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리트 상병 찾겠다며 가자지구 침공해 피비린내나는 ‘여름비’폭격… 하마스 붕괴하려는 뻔한 계산…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스라엘 편만 들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작전명 ‘여름비’가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전쟁터다. 대지를 촉촉이 적신 건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피와 그보다 진한 분노의 눈물이다. 찢어진 살갗에 붕대를 감아주고, 흐르는 피눈물을 닦아주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팔레스타인이란 땅이 원래 그런 곳이다.
일가족 몰살과 어린이 희생 잇따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은 6월27일 밤 11시51분에 시작됐다. 우선 전투기들이 세 차례 공습을 감행해 외부로 통하는 가자의 교량을 끊었다. 이튿날 새벽 1시42분엔 가자지구 발전소가 폭격으로 파괴됐다.
가자지구는 온통 암흑 천지가 됐다. 그리고 새벽 2시24분 이스라엘군 탱크가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를 향해 진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12일 일방적으로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지 9개월여 만의 일이다. 이날 새벽 5시8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가자지구 주민들은 의도적으로 저공비행을 하는 이스라엘 전투기의 굉음에 치를 떨며 여명을 맞았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밝힌 이번 ‘작전’의 목적은 두 가지다. 6월25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납치’해간 이스라엘군 탱크병 길라드 샬리트 상병 구출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쏴대는 카삼 로켓 발사 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게다. 이스라엘 언론조차 올메르트 총리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는 “하마스 정부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다음번에는 좀더 ‘책임감 있는’ 정부를 선택해 이스라엘과 협상에 나서도록 하려는 게 진짜 의도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침공의 명분이 된 샬리트 상병 문제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6월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난민촌이자 툭하면 게릴라전이 벌어지는 가자지구의 기준으로도 유독 ‘잔인한 달’이었다. 이스라엘군은 6월9일 가자지구 해변에 박격포 공격을 퍼부어 일가족 7명을 포함해 8명의 주민이 숨지고, 어린이 13명을 포함해 32명의 주민이 다쳤다. 6월13일엔 가자지구 고속도로에 미사일이 날아들어 11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 6월20일, 다시 미사일 공격이 퍼부어져 어린이 3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의 파상 공세가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부를 것은 자명했다. 예상대로 사건은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인민저항위원회’ 조직원들이 지난 6월25일 땅굴을 파고 들어가 가자지구에 접해 있는 케렘 아부 살렘(카렘 샬롬) 지역의 이스라엘군 초소 습격에 나선 것이다. 양쪽의 교전으로 인민저항위 조직원 2명과 이스라엘군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샬리트 상병은 이날 교전 중 사로잡혔다.
“처음 이스라엘군 병사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병사가 텔아비브의 커피숍 같은 데서 납치된 것으로 여겼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에 나와 납치된 병사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샬리트 상병은 납치 아닌 전쟁포로
샬리트 상병이 ‘납치’됐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대해 팔레스타인 인권운동가 라피트 오데 카시스는 인터넷 매체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런데 ‘납치’됐다던 병사는 이스라엘군 탱크병으로, 가자지구 경계 지점에서 300m가량 떨어진 검문소에서 무장세력의 습격을 받았다는 보도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군 초소에서 교전 중 붙잡힌 것이다. 탱크병이었으니, 아마도 그즈음 가자지구를 겨냥해 벌어진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포격작전에 가담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납치 피해자가 아니라) 전쟁포로다.” 샬리트 상병을 붙잡아간 무장단체가 이스라엘이 붙잡고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포로교환’을 제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침공한 진짜 의도는 뭘가? 텔아비브대학 재피전략연구센터 소장을 지낸 요시 알퍼는 ‘집권 하마스의 지지기반’이라는 가자지구의 특수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는 인터넷 매체 에 기고한 글에서 “이스라엘의 이번 공세는 하마스의 근거를 파괴하고,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하는 데 첫 번째 목적이 있다”며 “이를 통해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계산”이라고 지적했다.
지독히도 가난한 가자지구에서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빈민 구제와 교육·의료 지원 활동을 꾸준히 벌여온 하마스는 이렇게 쌓은 민심을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 지난 1월25일 하마스가 선거에서 승리한 순간부터 이스라엘 국방·안보 담당자들 사이에선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하마스 정부에 대한 선제공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하마스의 지지기반인 가자지구 침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이스라엘 정부로선 이번 침공으로 지난해 9월 가자지구에서 일방적인 철수를 단행한 결정이 이스라엘의 안보에 이득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과외 소득도 얻고 있다.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정착민이 없는 탓에 위험부담 없이 원하면 언제든지 가자지구로 탱크를 몰고 들어가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탓이다. 이를 측면 지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행태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포용력과 이해심을 발휘하고 있는 국제사회다.
최근 출범한 유엔인권이사회는 7월6일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점령정책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찬성 29, 반대 11, 기권 5로 통과시켰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비판하고, 체포한 하마스 출신 자치정부 각료를 석방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독일·캐나다·핀란드·프랑스·네덜란드·영국 등 유럽연합 국가 대부분이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회원국으로 가입하지 않은 미국은 옵저버 자격으로 “이스라엘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라고 항의했다.
가자지구가 처한 참혹한 현실은 팔레스타인 인권센터가 지난 4월20일 내놓은 ‘피해자에 대한 처벌’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자지구 평균 실업률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평균 실업률 34%보다 10%포인트 높은 44%에 이른다.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봉쇄 기간 동안엔 이 수치가 55%까지 치솟는다. 자치지역 인구 절반가량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가자지구에선 주민의 70%가 절대 빈곤층이다. 지난 3년여 동안 1인당 평균 소득은 32% 줄었다.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참혹한 현실
특히 2000년 9월29일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이후 상황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0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이스라엘 군과 정착민의 손에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은 모두 2936명이다. 희생자 가운데 651명은 어린이였고, 106명은 여성이었다. 부상자도 수만 명을 헤아리는데, 이 가운데 가자지구에서만 8662명이 다쳤다. 이로 인해 영구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만도 수백 명에 이른다. 가자지구 농토의 약 20%는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짓밟혔다. 팔레스타인 가구의 절반가량은 하루 한 끼 식사만 하는데, 평균 음식 섭취량은 지난 3년 새 25~30% 줄었다. 5살 이하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22%는 영양실조 상태다.
미국도, 유럽연합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모르는 척할 뿐이다.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참혹한 현실을 힘 안 들이고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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