뚫리게 된다. 고속국도 개설 계획이 마련돼 있다는 것은 사업을 추진하던 새재개발도, 사업을 허가한 건설교통부도 잘 알고 있었다. 새재개발은 1994년 9월 작성한 ‘이화령 터널 축조공사 사업계획서’에서 “본 검토 대상 구간은 중부내륙고속국도 계획 노선과 거의 일치함”이라고 적고 있다. 문제는 새재개발 쪽의 예측 교통량이 실제와 크게 어긋났다는 데 있다. 새재개발은 터널의 하루 교통량이 1999년 2만7268대에서 2003년 4만3742대로 늘었다가 고속도로가 완공되고 나면 2005년 2만4950대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 교통량은 하루 평균 8천여 대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유지되던 교통량은 2004년 12월 고속도로가 개통된 다음해인 2005년에는 2862대로 급락하게 된다. 터널은 천덕꾸러기로 변하고 말았다.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새재개발?

이번엔 호재다. 새재개발의 사업 구상이 마무리돼가던 1994년 8월 사회간접시설 분야에 대한 민간 참여를 촉진할 목적으로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유치촉진법’(이하 유치촉진법)이 제정된다. 법이 시행된 것은 제정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1994년 11월4일이고, 새재개발이 ‘비관리청 도로사업’으로 사업 승인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다시 한 달쯤 지난 그해 12월5일이다. 이화령 터널은 이 법에 해당되지 않는 사업이어서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정될 수 없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다시 5개월이 흐른 1995년 5월30일 민자사업으로 전환에 성공한다.

그로 인해 변한 것은 무엇일까. 비관리청 도로사업은 사업 실패로 인한 위험을 모두 사업자가 떠안게 되지만, 민자사업은 기업이 절대 손해를 안 보게 하는 여러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다. 1998년 10월19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새재개발이 맺은 ‘이화령 터널 민자유치시설사업 실시협약’을 보면, 정부는 터널의 발생 손실, 부족 운영자금에 대해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고(32조 1항), 새재개발은 사업이 잘 안 될 때 통행료를 올릴 수 있으며(31조 3항),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새재개발은 협약을 종료할 수 있고(36조 2항), 그럴 때 정부는 새재개발에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고 시설을 떠안아야 한다(36조 3항). 그 협약서에 근거해 새재개발은 국가를 상대로 시설매수청구소송을 걸어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에서 625억원에 강제조정을 끌어냈다. 건설교통부 민자사업팀 이정기 사무관은 “이화령 터널의 경우는 민자도로사업의 시행착오 과정이다. 최초 사업자가 요청한 800억원보다 약 200억원 줄어든 600억원 조금 넘는 돈으로 인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일까. 그가 의도한 의미대로는 아니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제도 미비를 틈타 수십억~수백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어 정부가 민간기업의 영업손실을 보전해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수백억원의 혈세를 낭비하게 된 납세자도,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하는 공무원들도 아니다. 그것은 사업 실패로 인한 책임을 국민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화장실에 숨어 휘파람을 불며 돈다발을 셀 기회를 놓친 새재개발이다. 무슨 뜻일까? 이후 전개된 민자투자제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인천공항고속도가 ‘앉아서’ 번 돈 4817억원

새재건설이 터널 공사를 끝낸 뒤 6개월이 지난 1999년 4월, 정부는 그동안의 유치촉진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해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하 민간투자법)을 만들게 된다. 민간투자법의 핵심은 사업의 실제 운영수입이 추정 운영수입보다 적을 때 이의 80~90%까지 보전해준다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를 도입한 데 있다. 감사원은 2007년 6월 발표한 ‘공공시설 민간투자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서 “외국의 경우 최소운영수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준 국가는 없다”고 적었다.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가 시행된 뒤 이화령 터널이 개설됐다면 어떤 일이 가능했을까.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새재개발주식회사가 이화령 터널과 관련된 최종 계약서인 실시협약을 맺은 것은 1998년 10월19일이다. 새재개발이 터널 운영권을 갖는 20년 동안 터널을 이용할 것으로 예측된 교통량의 일일 평균치는 3만3090대였다. 그러나 1998년 터널 개통부터 2005년까지 평균 통행량은 7907대에 불과했다. 민간투자사업은 정부가 먼저 사업을 고시한 ‘정부고시사업’과 민간이 먼저 제안한 ‘민간제안사업’으로 나뉘는데, 1999년 4월 제도 도입 당시 정부고시 사업의 보상 수준은 추정수입의 90%, 민간제안사업은 80%까지였다.

