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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대혁명’도 이라크에 처박히나

등록 2006-1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중간선거에서 하원과 상원 모두 빼앗길 위기에 처한 미 공화당…“공화당에 반대해서 민주당으로” 이라크 정책에 대한 변화 요구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미국에선 짝수로 끝나는 해마다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날(화요일) 선거를 치른다. 435명의 하원의원 전원과 100명의 상원의원 가운데 3분의 1(경우에 따라 33명 또는 34명), 36개 주의 주지사 등을 뽑는 이 선거는 이른바 ‘중간선거’로 불린다. 대통령 임기의 한가운데서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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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다. 11월7일 실시되는 미 중간선거는 결국 연임을 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난 6년 집권 기간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인 게다.

5년새 부시 지지율 87%에서 34%로

현재 미 의회는 상하 양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 1994년 이후 공화당은 무려 12년째 상하 양원의 다수당으로 군림해왔다. 상원의 경우 공화당이 55석, 민주당이 44석, 무소속이 1석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15석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17석, 그리고 무소속 1석이 이번에 선거를 치르게 된다. 상원 재장악을 위해 공화당은 이번에 선거를 치르는 33석 가운데 10석만 얻으면 된다. 반면 민주당이 상원을 되찾기 위해선 24석을 확보해야 한다.

하원도 공화당의 수성이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현역 의원 분포를 보면 공화당이 232석, 민주당이 202석, 무소속이 1석이다. 하원 장악을 위해선 모두 218석이 필요하다. 공화당은 기존 의석 가운데 15석을 잃어도 하원 재장악이 가능하지만, 민주당은 기존 의석을 모두 지키고도 15석을 새로 얻어야 할 판이다. 더구나 중간선거 투표율은 지난 20년 이상 35~38%대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변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결국 이번 선거는 객관적으로 공화당에 어려운 승부가 아니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런데…. 상황이 전혀 딴판이다. 왜 그럴까?

‘87-62-54-49-35-34.’

지난 2001년부터 매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뉴욕타임스>와 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부시 대통령의 지난 6년간 지지율 변화 추이다. 9·11 동시테러 직후 한때 87%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이후 지속적으로 뚜렷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음이 뚜렷이 나타난다. 특히 집권 2기 들어 실시된 최근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각각 35%와 34%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부시 행정부에 대한 미국민들의 ‘환상’이 여지없이 깨졌음을 보여준다.
“미 국민 절대다수는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이라크 주둔 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할 것으로 보는 반면, 공화당이 의회권력을 유지할 경우 이라크 주둔군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거나 증가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1월2일치에서 “미 국민들은 이라크 문제를 이번 중간선거의 표심을 가르는 최대 이슈로 보고 있으며, 민주당원은 물론 공화당원들조차 이라크 정책의 변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런 여론은 고스란히 선거에 나선 공화당 후보들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투표 의사를 밝힌 부동층의 절반가량이 민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공화당에 반대해서 민주당에 표를 던질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는 형편이다.

성추문·조세포탈 등 잇단 스캔들까지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선거를 닷새 앞둔 11월2일 밤 현재 하원 35석과 상원 9석을 ‘접전지역’으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하원의 경우 4석이 공화당 쪽으로, 13석이 민주당 쪽으로 각각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다. 나머지 18석은 여전히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4석 가운데 민주당이 현역 의원인 곳이 없는 반면,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13석 가운데 무려 11곳의 현역 의원이 공화당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초접전이 계속되는 곳도 모두 공화당이 현역 의원인 지역구다. 하원은 이미 민주당이 장악했다고 보는 게 옳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원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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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전지역 9곳 가운데 선거 막판 공화당 쪽으로 기운 지역구는 단 1곳도 없다. 6개 지역구가 민주당 쪽으로 기울고 있고, 3개 지역구가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지역구 가운데 4곳은 공화당이 현역 의원을 배출한 곳이다. 막판까지 초접전 양상을 보이는 지역구도 모두 공화당 장악지역임을 감안할 때, 공화당의 상원 수성도 불투명해지고 있는 셈이다. 각 주별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해 내놓는 ‘일렉토럴 보트 닷컴’은 11월3일 오후 현재 상원(민주당 50:공화당 49:접전 1)과 하원(민주당 241:공화당 193:접전 1)으로 집계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라크에 처박힌다.” 선거 막판 불거진 존 케리 상원의원의 ‘폭탄 발언’도 선거 결과의 큰 흐름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미 케리 의원 스스로 이라크 참전 병사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그의 지원유세를 금지시키며 불끄기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케리 의원의 발언을 선거 쟁점으로 만들려 하고 있지만, 선거 막판 공화당 후보들의 각종 스캔들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판세 뒤집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화당 정권 아래서 가장 잘나가는 로비스트’로 불렸던 잭 아브라모프의 스캔들과 직접 연루된 공화당 하원의원만 4명에 이른다. 10대 사환과의 성추문으로 하원에서 불명예 퇴진한 마크 폴리 전 의원 스캔들의 뒤를 이어 일부 의원들이 해외 계좌를 통한 조세포탈 의혹으로 조사를 받더니, 각종 불법 부동산 거래 의혹과 잇따른 성추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라크에서 발목을 잡히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쉽지 않았을 선거란 얘기다.

부시는 남은 2년 동안 발목 잡힐 가능성도

민주당의 의회권력 장악이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면서 벌써부터 워싱턴 정가의 관심은 ‘앞으로 뭐가 달라지는가’로 모이고 있다. 의회권력 확보는 상하 양원의 핵심 상임위원회를 통제할 수 있게 됨을 뜻한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남은 임기 2년 동안 사사건건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특히 국방·외교·안보 관련 위원회에서 민주당이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고 적극적인 역할에 나설 경우, 이라크 점령 정책을 포함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민주당으로선 당장 이라크 주둔 미군의 규모 감축이나 단계적 철수론을 꺼내들고 부시 행정부를 직접 압박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라크 침공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점이나, 재건복구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한 의회 차원의 청문회를 여는 게 부시 행정부에 주는 타격이 더욱 큰 탓이다. 이는 이란이나 북한, 중동정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2008년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청문회를 통한 여론 조성이 민주당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포석일 수 있다. 지난 1994년 이른바 ‘미국과의 계약’을 기치로 내건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주도한 공화당의 ‘보수 대혁명’이 서서히 종착역으로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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