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동2호의 실패에도 북한은 적지 않은 군사적 성과 얻었지만… 걸핏하면 체제 명운 건 도박… ‘우리 민족끼리 정신’이 고작 이건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대포동 2호 미사일은 발사 뒤 42초까지는 정상 비행을 했고, 그 뒤 이상이 발견됐지만 7분을 비행해 499km를 날아가 동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1차 추진체가 120초 정도 연소한 뒤 분리돼야 하는데 42초 만에 이상이 발생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재까지는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는 실패로 평가하고 있다.”
한쪽으론 판문점 군사회담 제의
이성규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이 7월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보고한 내용이다. ‘실패’가 의도된 것이라는 지적이 없진 않지만, 제한된 정보만 놓고 보면 현재로선 ‘기술적 결함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국방부의 설명이 논리적이다. 대포동 2호가 1기 더 있다는 보도와 함께 추가 실험발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북한이 지난 5월 초 시작해 두 달여 동안 이어온 ‘미사일 게임’의 전반부는 막을 내린 듯싶다.
겉보기에 지금 북한이 손에 쥔 것은 대포동 2호 실험발사 실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뿐이다.
동시다발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고, 미국과 일본의 대북 강경론자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뒤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추가 제재 방안이 거론되는 사이 남쪽 정부는 식량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베일에 쌓여져 더욱 ‘위협’을 느끼게 했던 북한의 미사일 능력은 대포동 2호 발사실험 실패로 ‘별것 아니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내부에서 미사일 실험발사를 강조했던 진영에 대한 문책이 뒤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역시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되짚어보면 이번 실험발사를 통해 북한이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아 보인다. 정부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북한은 ‘미사일 발사 훈련’을 치밀한 준비 속에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분주한 움직임은 발사 이틀 전인 7월3일부터 한·미·일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대 주변에 있던 연료통이 치워졌고, 이어 발사 전날인 4일 저녁엔 자국 어선의 동해상 운항 제한을 지시했다. 러시아 쪽에도 외교 통로를 통해 사전 통보를 했으며, 중국과도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준비에 들어가기 앞서 북한은 7월3일 오후 2시 일찌감치 남쪽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연락장교 접촉을 하자”고 제의했다. 한쪽으론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하면서 다른 쪽으론 대화를 제의하는 ‘이중적 태도’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미사일 발사 이후 자칫 경색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미사일 발사 이후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정보 판단 실수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슬며시 이런 사실을 공개한 군 당국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지휘체계 가동한 실전 운용 능력 보여줘
발사 준비 과정의 치밀함은 시점 선택의 ‘탁월함’으로 이어졌다. 독립기념일 휴일 오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발사 장면을 바라보며 뿌듯해할 겨를도 없이 미국인들의 시선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 속보에 쏠렸다. 디스커버리호가 발사된 직후인 7월5일 새벽 3시32분께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발사장에서 발사실험이 시작됐고, 새벽 4시4분에 두 번째 미사일이 발사됐다. 새벽 5시께는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장에서 대포동 2호로 추정되는 미사일 1기가 발사됐으며, 이어 오전 △7시12분 △7시31분 △8시17분에 각각 스커드 또는 노동미사일이 창공을 갈랐다. 그리고 주변국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분주했던 이날 오후 5시22분께 7번째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북한이 “냉전 시절에도 유례가 없다”는 동시다발 미사일 실험발사에 나선 이유에 대해선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개발이 끝나 실험이 필요치 않은 노동 및 스커드 미사일 6발을 함께 발사한 것은 대포동 2호 미사일 실험발사 실패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꼼수’였다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도 얼마든지 분석이 가능하다.
