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날 속타는 사람을 더욱 속터지게 한 코카콜라 중국 번역어…수십가지 방언에 사자성어,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에 정이 떨어지다가도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7년 전인 1999년 8월 말, 중국에 처음 도착한 날 벌어진 일이다. 내가 처음 발을 디뎠던 도시는 톈진이다. 그날 톈진의 날씨는 마치 불가마를 옮겨놓은 것처럼 온 시내가 ‘활활’ 타고 있었다. 어학연수를 받을 대학교 유학생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이미 땀으로 서너 번 샤워를 한 몰골이었다.
광고
방에 짐을 부려놓자마자 부리나케 1층 매점으로 달려갔다. 오로지 ‘소원’은 온몸이 짜릿해질 정도로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거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중국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물’을 중국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시원한 물’은 더더욱 알 리가 없었다. 매점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멀뚱히 직원 아가씨 얼굴만 히죽이며 바라보다가, 결국 ‘물’을 포기하고 콜라를 선택하기로 했다. ‘세계인의 음료’ 콜라는 ‘당연히’ 만국 공용어처럼 어딜 가나 ‘콜라’라는 영어 발음 하나로 통할 줄 ‘착각’했던 것이다. 혀도 약간 ‘꼬부려서’ 나는 아주 우렁차게 “코카콜라!”를 외쳤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해서 외쳐도 얼굴에 주근깨 가득한 ‘짱리’(매점 아가씨 이름이다)는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의 바로 뒤편에 있는 대형 냉장고 속에 시원하게 모셔져 있는 콜라를 손짓으로 애타게 가리키며 아무리 ‘코. 카. 콜. 라!’를 외쳐도 짱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게 아닌가.
광고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나는 매점 문을 부수듯이 밀고 들어가 내 손으로 직접 냉장고 문을 열고 콜라를 집어들고 말았다. 그러고는 짱리 눈에 들이대고 “야! 넌 콜라도 모르냐”라고 한국말로 소리쳤다. 그 순간, 짱리의 고르지 못한 이가 환하게 벌어지더니 “아~, 커커우커얼러!”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뭔 소린가? 웬 ‘커커우커얼러’?
그날 나는 ‘본의 아니게’ 배우게 된 코카콜라의 중국말 ‘커커우커얼러’를 통해 중국어의 ‘무시무시함’을 알았다. 중국에서는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KFC와 같은 아주 ‘보편적인’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나 커피, 라디오 등과 같은 외래어들이 오로지 중국어로만 쓰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나라 이름이나 외국 지명, 인명 등을 중국어로 모를 경우에는 중국인과 관련 대화를 나누는 데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많을 뿐만 아니라, 중국 신문에 나오는 해외 소식들도 여간해선 이해하기 힘들다.
중국어의 또 다른 ‘무시무시함’은 성조에 있다. 성조는 영어로 치면 액센트에 해당하는데, 모든 한자에는 총 네 가지 높낮이를 가진 성조라는 것이 있다. 중국어는 우리처럼 소리글자가 아니라 뜻글자이기 때문에 만일 이 성조를 조금만 틀리게 발음해도 전혀 다른 말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종종 낭패를 보곤 한다.
중국어를 꽤나 잘한다고 자부하는 한 영국 유학생이 어느 날 중국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켰다. 그는 ‘파오즈’라고 하는 중국 만두를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종업원은 “우리 식당 맞은편에 신문 가판대가 있어요. 거기 가면 각종 신문들을 살 수 있답니다”라고 아주 친절하게 손짓으로 가판대를 가리키더라는 것이다. 참고로, 만두와 신문은 발음이 똑같이 ‘파오즈’다. 이쯤 들으면, 중국어의 ‘무시무시함’이 조금 피부로 와 닿지 않는가?
광고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은 통하리라
이 밖에도 수십 가지나 되는 방언에 사자성어,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 등을 말하자면 중국어에 쏟으려고 했던 ‘정’이 그만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떨지는 마시라. 중국어가 제아무리 ‘사람 잡는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을 당하지는 못한다. 아래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이나마’ 중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남편 따라 중국에 처음 온 새댁이 김치찌개에 넣을 돼지고기를 사러 동네 시장에 갔다. 푸줏간에 줄줄이 걸려 있는 고기들 앞에서 그는 정육점 주인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돼지, 돼지”를 외쳐봤지만 허사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손으로 코를 들어올리고 “꿀꿀” 하고 돼지 울음소리를 흉내냈다. 그제야 정육점 주인은 눈을 번쩍 뜨면서 외쳤다. “알았다, 쭈러우!”(돼지고기구나!) 물론 시장 안 상인들과 중국인들이 한바탕 박장대소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뒤 새댁은 동네 명물이 됐다고 한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한덕수 등장’에 김문수 뚝…‘오세훈 불출마’ 한동훈 최대 수혜
트럼프 “중국산 관세 크게 낮아질 것…시진핑에 강력 대응 안 해”
국힘 경선 4강 ‘반탄 2명-찬탄 2명’…나경원은 왜 떨어졌나
“개는 키우던 사람이 키우라”던 윤석열…키우던 ‘투르크 국견’ 동물원에
이재명 상고심, 대선 전 결론 날까…“영향 없어” “속도전 우려” 교차
임은정, 법무부 ‘감찰관 알박기’ 논란에 “추한 모습 보이지 말아야”
윤여정 “아들 동성결혼식 열어줬다…사위가 자식보다 더 좋아”
윤여정 ‘아들 동성결혼’ 공개…예일대 의대교수 “경의 표한다”
[뉴스 다이브] “사람에 충성 않는다”…난장판 된 내란재판 정화한 참군인
[단독] 출국한 ‘홍준표 여론조사 대납’ 의혹 측근 “검·경 연락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