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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힐리어 미래는 하쿠나 마타타

등록 2006-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를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구분하는 건 중대한 왜곡… 대륙 동쪽 해안 5천만 명 이상의 민초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주목하라

▣ 양철준 전남대 인류학과 전임연구원 YANG.chuljoon@wanadoo.fr

“스와질란드 혹은 소말리아에서 사용되는 언어인가요?”

1980년대 중반 스와힐리어를 전공하고 있던 필자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발음상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유추였으리라.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의 수나 통용되는 지역의 광대함을 고려할 때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고유어임에도 스와힐리어는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 잘 알려진 언어는 아니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스와힐리어는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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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는 하우사어가 주요 언어

그러나 ‘사파리’ ‘심바’ ‘라피키’ ‘하쿠나 마타타’ 같은 단어나 표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언어적 소품으로 동원됐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에서 무파사와 암사자인 사라비 사이에 태어난 ‘심바’가 스와힐리어로 ‘사자’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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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키는 ‘친구’를 의미하며, 하쿠나 마타타는 ‘문제없다’라는 뜻이다. 시드니 폴락이 감독한 영화 에서 메릴 스트립도 농장 하인들에게 간단한 스와힐리어로 말한다. 또 마이클 잭슨의 노래 에도 ‘나쿠펜다 피아, 나쿠타카 피아’(나도 역시 그대를 사랑하고, 나도 역시 그대를 원해요)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라이베리아는 스와힐리어와 무관한데도 말이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구분할 때 편의상 영어권, 프랑스어권, 포르투갈어권으로 경계를 설정한다. 그런데 편의는 왜곡이나 견강부회의 발단이 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소수의 교육받은 계층은 식민종주국의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지만 대부분의 민초들은 모어나 제2언어인 ‘교통어’로 의사소통한다. 따라서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아프리카를 편의상 구분한다는 것은 아프리카 언어 현실의 중대한 왜곡임이 자명하다. 기실 아프리카인들은 2천여 개의 고유 언어로 언어생활을 영위하는데 동아프리카에서는 스와힐리어, 서아프리카에서는 하우사어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소말리아 남부에서 모잠비크 북부에 걸친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수많은 스와힐리 도시국가가 형성됐는데, 이곳에 거주하는 스와힐리인들이 스와힐리어를 모어로 사용한다. 비록 모어로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제2언어로 구사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5천만 명 이상이 스와힐리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추계된다.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동부, 소말리아 남부, 모잠비크 북부에서 널리 사용되고 르완다, 부룬디, 말라위, 잠비아, 코모로, 마다가스카르의 일부 지역에서도 통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스와힐리어권 아프리카’의 등장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언어적 소품을 뛰어넘어…

아프리카에서 언어는 경제발전이나 참여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그런데 극히 일부의 교육받은 계층만이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현실적 상황에서 대다수 민초들은 자신들의 삶의 행로를 결정지을 주요한 정책이나 활동에서 배제되고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만이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의 근원인 것이다.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적 토속성을 부각해주는 언어적 소품이 아니라 언어로부터 소외된 민초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도구가 될 때, 비로소 스와힐리어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카리부니 카티카 울리음웽구 와 키스와힐리!”(스와힐리어의 세계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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