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넘나들며 먹고살았던 선조들의 영남대로·호남대로·대관령·죽령…큰물에도 무너지는 일 없던 자연합일의 길은 근대의 큰길에 묻혀버렸네
▣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자동차의 시대다. 자동차는 필연적으로 도로를 부른다. 2005년 현재 도로법상에 규정된 도로는 10만2293km. 이 가운데 아스콘이나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는 7만8587km다. 고속도로와 국도는 1만7192km다. 온 나라가 도로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건설교통부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도로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건설회사는 이에 맞장구친다. 자동차 제조업체는 자동차를 ‘더 나은 삶의 상징’이라고 광고한다.
영남대로도 조령관문 빼곤 흔적 없어
우리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철도’라는 근대적 길을 알았고,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5·16 쿠데타를 넘어서면서 ‘포장도로’라는 현대적인 자동차 길을 경험했다. 도로는 ‘발전’의 아이콘이자, 사회경제적 ‘인프라’였다. 압축성장 시대는 이 땅의 길을 극과 극으로 나눠놓았다.

12차선 고속도로에서부터 산골마을 약초길까지. 그러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땅에 존재했던 길에 대해 제대로 탐구하고 성찰해본 적이 없었다. 과거의 길에 대한 기억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이다. 법률에 근거한 길 외의 길에 대해서는 관심도, 기록도, 흔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길이 있었다. 그 길은 삶의 흔적이요, 문화와 역사의 나이테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살아왔던 우리네 선조들은 고개를 넘나들어야 먹고사는 일이 가능했다. 백두대간을 비롯한 주요 산지에는 보부상길, 장 다니는 길, 과거 보러 가는 길, 약초길, 심마니길, 암자길 등 무수한 이름으로 불리는 길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길에는 지금의 등산로와 현격히 다른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겨 있다. 요즈음 사람들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거운 짐을 지고도 발품이 가장 덜 드는 방법으로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냈던 것이다. 최대한 경사가 낮은 방향에서 비탈길을 내되 굽이를 많이 넣어 힘겨운 고갯길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옛길은 또 웬만한 자연재해에 무너지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길이었다. 역사를 보면 ‘큰 고갯길이 무너졌다’는 구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속도로와 국도가 수없이 무너지는 오늘날, 옛길의 의미가 새롭게 되새겨지는 이유다.
지난 50여 년 동안 국토계획과 도시계획 어디에도 과거의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인 길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그 흔한 안내판이나 이정표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조선시대 우리 길의 상징인 ‘영남대로’도 문경새재의 조령관문 일대 4km 정도를 빼면 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문화는 박물관과 고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풍부했던 문화가 산천 곳곳에 두루 펼쳐져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지키려 하지 않았기에 거의 사라져버렸다. 다만, 이제 마지막 흔적이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개발의 손길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백두대간을 비롯해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첩첩산중 산골 마을들을 빼면 옛길을 기억하기조차 힘들다.
지역의 ‘반짝형 관광’을 넘어서
실크로드만이 옛길은 아니다. 5천 년 역사 속에서 일부 권력자들을 뺀 민초들은 4950년 동안 거의 발품에 의지해 길을 다녔다. 그 길이 불과 50년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이제 그나마 남아 있는 옛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진정한 문화의 복원이요, 역사에 대한 친근한 접근이다. 영남대로, 호남대로, 대관령, 죽령, 추풍령뿐만 아니라 동네 장터에서 주막집을 지나 양조장을 거쳐 역이나 차부까지 가는 길에도 이제는 이름표나 작은 기념비석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는 지역의 역사와 민초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숨쉬었던 민중의 삶, 일하며 밥 먹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놀았던 희로애락의 생생한 혈관이자 중추가 바로 옛길이다. 우리가 새롭게 들여다봐야 하는, 시대의 문화와 역사의 화두다. 그래서 옛길을 다시 더듬어본다. 무궁무진했던 민중들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제대로 된 옛길의 복원은 지역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주말에 한번에 몰려왔다가 사라지는 ‘반짝형 관광’이 아니라 사시사철, 평일에도 꾸준히 찾아오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 점에서 옛길을 되살리는 것은 지역문화를 풍부히 하고 지역주민의 삶의 흔적들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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