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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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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편집광적인 질투

등록 2001-02-13 00:00 수정 2020-05-02 04:21

DJ-YS관계가 대표적… 입각·당직개편·공천 등 시기에 집중적 표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질투가 공공연히 표출되는 대표적인 곳은 정치권이다. 권력과 각종 이권을 둘러싼 암투가 가장 직접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질투감정은 DJ와 YS의 관계에서 가장 명백히 확인된다. 지난해 DJ가 노벨상을 타자 YS가 내뱉은 첫마디는 “노벨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였다. 이밖에도 YS가 퍼부은 독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YS의 이런 발언들은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위상 제고라는 노림수가 깃들여 있지만, 그 심리적 밑바탕에는 질투심이 녹아 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두 사람의 질투감정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68년 5월 신민당 원내총무 지명전에서 첫 경쟁을 시작한 이래 40여년간 공동의 적 앞에서 일시적으로 협조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견제하는 질투심을 발휘해왔다.

DJ 역시 대통령이 된 뒤에도 YS에 대한 질투감정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의 민주당 한 핵심관계자는 “DJ도 YS가 했던 일들은 가능하면 피해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면서 “그를 의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희정신클리닉 김병후 원장은 “두 사람이 서로 다양한 명분과 이유를 내세우며 공격하지만 제3자인 국민이 볼 때는 전혀 성숙하지 못한 유치한 행동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면서 “전형적인 질투감정”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에서 경쟁자에 대한 질투는 일상적이지만, 특히 입각시기나 당직개편, 공천자 선정 등 이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시기가 되면 질투감정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경쟁자를 좌초시키기 위해 언론이나 청와대, 당 핵심인사들을 상대로 험담을 하거나 익명으로 투서를 날리는 것은 기본이다. 지난해 4월 16대 총선당시 호남지역에서 치열한 공천경쟁을 벌였던 한 중견의원은 음해성 투서로 곤욕을 치렀다. “의원회관의 청소원이 의원의 쓰레기통을 청소하다 콘돔을 발견했다”거나 “왜 사무실 화장실에 샤워기가 설치됐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여자 문제와 관련한 투서였다. 선거법 개정에 따라 2개의 지역구가 통폐합됨에 따라 전국구로 밀려난 의원들의 지역구 의원들에 대한 질투는 선거가 끝난 최근까지도 집요하게 계속된다. 틈날 때마다 지역여론을 전달한다며 상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입각 문제가 논의될 때 질투심은 한껏 고조된다. DJ 집권 뒤 첫 조각을 앞둔 98년 초 국방장관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군 출신 국회의원들의 대결은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김대중 당선자의 눈에 들기 위해 서로 국방부쪽 관계자 등 인맥을 동원해 각종 국방개혁 보고서를 앞다퉈 올렸고, 때로는 과거 정권에서 상대의 행적까지 들먹이며 정통성 경쟁을 벌였다. 오는 3월 개각을 앞둔 자민련에서도 최근 장관을 노리는 인사들 사이에 질투극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입각설이 나도는 한 자민련 중견의원은 “부인이 운전기사와 눈이 맞았다”는 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같은 계보나 같은 학교 선후배간의 질투 또한 정치권의 고전적 레퍼토리다. 특히 후배가 선배를 넘어서려 하거나 ‘좀더 잘나갈’ 때 질투의 강도는 높아진다. 지난해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를 앞두고 동교동 구주류를 대표하는 권노갑 상임고문과 신주류를 대변한 한화갑 의원 사이에 벌어졌던 경쟁도 내부 권력투쟁의 성격과 함께 이런 질투감정이 뒤섞여 있다. 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당시 권 최고쪽 핵심들이 ‘차기주자가 노무현이건 이인제건 그건 중요치 않다. 차기 킹메이커는 한이 아닌 권이 돼야 한다’는 식으로 후배에 대한 질투감정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동교동계 또다른 두 의원 사이의 질투감정도 정치권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다. 뒤늦게 동교동에 들어온 한 후배의원이 언론의 조명과 함께 DJ의 신임을 받자, 선배인 다른 한 의원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누가 먼저 가신을 했는데,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고 하느냐. 알고보면 그는 동교동계도 아니다”는 식의 질투감정을 표출해왔다.

아주 유치한 질투감정도 있다. 한나라당 한 부총재는 총재단회의 때 텔레비전 카메라가 박근혜·김덕룡 부총재 등에게 집중되는 것에 대해 자주 “그쪽만 사람이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 의원은 “동료 의원들로부터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시기어린 말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의원뿐이 아니다. 자신보다 학벌이 좋은 보좌관이 들어올 경우 의원의 신임을 받을 것을 우려한 선임 보좌관이 의원의 일정을 알려주지 않거나 아예 의원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도록 해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학사 출신 보좌관들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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