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법무부 장관 인선에 문제제기하던 김근태 의장 꼬리내려… 서로 오버 거듭하면서 감정 고조, 한달만에 금간 공동운명체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대통령 하려고 대통령을 때려서 잘된 사람 못 봤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보름 가까운 논란 끝에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사의를 밝힌 8월2일 핵심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을 겨냥했다. 김 부총리의 거취와 후임 법무부 장관 인선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문제제기를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로 보고 최고의 강수로 맞받아친 것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꼬리를 내렸다. 노-김의 ‘치킨 게임’(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에서 일단 김 의장이 핸들을 꺾었다.
대통령 때려서 잘된 사람 못 봤다?
노 대통령은 거의 똑같은 말을 2002년에 한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유력했던 이인제 후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선 예비주자들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임기 말 아들과 측근 비리로 인기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다. 노 대통령은 “자산과 부채를 모두 떠안겠다”며 다른 길로 갔다.
그때도 “대통령 때려서 잘된 사람 못 봤다”고 했다.
한 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은 6월29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공동운명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김 의장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제안을 큰 틀에서 수용한다”며 “탈당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김 의장은 “참여정부가 성공하지 않고서는 김근태에게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날 양쪽은 ‘공동운명체’라고 했다. 갈라설 때 갈라서더라도 그 시점은 상당 기간 늦춰지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김 의장 쪽은 “최근 훈풍이 부는 이유는, 김 의장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해 노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격하는 방식의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쪽의 신뢰가 깊지 않았던 탓일까. ‘김병준 사태’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청와대 쪽은 한나라당을 주축으로 한 보수세력의 대통령 흔들기에서 주원인을 찾았지만, 열린우리당, 더 구체적으로는 김근태 의장 쪽도 ‘질서 있는 퇴각’을 어렵게 했다고 분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차별화 시도’는 의심 단계였다. 그런데 김 의장이 8월2일 문 전 수석과 관련해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불똥이 됐다. 게다가 당에서 추천한 법무장관 후보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청와대 쪽은 혐의를 굳혔다.
여기서 몇 가지 따져볼 대목이 있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있는가, 후임 법무장관 관련 언급은 의도했는가. 지금이 차별화를 위한 적절한 시점인가. 또 청와대 쪽이 김 의장의 움직임을 차별화 시도로 보는 것은 적절한 상황 판단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미리 엄포 놓기인가.
충돌 반복, 강도는 점점 더 세질 듯
차별화는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분명히 함으로써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실한 계산이 서야 한다. 또 김 의장 자신이 차별화 이후의 후폭풍을 견딜 만한 맷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조건 모두 채워지지 않았다. 인사권이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이어서 명분도 부족하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볼 때 차별화 시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병준 사태’ 이후 ‘오버했다’는 쪽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따라서 노 대통령 쪽이 ‘차별화 시도’라고 규정한 것도 ‘오버’다. 오버를 거듭하면서 양쪽의 감정이 고조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충돌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충돌 → 당·청 관계 대화채널 모색’을 수없이 봐왔다. 충돌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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