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을 둘러싼 중국 지식인 논쟁2- ‘신좌파’ 쾅신넨 칭화대 교수 인터뷰…“종교개혁 같은 자발적 사상해방운동 없었다면 소련처럼 해체됐을 수도”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쾅신녠 칭화대 중문과 교수는 이른바 ‘신좌파’로 불린다. 1963년 후난성에서 태어난 그는 우한대학교 중문과를 거쳐 베이징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학자로, 지난 1999년부터 명문 칭화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쾅 교수는 “유럽의 종교개혁이 문예부흥의 시작이었듯, 문화대혁명은 중국에서 종교개혁의 역할을 했다”며 “자발적인 사상해방 운동이라는 점에서 6·4 톈안먼 사태는 또 다른 문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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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나빴지만 목적은 좋았다
문혁의 원인은 뭔가.
=마오쩌둥은 스탈린 사후 소련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면서 몇 가지 문제를 간파했다. 소련은 흐루시쵸프 시대에 수정주의로 돌아섰고, 마오는 중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걱정했다. 국내적 요인으로는 마오와 류샤오치 사이에 발생한 의견 대립을 들 수 있다. 당시 류샤오치는 신민주주의 질서를 공고화하고 싶어했으나, 마오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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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이의 의견 대립은 소련의 변화와 함께 마오에게 중국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져왔다. 개인적으로 문혁은 ‘중국의 종교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종교개혁이 문예부흥의 시작이었고 현재 유럽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시초가 됐던 것처럼, 문혁도 중국에서는 그런 종교개혁의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의 종교개혁은 종교전쟁을 불러왔는데, 문혁도 중국 내부의 전면적인 내전을 초래했다.
마오가 문혁을 통해 목적을 이뤘다고 보나.
=문혁의 효과는 목적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하지만 마오는 부분적인 목표를 이뤘다. 바로 사상해방이다. 비록 문혁 이후 시장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개방 사상, 즉 우파적인 사상해방을 가져왔지만 그것 역시 일종의 사상해방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1989년 6·4 톈안먼 사태도 실은 또 다른 문혁이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사상해방 운동이었으며, 운동의 방식 역시 자발적이고 대중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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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마오가 문혁을 일으킨 목적을 권력투쟁으로 보기도 한다.
=권력만을 위해 문혁을 일으켰다면 군중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군중은 그것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기 때문에 참여했다. 지난해 류샤오치의 아들 류위안은 <류샤오치의 신중국>이라는 책 서문에서 마오와 자신의 부친이 꿈꾸던 이상은 현재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인민들이 다시 피억업자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문혁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당시 마오의 수단은 나빴지만 본래 목적은 좋은 것이었다고 했는데 나 역시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 마오의 실수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제도를 통해 인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폭력이나 조반(造反) 등의 방법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문혁을 직접 경험했던 이들은 대부분 문혁을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라고 말한다.
=문혁에 대한 평가는 각각의 계층과 입장에 따라 충돌하고 있다. 주요 피해자였던 관료와 지식인들은 당연히 문혁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일 것이다. 그들이 문혁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들의 상처만을 기억할 뿐 다른 계급의 상처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 관료와 지식인들은 문혁의 주요 피해자이기는 해도 그들의 임금은 기본적으로 보장받았다. 문혁 이후 그들은 샤강(下崗·준실업상태)이나 실업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혁 이후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수천만 명이 샤강을 당했고, 매년 평균 20만 명의 사람들이 도저히 살아갈 방법이 없어서 자살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자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문혁은 사회주의 환상을 파괴
문혁은 중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많은 사람들의 환상을 파괴했다. 특히 노간부와 지식청년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파괴했다. 하지만 마오의 원래 생각은 그들을 단련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대장정과 같은 과정이다.
대장정 초기에는 30만 명이었지만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불과 3만 명이었다. 문혁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과 신념을 상실한 그들은 다시는 공산주의를 믿지 않았다. 문혁 이전에 그들은 그래도 정의를 믿었고 인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믿었다. 문혁은 이런 믿음을 붕괴시켰다. 사실 문혁이 이 노간부들에게 가한 충격은 분명히 잘못되고 불공평한 것이기는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문혁의 수단을 긍정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이상과 신념을 상실한 결과는 바로 관료 부패로 나타났다. 관료 부패의 시작은 개혁·개방 이후라기보다는 문혁이 끝난 직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문혁은 중국 민족의 비극인 셈이다.
문혁이 중국 사회 발전을 20~30년 후퇴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개혁·개방 이후에 중국 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일정 기간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화 체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문혁 당시 교육·의료 등 많은 부분에서 자신들만의 체제를 만들었다. 문혁이 없었다면 중국은 소련처럼 해체됐을지도 모른다. 문혁은 비록 우파적인 것이긴 하지만 개혁·개방이라는 사상해방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시장이 생겨났다. 소련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보나.
=노동자, 농민이 권리를 끊임없이 박탈당하고 있다. 농민들은 개혁·개방 초기에는 많은 혜택을 받아서 덩샤오핑에게 감사를 했지만, 나중에는 반대로 농민들을 끊임없이 착취했고 이어서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권력계층은 각종 수단을 통해 부패를 저질렀다. 개혁·개방 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들 권력계급 문제다. 중국의 권력계급은 자산계급 및 상층 지식계층과 결탁돼 있으며, 이들은 거대한 이익집단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언론매체, 관료, 지식인들이 함께 결탁돼 있는 구조로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말하는 관학상(官學商)이 결합돼 있는 셈이다. 극소수 사람들의 손에 부가 집중됐다. 이것을 빗대서 어떤 사람들은 ‘겁빈집부’(劫貧集富·가난한 사람들을 갈취해 부를 축적함) 사회라고도 말한다. 나는 지금 중국은 가장 원시적 자본주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했던 영국의 18세기 원시 자본주의 사회와 비슷하다. 당시 영국 노동자들의 생활이 아주 비참했던 것처럼 중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개혁·개방의 방향을 점검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개혁·개방 이후 각 계층 간 이익 충돌이 심각하기 때문에 이런 논쟁은 불가피하다. 개혁논쟁이 격화하면서 <인민일보> 전 논설위원 황푸핑 같은 개혁파 주류들은 개혁은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개혁의 함의는 도대체 뭐냐? 그들은 개혁을 신화화·권위화하면서 개혁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실 개혁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견해는 달라야 한다. 예를 들면, 농민이나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개혁에 대한 소망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현재 개혁은 지식계층과 권력계층에 의해 도둑맞았다. 이들이 고려하는 개혁의 방향은 권력계층의 이익이다. 이러한 개혁은 불공평하다. 그동안 중국은 개혁 과정에서 자유와 민주, 공평과 효율을 대립된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것들은 서로 대립된 것이 아니라 상통한다고 본다. 공평한 정치일수록 더 공평한 경제적 효율을 낳고, 한 사회가 공평할수록 사회적 창조력과 생산력도 그만큼 높아진다.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문혁 같은 대비판 필요
문혁은 극복해야 할 문제인가, 계승돼야 할 정신적 유산인가.
=문혁은 마오가 현대사회를 대상으로 행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문혁을 통해 나타난 마오사상은 유럽의 60년대 학생운동과 미국, 일본 등에도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모든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문혁은 극복되거나 회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문혁이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매일매일 대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마오가 문혁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문혁 당시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대비판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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