스커드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는 300~500km에 이른다. 노동 미사일은 1300km, 대포동 2호는 6700km로 추정된다.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국제관계연구센터장은 “이처럼 단거리와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 것은 일관된 지휘통제 체제가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2004년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에 군단급 ‘미사일 지도국’을 신설했다”며 “미사일지도국은 러시아의 전략미사일사령부와 구조가 비슷한데, 북한은 이미 90년대 말부터 미사일 운용 체계를 총괄지휘하는 미사일지도국 설치를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결국 깃대령과 무수단리 두 곳에서 7발의 미사일을 잇따라 실험발사함으로써 북한은 미사일지도국의 지휘통제 체제와 두 미사일 기지 간 상호연동 체계에 대한 훈련을 벌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실전 운용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탄두에 해당하는 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미사일 문제도 함께 풀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음을 뜻한다. 여기에 △스커드-주한미군 △노동-주일미군 △대포동2호-미 본토라는 원거리 억지력의 등식도 확인시킨 셈이어서, 대포동 2호의 ‘실패’에도 북한으로선 적잖은 군사적 성과를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실험발사를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으로 분석하려는 시각도 눈에 띈다. 19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당시 북-미 제네바 협상에 미국 정부 대표로 참석했던 케네스 퀴노네스 전 국무부 북한 담당관은 7월6일 을 통해 내놓은 글에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한 내부적 ‘손익계산’을 시도했다. 김일성 전 주석의 12주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김 위원장은 국제 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주권’을 지켜내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를 두고 퀴노네스 전 담당관은 “김 위원장은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북한 인민의 존경을 얻어내기 위해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감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1998년에는 통했던 ‘벼랑 끝 전술’
북한이 또다시 미사일 발사라는 ‘벼랑 끝 전술’로 나선 것은 과거의 경험에 따른 ‘학습 효과’에 기인한 바 크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1994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를 도출해내면서 끝나는 듯했던 북-미 사이의 위기 국면은 경수로 건설과 관계 정상화가 지연되면서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8년 들어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북-미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8월31일 북한은 대포동 1호를 쏘아올렸다.
단기적으론 미국과 국제 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지만, 이를 계기로 빌 클린턴 행정부는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삼아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의 시작이었다. 이에 따라 이듬해 북-미 미사일 협상이 진행됐고, 2000년에는 북한의 조명록 차수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워싱턴-평양 교차 방문까지 성사되는 등 북-미 관계는 어느 때보다 ‘정상 관계’에 근접했다. 하지만 조지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성사 직전까지 갔던 북-미 미사일 협상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임원혁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은 최근 내놓은 ‘현안진단’ 보고서에서 “이번에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은 △선제공격 △악의적 무시 △본격적 협상 등 크게 3가지다. ‘선제공격’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악의적 무시 정책은 지난 5년 반 동안에 증명된 것처럼 실효성이 전혀 없다. 그러니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대화를 통해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금지선을 정하고 진지하게 양자 및 다자 협상에 임하는 것이라는 게 임 위원의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의 금융 제재에 대해 뚜렷한 반격의 무기를 찾지 못해온 북한으로선 이번 미사일 실험발사를 통해 유력한 ‘협상 카드’를 확보한 셈이 됐다. 미사일 실험발사를 재개함으로써 스스로 포기했던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 카드를 되찾은 것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심상치 않은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도 협상 재개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근거로 뽑힌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온건파까지 나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방 예산 수정안을 통해 대북정책조정관 임명과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북한관계법 제정 움직임 등 의회 차원의 압박이 가시화하고 있다. 미사일 실험발사로 야기된 혼란이 수습될 때쯤 미 의회가 휴회를 마치고 재소집되면 ‘협상파’의 추가적인 움직임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 7월 중 랴오닝성 선양에서 ‘비공식 6자회동’을 열자고 한 제안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으로선 ‘6자회동’에 방점을 두고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도 ‘비공식’이라는 점을 들어 6자회담 복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회동 중 자연스럽게 이어질 북-미 직접 접촉 기회를 노릴 수 있다. 미국과 북한 모두 체면을 차리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런 점을 종합해볼 때, 북한 지도부는 지난 7월5일 전세계를 놀라게 한 미사일 실험발사를 통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고 여길지 모른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겐 이번 ‘미사일 게임’이 여러모로 ‘남는 장사’로 볼 여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두는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1998년의 기억이 2006년에 되풀이될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판돈의 크기는 민족의 미래
미사일 실험발사를 통해 북한은 체제의 명운을 건 도박을 또 한 차례 감행했고, 이번에도 남쪽은 그 도박판에 강제로 끌려들어가게 됐다. 도박의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함께 질 수밖에 없다. 판돈의 크기는 민족의 미래다. 그러니 북쪽에 따져 묻게 된다. 걸핏하면 강조하는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 고작 이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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