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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차붐의 클럽입니까?

등록 2006-06-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차범근 영입과 함께 신흥 명문구단의 초석을 다진 바이어 04 레버쿠젠… 티켓 한장 팔릴 때마다 10유로씩 팬하우스에 배당하는 순환구조가 인상적

▣ 레버쿠젠=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레버쿠젠에는 중앙역이 없다. 독일 대도시의 중앙역을 뜻하는 하웁트반호프(Hauptbahnhof) 대신에 소도시의 중심역을 뜻하는 미테(mitte)역에 내려야 ‘바이어 04 레버쿠젠’(Bayer 04 Leverkusen)의 홈구장인 ‘바이 아레나’(Bay Arena)에 닿을 수 있다. 레버쿠젠 미테역 부근의 중심가는 걸어서 10분이면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손바닥’만 하고, 역에서 구장까지도 버스로 서너 정거장이면 도착할 만큼 가깝다. 하지만 이웃의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 쾰른 축구팀이 1부와 2부 리그를 오가는 사이에도 인구 16만 명의 레버쿠젠은 1979년 1부리그로 승격한 이후 한 번도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1904년에 창립된 바이어 04 레버쿠젠은 1980년대 이후 신흥 명문구단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레버쿠젠은 작은 도시지만, 축구로는 강한 도시다. 축구 ‘강소’ 도시 레버쿠젠을 갔다.

연립주택의 한글 구호, 알고 보니…

레버쿠젠에는 차범근이 있었고, 한국팀이 있다. 한국팀은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홈구장인 바이 아레나를 독일 월드컵 기간 동안 연습 경기장으로 사용한다. 한국 대표팀이 독일에 입국했던 6월6일, 바이 아레나를 찾아가는 길에 한글이 눈에 띄었다. 월드컵 분위기라고는 도통 느낄 수 없는 레버쿠젠 거리를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데 3층짜리 연립주택에 조금은 뜬금없는 한글 응원 구호가 붙어 있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레버쿠젠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투명한 아크릴판에 빨간 글씨로 쓴 격려문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혹시 교민이 사는 집인가 해서 초인종을 누르자 독일 할머니가 나왔다. 그런데 할머니는 자신이 사는 건물에 한글 구호가 적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연립주택 앞을 떠나려는 순간, 브라질 유니폼을 입은 독일 소년이 나와서 “어떤 한국인들이 와서 구호를 붙이고 갔다”고 말했다. 세계 어디에서나 ‘튀는’ 한국인의 애국심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바이 아레나는 작은 도시처럼 작은 축구장이다. 1958년 설립된 바이 아레나의 수용인원은 2만2500명. 다른 유럽 축구장에 견줘 작은 편에 속한다. 바이 아레나에 도착해 먼저 팬숍(Fan Shop)에 들렀다. 레버쿠젠 유니폼부터 레버쿠젠의 로고가 들어간 침대까지 온갖 용품이 진열돼 있었다. 팬숍에는 방과 후에 들른 소녀들이 물건을 구경하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바이어 04 레버쿠젠 로고가 박힌 가방을 멘 소년이 지나갔다. 팬숍에 들어온 할머니에게 ‘차붐’을 아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질문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이 든 사람은 차붐을 모를 수가 없다”면서 “정말로 좋은 선수였다는 말밖에는”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시즌 티켓(연간 입장권)을 갱신하러 왔다고 했다. 2만2500석의 관중석 중 1만7500장이 시즌 티켓으로 팔릴 만큼 레버쿠젠 시민들의 축구 사랑은 뜨겁다. 한 시즌 홈경기 17게임을 볼 수 있는 시즌 티켓은 420, 320, 230유로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420유로짜리 티켓을 산다면 홈경기 입장료만 50만원 이상을 지불하는 셈이다. 게다가 응원용품을 사고 원정경기까지 보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해마다 연장하는 사람이 많아서 시즌 티켓을 사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시즌 티켓으로 팔고 남은 좌석을 사려면, 일주일 전부터 예매를 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이웃처럼 길에서 만나는 클럽 감독

