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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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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의 감옥을 거부한다

등록 2006-03-09 00:00 수정 2020-05-02 04:24

전경 복무의 벼랑에서 ‘병역거부’ 선언한 여성주의자 효웅씨
“피하지 않고 입대했지만 감옥갈지언정 더 이상은 끔찍하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자매애보다는 ‘전우애’를, 상생과 공생보다는 ‘상멸’과 ‘공멸’의 결말을 가진 군사주의와 남성우월주의적인 군대를, 제 안의 겁 많고 어리버리한 여전사는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효웅(활동이름·23)씨의 병역거부 이유서의 마지막 문장이다. 지난해 9월에 입대해 전경으로 복무 중인 효웅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했다. 군복무 도중에 병역을 거부한 사례로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병역거부를 했던 강철민씨에 이어 두 번째다. 그의 병역거부에는 도저히 군생활을 견디기 힘들다는 ‘거부’가 자리잡고 있다. 효웅씨는 생물학적인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부터 공놀이보다 소꿉놀이가 좋았다. 물론 “여자새끼”라는 놀림을 받았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괴로웠다

“하나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를 살도록 하는 세상과 저울질해야 했습니다. …보호색을 띤 채 나는 꿈틀거리는 내 안의 여성성을 말 잘 듣는 사회적 동물로 길들여야만 했습니다.”(병역거부 이유서) 그의 보호색은 자기 안의 여성성을 숨기고 남성이라는 “페르소나의 가면”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여성주의에 접하면서 비로소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생태주의 동아리를 만들고, 성소수자운동에 관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그리고 스물둘, ‘군대’라는 남성성의 통과의례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였지만 결국은 그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남성성을 강요하는 현장에 직접 부딪혀보자. 겪어봐야 제대로 비판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이켰다.

그에게 군대는 생각보다 끔찍한 곳이었다. 누군가 집요하게 괴롭히지 않아도, 하루하루 아니 순간순간이 괴로웠다. 개그 프로그램에 여장 남자가 나오면 “죽여버리고 싶다”고 하는 부대원들의 한마디가 그에게 비수로 꽂혔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농담을 듣는 것이 괴로웠고, 사사건건 자신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어쩌다 군문화에 이의를 제기하면 구박만 당해야 했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총을 들어야 하는 테러진압 훈련도 괴로웠다. 그는 “내 정체성이 생각보다 더 완강하게 군대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제대할 길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그는 커밍아웃을 하면서 제대할 길을 찾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에 전역 사유가 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한편으로 입대 전부터 병역거부를 고민하기도 했다. 아니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순간순간 남성성에 짓눌려 살아야 하는 부대를 한시라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여성주의자로, 성소수자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커밍아웃’하고 제대 시도했지만 실패

그는 고백한다. “겁이 많고 어리버리한 제 심약함이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의 사유로는 어찌 보면 미약할지도 모릅니다.” 그의 심성은 심약하지만, 그의 심정은 절박하다. 감옥을 감수할지언정 날마다 신념을 훼손하고, 자신의 내면을 황폐하게 하는 군생활을 도저히 못하겠다는 절박함이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씨네21>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저항(병역거부)도, 잔인한 명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남자다운 사람이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두렵고 손이 떨려서 할 수 없는 나약함’을 옹호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군사주의에 저항하기 위해서 더 강한 남성다움을 요구하는 ‘거부’보다는, 나약함과 폭력 ‘기피’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인식의 전환이, 좀더 근본적인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군대라는 남성성의 감옥에서 정말 못 견디겠다는 그는 근본적인 질문을 몸으로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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