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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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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으로부터의 해방

등록 2006-01-25 00:00 수정 2020-05-02 04:24

[아버지의 부재에 관한 다섯 개의 고해성사]

이혼한 아버지에 대한 고백…비뚤어진 남자와의 결별은 피차 다행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돼버린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관계’를 발견하다

▣ 땐싸/ 언니네트워크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박 사장. 중소기업의 사장이자 일가친척의 가장으로 군림하던 그의 삶에서 유일한 오점은 “가난한 촌놈 출신” 운운하며 그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아내였다. 그의 이혼은 자신이나 아내 누구에게도 딱히 일방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오랜 불화 중 알고 지내던 강남 김 여사와의 재혼으로 이어지며 ‘이제는 정말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우아한 중산층의 꿈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인 것은 확실했다.

내가 몰랐던 그의 모습

조금 통통하다는 이유로 고작 6살 먹은 아이를 굶기라고 소리 지르거나, 엄동설한에 집안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밤샘 공부를 강요당한 기억만을 가진 나에게 그는 아버지라기보다는 ‘무서운 박 사장’ 혹은 ‘어린 시절 자주 배를 곯아 성격이 비뚤어진 촌놈’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나에게 그의 이혼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가족의 결핍’이라기보다는 ‘박 사장, 아니 해병대 박 조교로부터의 해방’이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박 사장도 만만치 않은 강남 김 여사와 그녀의 장성한 자녀와의 새 가족 안에서는 예전처럼 막가파 두목의 삶을 살 수는 없을 터이니 (살짝 얄밉지만)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정상적인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한 박 사장은 이전과는 달리 여자나 딸로서의 의무를 강요하기는커녕 먼저 전화해 안부를 묻는 등의 살가움까지 보여주었다(물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찰칵’ 끊는 전화 버릇은 여전했다). 이 산뜻한 거리감에 힘입어 나는 명절, 결혼과 같은 가족의 압력에서는 자유롭지만 소소하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행복한 20대를 향유했다. 물론, 그러한 지원을 받기만하고 입을 씻을 순 없는 일이다. 나는 그의 환갑이나 진갑 챙기기, 그리고 아주 늙었을 때 다소간의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사장의 사업은 부도가 났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나의 예상과 달리 김 여사가 박 사장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집안 내에서 그의 위치가 땅에 떨어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박 사장, 아니 박 선생은 어려운 새 가족살이를 견뎌내고 있었고, 1년에 서너 번 갖는 나와의 만남은 그에게 한결 애틋한 ‘친정’ 같은 자리가 되고 말았다. “잘 지내냐?”는 질문에 살짝 한숨을 짓다가도 빈약한 상상력에 기댄 허세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모습에서 이상하게도 권위나 돈이 아닌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전혀 몰랐던 그는 자수성가를 할 만큼 성실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좀 단순하거나 속물적인 기질도 있지만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못 봐줄 정도는 아니며, 자기 인생의 좌절을 견뎌낼 만큼의 낙관성과 의지가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요즘 의붓딸로부터 얻은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으며, 여전히 새아내의 눈치를 본다. 사실 그는 그녀 몰래 주식을 해서 몇 번쯤 손해를 보았다. 또 스스로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보니 우리가 그런 관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 아버지…!!

가부장제의 원형이 돼버린 존재

나에게 ‘아버지’는 나의 가부장제 경험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였다. 그와의 경험이 곧 내가 이 세상의 가부장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양식의 원형이 돼버린 존재. 그러나 서로의 삶을 측은해하고, 어려움을 투정할 수 있는 우리 모습에서 나는 ‘관계’를 발견한다. 물론 아직 우리의 관계는 몇 년 되지 않은 서먹함에 불과하고, 결국은 만날 수 없는 차이를 품고 있다. 그래서 우리 관계는 좋아질 수도, 아주 나빠질 수도 있다. 나는 굳이 어떤 쪽이기를 바라거나 노력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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