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여성 엘레나 필라토바가 오토바이로 무단침입한 폐쇄지역… 텅 빈 도로를 방사능 측정기와 함께 달리며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다
▣ 체르노빌(우크라이나)=엘레나 필라토바 프리랜서 작가 elena@elenafilatova.com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뻗은 아스팔트길이다. 그 길을 쭉 따라가면 폐쇄구역이 나타난다. 우리 집에서 단 130km 떨어져 있는 체르노빌 소개지역. 왜 그곳을 좋아하냐고? 텅 빈 도로를 달리는, 긴 여행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사람들이 버리고 간 자연이 다시 꽃을 피우는 땅. 그곳에는 아름다운 숲과 호수가 있다.
130km를 달리면 소개지역
그 땅은 버려진 트럭과 군용 차량에 가로막혀 있다. 봄의 계절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드는 풀잎과 나무들을 제외하면 20년째 그대로다. 체르노빌로 가는 길도 다행히 시간에 녹슬지 않았다. 일반 차량에 문을 열 그날에도 길은 이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몇 세기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방사선 측정기를 가지고 다닌다. 1986년 체르노빌 폭발 때, 아버지는 위험하다며 키예프에서 800km 떨어진 할머니 집으로 자식들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핵물리학자셨다. 피난 가던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방사선 측정기를 꺼내 보여주셨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방사선 측정기를 공중에서 들고 휙휙 흔들면, 이 기계는 시간당 12~16μR(마이크로뢴트겐)을 가리킬 것이다. 1천μR은 1mR(밀리뢴트겐)과 같고, 1천mR은 1R(뢴트겐)과 같다. 따라서 1R은 일반 도시 방사선량의 10만 배 정도 되는 수치다. 5시간 동안 500R을 쬐면 죽는다고 한다. 체르노빌 폭발 첫날, 폐쇄구역의 몇 곳에서 방사선 측정기는 시간당 3천에서 3만R을 가리켰다. 불이 난 발전소로 달려간 소방수는 그 자리에서 감마선에 화상을 입었다. 그들이 타고 간 소방차는 방사능에 오염됐고, 폐쇄구역에 갇혔다.
지금은 그 정도의 방사선이 체르노빌에서 검출되진 않는다. 방사선은 이미 땅속으로 흡수돼, 사과와 버섯 안으로 들어가 세상에 나온다. 다행히도 아스팔트길 위의 방사선은 흡수되지 않고 빗물에 씻겨내려갔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폐쇄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다.
2000년 체르노빌 발전소는 영구 폐쇄됐다. 우크라이나는 콘크리트로 발전소를 봉인한 석관을 새로 지어야 한다. 사고 직후 급하게 지은 현재의 석관이 무너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폭발 사고 당시 원자로 안에는 200t의 우라늄이 있었고, 그 가운데 아주 소량의 방사선만이 밖으로 유출됐다. 90% 이상의 방사선은 아직 석관 안에 살아 있다. 거대한 강철과 콘크리트로 방사선을 밀폐시킨 석관 덕분에 이 주변을 지나다니기는 비교적 안전하다. 물론 아스팔트에서 발을 떼고 오염된 땅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에서.
방사선 측정기, 붉은 숲에서 울부짖다
‘붉은 숲’이 바로 그런 곳이다. 붉은 숲 앞에 서면 방사선 측정기는 삑 소리를 날카롭게 울려댄다. 방사능 장비를 입거나 재빨리 나오라는 신호다. 1986년 이 숲은 방사선에 의해 붉게 탔다. 체르노빌 사고수습반은 오염된 나무들을 잘라 땅에 1m 깊이로 파묻었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방사능 오염이 심한 지역이다. 내가 10m 앞으로 전진하면 측정기는 찢어질 듯 삑삑거리고, 100m쯤 발전소 방향으로 걸어가면 시간당 3R이라고 표시한다. 정상 환경의 30만 배다. 방사선은 체르노빌에 수천 년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500~600년 뒤에 다시 찾아오겠지.
한 할아버지가 말을 몰고 가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체르노빌 폐쇄구역 안에 살고 있다. 그는 폭발 사고 뒤 이주했다가 다시 마을에 돌아온 3500명 중 한 사람이다. 내가 “여기 사는 게 무섭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항상 “향수병에 겨워 죽느니 차라리 체르노빌에서 죽는 게 나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정원을 가꿔 반찬을 만들고, 소를 길러 우유를 마신다. 그리고 “우리는 건강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20년 동안 생존한 350명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 또한 사랑하는 고향에서 세상을 떠난 3150명을 뒤따를 것이다.
