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호 진수희 의원 기고 ‘전자팔찌는 너무도 인권적이다’에 대한 반론
어떻게 범죄자 응징할 것인지만 논하는 건 성폭력 예방에 큰 도움 안돼
▣ 지음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가해자를 무겁게 처벌함으로써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될 수만 있다면 왜 그렇게 하지 못하겠는가? 소수의 악질적인 범죄자들을 격리시킴으로써 이 사회의 성범죄자가 사라질 수만 있다면 왜 그렇게 하지 못하겠는가? 기술을 통한 감시와 통제가 성폭력을 근절시킬 수만 있다면 왜 그런 기술의 도입을 마다하겠는가?
누구를 조심해야 하는 걸까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한겨레21> 599호에서 ‘가해자는 활보하고 피해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진 의원은 검경의 수사 소홀, 수사 과정에서의 편파성, 부당한 합의 유도,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성폭력, 형량이 낮을뿐더러 이마저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우리는 정말 이러한 지적에 120% 동감하며, 진 의원의 진정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 의원이 제출한 ‘전자팔찌’ 법안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
전자팔찌는 진 의원이 말한 대로 현실에 막혀 제약돼버릴 뿐, 그 현실을 개선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성폭력 범죄 신고율은 6%에 불과하다. 그나마 신고된 사건에 대한 기소율은 45% 미만이고, 실형률은 그보다 더 낮다. 용기를 내서 신고하고, 수사의 소홀함과 편파성을 이겨내고, 부당한 합의를 거부하고, 그 오랜 과정에서의 2차 성폭력을 감내해낸 단 1%의 위대한 피해자만이 가해자에게 형량이 가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1%의 가해자만이 범죄자로서 인정되고, 그 범죄자의 또 일부만이 전자팔찌를 차게 된다는 것이다. 진 의원은 전자팔찌법이 통과됐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는 채울 수 없으며, 채웠다 할지라도 본인의 집에서 일어난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언론 보도에서 알려진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다. 일부는 평범한 신발가게 아저씨가 범죄자라는 사실에 놀랐다. 또 일부는 몇 차례 이상한 행동을 목격했지만 무심코 넘어갔다. 즉, 이 천인공노할 범죄자가 이번 사건 전까지는 무수히 많은 ‘평범한’ 가해자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해 행위를 목격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고, 신고했으나 소홀히 다뤄졌고, 형이 확정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다음 사건을 보자. 그는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주위의 존경을 받고 있던 사람이다. 전자팔찌 법안을 낸 그 정당의 사무총장이다. 잘 모르지만 성폭력상담소 이사장까지 맡았다고 하니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른 사람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가해자로 돌변했다.
피해자의 용기에 힘입어 사건이 문제화됐지만, 그가 범죄자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진 의원도 이 경우는 전자팔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번에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조심해야 하는 걸까?
신고율·기소율 올리는 법안 필요
성폭력은 특정한 선천적인 악인에 의해 자행되는 우연적인 행위가 아니다. 성폭력은 성억압과 성차별, 성폭력을 구조화하는 현 사회가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 의해서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성폭력의 가해자는 80%가 피해자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며, 그 가운데 30%는 가족 중 한 명이다. 바로 옆 사람이 흉악한 범죄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성폭력의 현실이며 성폭력이 진정으로 두려운 이유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범죄자들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만을 논하는 것은 성폭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관련 정부 부처와 정치권 등에서 누가 더 가혹한 형벌을 생각해낼 것인가를 경쟁하듯이 내놨다. 성폭력 범죄자의 신상 공개는 물론 야간 외출 제한, 유전자 정보은행, 전자팔찌, 거세 약물 투여에 거세수술까지. 그러나 그것은 즉흥적인 발상으로 국민의 정의로운 공분을 아전인수하려는 것일 뿐 성폭력을 줄이려는 진지한 대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범죄자를 가혹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인권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인권은 가해자의 인권과 충돌하고 조정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옹호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폭력상담소 등 반성폭력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이를 주장해왔다. 성폭력의 신고율과 기소율을 1%라도 올릴 수 있는 법안, 수사 과정에서의 2차 성폭력을 엄중히 벌하는 법안, 피해자의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은 왜 연구되고 있지 않은가? 왜 이러한 법안은 뒷전인 채 전자팔찌만 대안인 것처럼 선전하는가?
인권단체가 인권을 말하는 것은 국가와 범죄자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결코 가해자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피해자는 절대 약자이며, 여기서 가해자의 인권을 말하는 것은 가장 반여성적이고 반인권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에 반해 범죄자는 이미 형이 확정된 경우다. 남은 것은 국가와 범죄자의 관계다. 범죄자는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국가에서 필요 이상으로 인권을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권 국가의 기본 원칙 아닌가? 보장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인권이 있고, 보장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는 인권이 없다면, 그게 어디 인권인가? 특권이지.
결국 피해자의 인권과 범죄자의 인권은 모두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하며, 여기에 어떠한 모순도 없다. 인권단체가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힘을 싣지 못했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달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인권침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를 옹호한다는 억지스럽고 악의적인 비난을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당리당략에 따라 급조한 건 아닌가
감시 기술은 범죄를 막을 수 없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범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팔찌는 미미한 효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물론 아주 작은 효과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그 효과를 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자팔찌 법안만 통과되면 안심하라고 선전해서는 안 된다. 안심은 곧 방심이다. 만약 1%의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웠다고 자랑하면서 99%의 가해자 존재를 은폐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가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설치해 치안을 강화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자팔찌 제도는 전문가들이 충분히 검토한 뒤에 도입해야 한다. 어떤 범죄자에게, 어떤 기능의 전자팔찌를, 어떤 과정에서, 어떤 기간 동안 착용시켜야 할지,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서 어떻게 실효성과 인권의 균형을 맞출 것인지를 세밀하게 논의해야 한다. 실제로 형사법학계에서는 전자 감독에 관한 깊은 연구를 차분히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자팔찌 논의는 다분히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성폭력에 대한 성찰의 부재, 급조된 정책, 감시 기술에 대한 맹신. 이러한 흐름은 성폭력도 줄일 수 없고 인권 침해만을 양산하며 감시 통제 사회를 불러올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결단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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