팬숍을 나와 클럽 하우스로 향했다. 클럽 하우스의 1층에는 레버쿠젠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 전시돼 있었다. 그런데 클럽 하우스의 직원이 원래 클럽 하우스 2층에 전시돼 있던 우승컵을 최근에 지어진 스포츠 뮤지엄으로 옮겼다고 알려주었다. 서둘러 축구장 맞은편에 위치한 스포츠 뮤지엄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클럽 하우스를 나오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내렸다. 레버쿠젠의 감독인 미하엘 스키베였다. 스키베는 2002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의 수석코치를 역임한 유명 인사다. 스키베 감독을 스치고 나서 얼마 뒤에는 바이 아레나 옆길을 조깅하는 레버쿠젠 코치를 만나기도 했다. 또 레버쿠젠 시내에 위치한 팬 하우스에는 레버쿠젠 선수들이 지나다 들러서 팬들과 ‘놀다’ 가기도 한단다. 이렇게 레버쿠젠에서는 축구 스타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길을 가다 만날 수 있는 이웃인 듯했다.

서둘러 스포츠 뮤지엄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큼지막한 차범근의 전신 사진이 취재진을 맞았다. 차범근 전신 사진 밑에는 1983년부터 89년까지 레버쿠젠 선수로 뛰면서 185경기에서 52골을 넣었다는 기록이 덧붙여져 있었다. 뮤지엄에 들어서자 독일 대표팀 에이스 미하엘 발라크가 2002 월드컵 당시 한국에 오면서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너무나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레버쿠젠 선배 차붐에게 바치는 발라크의 헌사였다. 뮤지엄을 돌아보면서 되뇌었다. “여기가 차붐의 클럽입니까?” 입장권을 끊고 들어간 뮤지엄 안에도 차붐의 코너는 따로 마련돼 있었다. 알다시피, ‘차붐’은 1978년부터 12년 동안 분데스리가의 SG 프랑크푸르트, 바이어 04 레버쿠젠 등에서 뛰면서 통산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기록했다. 당시로서는 역대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이었다. 레버쿠젠의 우승컵을 모아놓은 코너에는 차붐이 1988년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들어올리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1988년 UEFA컵 결승 경기는 차붐의 축구 인생에 결정적 장면이었다. 레버쿠젠은 에스파뇰과의 원정경기에서 0-3으로 지면서 패색이 짙었다. 레버쿠젠은 홈경기에서 3-0으로 이기고,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을 차지했다. 당시 가장 극적인 마지막 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차붐이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레버쿠젠 감독이 가장 먼저 껴안은 선수도 차붐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팀의 중심이었다. 차붐은 이미 1980년 소속팀 프랑크푸르트를 UEFA컵 우승으로 이끌면서 ‘세계 축구 베스트 11’에 뽑힌 세계적인 선수였다. 1970년대까지 평범한 구단이던 레버쿠젠은 1979년 라이커 카를 문트를 단장으로 영입하면서 명문구단으로 도약했다. 레버쿠젠의 오늘을 만든 문트가 단장으로 취임해 가장 먼저 공들여 영입한 선수가 차붐이었다. 차붐의 영입은 명문구단 레버쿠젠의 초석이었던 셈이다. 차범근은 1988년의 우승으로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고 1989년 레버쿠젠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23년 뒤인 2002년, 레버쿠젠은 ‘리틀 차붐’ 차두리를 독일로 데려왔다. 아쉽게 차두리는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로 곧바로 임대되면서 레버쿠젠에서 뛰지는 못했다.

‘선수 장사’잘하는 구단으로 유명

레버쿠젠은 ‘선수 장사’를 잘하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작은 도시의 클럽인 레버쿠젠은 젊은 선수를 스타로 키워 비싼 값에 파는 수완으로 명문구단의 명맥을 유지해왔다. 스포츠 뮤지엄에 서 있는 레버쿠젠 레전드(전설적인 선수)들의 실물 사진에서도 레버쿠젠의 생존논리가 엿보인다. 레버쿠젠 레전드 중에는 여전히 현역이 많다. 다른 팀으로 이적해 뛰고 있기 때문이다.