단테 <신곡>의 지옥편 같은 체르노빌은 아이러니하게도 야생동물의- 적어도 육상동물의- 천국이 됐다. 사람이 사라진 20년 사이 야생동물은 번창했다. 천연덕스럽게 아스팔트길을 건너는 늑대, 여우, 멧돼지, 사슴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늘어난 동물들은 인간이 버리고 간 집과 오두막을 어슬렁거린다. 아마도 사람이 사라진 이곳의 풍부한 먹이양- 비록 오염돼 있지만- 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사선이 동물의 유전자를 어떻게 훼손했는지, 그리고 동물들이 왜 이곳에 찾아왔는지, 비오염지대 동물과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완전히 밝혀지지 못했다. 괴수 같은 돌연변이가 계속 출몰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과학은 이를 부인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왜 체르노빌 폐쇄구역을 드나들게 됐는지 표현하기가 힘들다. 단지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 마치 청각장애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을 뿐. 체르노빌의 고요는 빙산처럼 거대했다. 지저귀는 새도, 하늘거리는 바람도, 그 어느 것도 고요를 깨뜨리지 못했다. 마을은 엽서 속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웠고, 오두막도 집도 거리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게 그림 같았고, 나는 단지 그림 안에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스미르노프스씨는 아무도 없나요
스미르노프카에 도착했다. 몇 해 전에 발견한 이 마을은 도통 지도에서 찾을 수 없었다. 마을 공동묘지의 묘비만이 이 마을이 1800년대 초반에 사람들이 찾아와 1986년 4월26일 발길이 끊겼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묘비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은 죄다 ‘스미르노프스’였다. 집성촌이었나 보다. 그때 이곳을 ‘스미르노프카’라고 지도에 적었다. 나는 이 마을 사람들이 보드카를 만든 스미르노프와 무슨 관계가 있을지 궁금했다. 다만 추측일 뿐, 아무도 답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프리피야트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불과 3km 떨어진, 발전소 직원들을 위해 세운 도시다.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재앙의 날, 사람들은 이곳에 올라와 핵발전소가 불타는 아름다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폐허가 된 호텔로 내려가니, 작은 나무가 방 안에 들어와 살고 있다. 자연은 대지를 잔인하게 소생시킨다. 수백 년 동안 인간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방사선만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체르노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유가가 치솟는 요즘, 우크라이나는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우리가 필요한 만큼 이상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고, 심지어 이웃 나라에 수출까지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집계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31명이었고, 지금은 56명으로 늘어났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를 산정하는 건 순전히 이론적인 작업일 뿐이다. 체르노빌 사고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일하던 내 이웃 아저씨는 56살 때 암으로 죽었다. 그는 공식 통계의 사망자에 잡히지 않는다. 정부 통계는 체르노빌 사고 현장에 투입된 사고수습반과 소방수, 헬리콥터 조종사와 군인들만 사망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왜 어떤 통계도 내 이웃과 같은 사람들을 희생자로 포함시키지 않는 걸까.
정부가 숨기는 건 우리 지구의 미래
나는 체르노빌이 앞으로 일어날 어떤 사건보다 최악의 사건이었다고 믿고 있다. 체르노빌은 인류에 대한 경고다. 만약 체르노빌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체르노빌의 실제와 마주칠 것이다. 하지만 여태 체르노빌의 경고는 무시돼왔고, 희생자가 치른 대가도 사라졌다.
체르노빌 사고는 핵에너지를 열망했던 소비에트 정권의 무책임한 관료들 아래 살았던 우리가 치르는 대가다. 그렇다고 체르노빌이 과거의 단편으로 끝난 게 아니다. 정부가 숨기고 있는 것들은 우리 지구의 미래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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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986년 4월26일 새벽 체르노빌 발전소 기술자들이 안전점검을 위해 20초 동안 정지시킨 4호 원자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흑연 원자로가 연쇄반응을 시작했고, 7초 뒤 520종의 방사선 동위물질은 발전소 폭발과 함께 대기 중으로 방출됐다. 사고 보고서는 발전소의 구조적 결함과 함께 기술자들이 안전 절차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이튿날 한가로운 주말을 맞은 인구 5만의 프리피야트 시민들은 오후가 돼서야 갑상선암 예방약인 요오드 알약을 지급받았다. 그리고 사고 발생 36시간이 지나서야 버스 1만1천 대가 와서 이들을 타지로 소개시켰다.
진화에 투입된 복구작업반 3400명은 자살특공대나 다름없었다. 평생 흡수할 방사선량을 단 한 번에 쪼인 그들은 사고 열흘 뒤인 5월6일에서야 진화에 성공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공식 사망자는 대부분 이들이다.
20년 동안 체르노빌 발전소 반경 30km는 폐쇄됐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고향을 잊지 못한 주민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야생 늑대 100마리가 들어와 새 안식처로 삼고 있다. 2002년부터는 10만~20만원의 요금을 내고 가이드를 따라 제한된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관광 코스도 개발됐다. 방사선량은 아직 자연 환경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지만,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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