이화령 터널 사업은 민간이 먼저 제안한 사업이므로, 정부는 3만3090대의 80%인 2만6472대까지 새재개발의 운영수입을 보장해야 한다. 운영수입 보장대상은 2만6472대에서 7907대를 뺀 1만8565대. 모든 통행차량이 소형차라고 가정한다면(당시 소형차 통행료는 1천원), 새재개발은 매일 정부로부터 1856만5천원, 1년이면 67억7622만원이라는 엄청난 수입을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받게 된다. 그렇게 20년이 흐르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1200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혈세가 새재개발 쪽으로 흘러들게 된다. 20년 동안 터널 이용료도 오르지 않고,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한 터널 이용자 감소분도 없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니, 실제 지원금은 이보더 더 커질 수 있다. 광주시가 지난 5월 ‘돈먹는 하마’로 전락한 제2순환도로 민자구간을 관리·운영하는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를 상대로 사업시행권을 취소하고 관리운영권 회수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1998년 이후 대규모 토목회사들은 너나 없이 민자도로 건설사업에 뛰어들어 한몫씩 챙기게 된다. 그들은 교통 예측량을 뻥튀기해 파리만 날리는 요금 계산소에 앉아 해마다 국민 세금으로 수십~수백억원의 이익을 보장받고 있다. 그렇게 받아 챙긴 돈이 인천공항고속도로는 2001년부터 5년 동안 4817억원, 천안~논산 고속도로에서는 2003년부터 3년 동안 1180억원이다. 보다 못한 기획예산처는 2006년 1월 이후 민간제안사업에 대해서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를 폐지했고, 정부제안사업에 대해서도 보장 범위를 점차 줄여가고 있다(그래프 참조).

이 어이없는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에 대한 뒤처리는 어떻게 됐을까. 2002년 감사원은 ‘이화령 터널’ 문제와 관련해 “관계 공무원 4명을 징계하라”고 건설교통부 쪽에 요구한다. 징계 대상자는 박성표 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과 박동화 전 건교부 차관보 등 4명이었다. 감사원은 이들이 “사업자가 통행량을 과다 예측하는 등 사업성을 잘못 판단해 실패한 사업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은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터널을 677억원에 매수하기로 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2002년 추진되던 터널 매수작업은 중단됐고, 5년 뒤 법원 조정안을 통해 625억원으로 일은 마무리됐다. 금액 차이는 물가를 고려하지 않고 볼 때 52억원에 불과하다. 이들이 징계를 받아야 했다면, 사업자가 사업성을 잘못 판단해 실패한 사업에까지 수입을 보장해준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얼마나 큰 징계를 받아야 할까.



도로공화국 자동차 중심도시

최소수입보장 없지만 건설업자에게 민자도로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 허승은 녹색연합 활동가

건설교통부는 신도시 건설과 연계해 수도권 신도시 고속도로망 20개 노선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서평택∼서안산(39.7km) 등 10개 노선은 민간제안사업을 검토 중이다. 이들 노선의 총연장 구간은 329.9km에 이르고, 예산은 19조3554억원이나 된다. 물론 이 도로들은 도로정비기본계획상의 장기 계획으로 사업비나 사업 추진 시기 등은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표 참조).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복합도시, 기업도시 건설계획으로 인구 분산, 사업 분산을 유도하는 한편 수도권 인구의 출퇴근 교통난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수도권에 20개의 도로망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의 단절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 예다.
이런 정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이 있기 때문에 건설업자들은 여전히 민자도로 건설사업에 큰 매력을 갖고 있다. 2006년 1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가 폐지돼 운영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도, 현재의 수도권 교통량을 고려할 때 운영 수익이 충당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도로 관련 전문가들은 도로를 아무리 많이 만든다 해도 자동차 대수의 증가율과 자동차 한 대의 주행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엄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건설교통부 공무원들뿐이다.
교통 흐름을 분산시키기 위해 도로를 만들면 일시적 효과는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가 늘어나 이런 도로의 공급을 능가하게 된다. 결국 도로는 대규모 주차장으로 변하고, 교통혼잡 비용은 증가하며, 대기오염의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대중교통망을 확충하는 수요 관리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정책은 건설업자의 이해에 기반한 민자도로의 확장으로 귀결되고 있다. 도로공화국이라는 토건국가의 현실은 빼도 박도 못하게 우리의 도시를 도로와 자동차로 포위하고 있다. 시민들은 세금 내고 더욱더 쾌적하지 못한 도시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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