미하엘 발라크는 2001~2002 시즌 트리플 세컨드를 이끌고 레버쿠젠에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최근에 첼시로 다시 이적했다). 브라질 대표팀의 중앙 수비수 루시우, ‘미친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호베르투 등이 레버쿠젠을 거쳐간 브라질 레전드들이다. 레버쿠젠이 젊은 발라크, 호베르투, 루시우를 키워서 벌어들인 이적료는 4천만유로에 육박한다. 올 시즌에도 분데스리가 득점 랭킹 2위에 올랐던 불가리아 출신 스트라이커 베르파토프를 토트넘으로 보내면서 1600만유로의 이적료를 챙겼다. 현재는 독일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 베른트 슈나이더가 레버쿠젠을 대표하는 스타다. 뮤지엄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터키계 꼬마가 쫓아왔다. 꼬마는 쭈뼛거리며 다가와 “한국팀이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레버쿠젠 시민은 그렇게 한국팀에 무심하지만은 않았다.

다음날인 6월7일, 한국팀이 바이 아레나에서 첫 독일 현지 훈련을 했다. 취재진을 제외하면 연습장 주변은 한산했지만, 구경 나온 교민이 없지는 않았다. 레버쿠젠 교민 김행자씨가 카메라를 들고 연습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김씨는 “한국팀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차붐에 대한 추억은 있다. 10년 전 독일인 남편을 만나 레버쿠젠으로 이주한 김씨는 “독일인 시아버지가 만나자마자 차붐 얘기부터 꺼냈다”고 돌이켰다. 한국팀을 취재하러 온 레버쿠젠 지역신문 기자 울리히도 “차붐이 한국축구협회 회장이냐”고 물었다. 그만큼 레버쿠젠에 차붐의 흔적은 아직도 뚜렷하다.

한국팀 연습을 뒤로하고,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팬 하우스로 향했다. 주소를 더듬어 찾아간 팬 하우스는 단촐한 사무실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담한 2층 건물이었다. 1층 사무실에 들어서 인사를 건네자 팬 하우스 상근자인 안드레아스가 보여줄 것이 있다며 2층으로 향했다. 그는 둘둘 말아놓은 펼침막을 펼쳤다. 가로 10m, 세로 1m의 펼침막에는 차붐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차붐 옆에는 한국 대표팀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안드레아스는 “2주 전부터 펼침막을 준비했다”면서 “한국팀의 공개 연습이 있는 날 바이 아레나로 펼침막을 들고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레버쿠젠은 그렇게 한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한 팬들의 경기관람 지원도

팬 하우스는 팬들의 놀이터이자 팬클럽의 사무실이자 응원도구를 만드는 공작소였다. 팬들은 팬 하우스에 모여서 응원에 필요한 대형 그림을 그리고, 축구 얘기를 나누면서 레버쿠젠 사랑을 키워간다. 레버쿠젠은 인구 16만 명의 소도시지만,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서포터 클럽은 270개에 달하고, 클럽에 가입된 서포터만 1만여 명에 이른다. 안드레아스는 “작은 도시여서 모든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축구팀을 사랑한다”고 축구 강소도시의 비결을 설명했다. 쾰른 같은 대도시의 축구팬들은 서로 편을 나눠 싸우기도 하지만, 레버쿠젠 서포터들은 단결력이 좋다는 것이다. 물론 레버쿠젠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 바이어의 아낌없는 지원도 든든한 배경이 된다. 축구단은 서포터에게 받은 사랑을 팬클럽 지원으로 돌려준다. 시즌 티켓이 한 장 팔릴 때마다 10유로씩 팬 하우스에 배당된다. 결국 팬들이 팬 하우스에 기부하는 셈이다. 시즌 티켓이 1만7500장임을 감안하면 해마다 17만5천유로, 원화로 2억원이 넘는 돈이 팬 하우스로 들어오게 된다. 팬들이 낸 돈이 다시 팬들을 위해 쓰이는 순환구조다.

이런 지원 덕분에 안드레아스는 10년째 팬 하우스의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당연히’ 안드레아스는 뼛속까지 레버쿠젠의 서포터다. 그는 “서너 살 때부터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바이 아레나를 찾았다”면서 “상근을 시작할 때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축구단뿐 아니라 레버쿠젠시에서도 팬 하우스를 지원한다. 팬 하우스는 시의 지원을 받아서 서포터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드레아스는 “시의 지원 덕분에 가난한 팬들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축구 복지’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 레버쿠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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