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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은 완전히 미쳤다”

등록 2006-05-26 00:00 수정 2020-05-03 04:24

문혁을 둘러싼 중국 지식인 논쟁1- 쉬유위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 인터뷰…“끝내 공개적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면 일본 역사왜곡 비판할 자격 없어”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쉬유위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과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1947년 쓰촨성 청두에서 태어난 쉬 연구원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66년 문혁의 발발과 함께 조반파(造反派)로 문혁에 참가했다. 이후 그는 3년여에 걸쳐 농촌 하방생활을 했으며, 1979년까지 6년여 동안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1982년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생 과정을 졸업한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방문학자를 거친 뒤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

류사오치를 타도하려면 군중운동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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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 당시 홍위병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홍위병으로 활동했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조반파’라고 해야 정확하다. 문혁이 시작됐을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출신 성분이 나쁜 흑오류(黑五類·지주·부자·반혁명 분자·범죄자·우파 분자)였기 때문에, 문혁 초기에는 홍위병이 될 자격이 없었다. 나중에 마오쩌둥은 이런 노선을 바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조반파 활동은 자원해서 참여한 것인가.

=당시 모든 학생들이 문혁에 참가하기를 원했지만 나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나쁜 출신 성분으로 분류돼 오랫동안 혁명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마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했다. 때문에 문혁에 참가해 마오에 대한 애정과 충성 그리고 그 누구보다 혁명을 원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마오의 말처럼 ‘인민들 속에서’ 사상이 단련된다는 느낌이 들었나. =농촌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노동이 너무 고되고 힘들 뿐 아니라 때로는 먹을 식량조차 없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문혁 전에 우리가 받았던 교육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중국의 사회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도라는 것이었다. 하방생활은 나에게 그동안 받았던 교육과는 완전히 상반된 현실에 대한 충격이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사건은 린뱌오가 소련으로 도망을 가려고 하다가 몽골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린뱌오는 마오 주석이 직접 선택한 후계자이자, 마오사상의 붉은 깃발을 가장 높이 치켜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반당활동을 벌이다가 결국에는 마오에 의해 죽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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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하방생활을 하면서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지하에서 ‘미국의 소리’라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그 방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것을 알았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은 원시사회의 노동과 똑같았는데, 미국의 우주선은 이미 달에 도착해 있었다. 당시 받은 사상적 충격은 엄청났다. 문혁은 왜 일어나게 됐다고 보나.

=지금으로선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과 서양 학자들 중에는 문혁을 마오가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 실현과 중국을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일으켰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관점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마오가 문혁을 일으킨 가장 주요한 원인은 권력투쟁이다. 사실상 마오가 타도하려는 사람은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류사오치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류사오치 뒤에는 그를 지지하는 수천수만 명의 공산당 간부가 있었다. 마오는 그들까지도 타도하고 싶어했다. 마오가 문혁을 발발한 이유는 전통적인 당내 투쟁 방식으로는 그 목적을 실현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반드시 군중운동, 천하대란(天下大亂)의 국면을 만들어야만 했다.

마오를 그리워한다? 신좌파의 착각! 문혁 시기에는 아래로부터의 비판과 언론출판의 자유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민주적’이지 않았나? =마오는 군중에게 발언권을 주었고 대자보를 붙이게 하여 관료들을 비판할 수 있게 했다. 조직을 만들어도 되고, 신문을 출판해도 되며, 어떤 말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마오가 사람들을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대민주’는 류사오치를 타도하기 위해 준 것이었다. 당시 중앙정부 공안부가 내놓은 ‘공안 6조’라는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아주 정확하게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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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과 린뱌오를 공격하거나 혹은 중앙영도소조, 즉 장칭을 공격하는 자는 반혁명 분자이며 신속히 체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유의 ‘대민주’는 가짜다.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마오쩌둥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마오 시절의 평등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지금의 중국인들이 마오를 그리워하고 심지어는 문혁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심리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인민들은 현재 벌어지는 권력의 타락에 염증을 느끼면서 현실을 바꾸고 싶어한다. 그들은 지금 마오가 살아 있어서 다시 한 번 문혁을 일으킨다면 기꺼이 참여해서 이 타락한 현실을 뒤엎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한 가지 원인은 마오에 대한 상업화다. 1990년대 이후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상인들은 일반 서민들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교묘히 이용해 마오를 상업화했다. 마오는 그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상징마크가 되었다. 신좌파들은 이러한 현실을 잘 모르고 중국인들이 정말로 다시 마오를 그리워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덩샤오핑 시절 중국 정부는 마오에 대해 30% 정도의 잘못은 있지만 70%는 여전히 공이 크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 논법은 마오가 스탈린을 평가할 때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소련의 흐루시쵸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면서 스탈린은 악인이고 폭군이라고 비판했다. 마오도 마음속으로는 스탈린을 엄청나게 증오하고 싫어했지만,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탈린이 공산주의의 상징임을 알았다. 때문에 마오는 스탈린을 평가할 때 “단지 30%만 나빴다”고 말했다. 나중에 중국 공산당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마오식 해석 방법을 이용했다. 심지어 덩샤오핑도 나중에 자신을 평가할 때 이 논법을 사용한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마오는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인 면보다 훨씬 많다고 평가한다. 문혁 40주년을 맞은 올해도 여전히 중국 정부는 문혁에 대한 논쟁을 금기시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문혁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과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문혁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과 평가를 꺼려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혁을 파고들면 중국 정치제도의 여러 문제점들이 폭로되기 때문이다. 문혁 기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도대체 누구의 죄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면, 이렇게 묻는 과정에서 결국 그 추궁이 마오에게까지 갈 수밖에 없다. 현재 당국은 (이러한 추궁에서) 마오를 보호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거대한 비극이 중국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치 제도상의 문제 때문이다. (현 정부가) 공개적으로 문혁을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 현재의 정치제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도덕의 타락도 문혁에서 연유문혁이 결과적으로 중국인들에게 남긴 상처는 뭔가.

=첫 번째 상처는 도덕의 상실이다. 중국인들은 예전만 해도 순수했고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오는 문혁을 통해 이 사람들을 기만했다. 중국인들은 이상과 순수함, 진실, 신뢰감 등을 잃어버렸다. 문혁은 모든 아들과 딸들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판하게 했으며, 학생들은 자신의 선생님을 비판하고 그들과 싸워야 했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인성을 잃어버렸다. 서로를 불신하게 됐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도덕의 타락은 사실 문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의 문혁 세대들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신앙도 이상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잃었으며 매일 서로 투쟁하고 싸우는 것에 습관이 들어버렸다. 한마디로 문혁은 ‘광기의 시대, 어리석음의 시대’였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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