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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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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시다면…다행일까

등록 2006-01-25 00:00 수정 2020-05-02 04:24

[아버지의 부재에 관한 다섯 개의 고해성사]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고백… 그에게 ‘커밍아웃’하는 건 얼마나 힘들까…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나, 아버지의 부재에 안도하는 동정받기 힘든 슬픔

▣ 김원규/ 회사원

아버님 전상서.
벌써 스무 해하고도 두 해가 흘렀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시던 해, 열두 살이었던 까까머리 초등학생은 서른네 살의 늙수그레 노총각이 됐습니다. 세월은 무사히 흘렀습니다. 다행히 불행은 가족을 비켜갔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동생들도 잘 커서 결혼했습니다. 저도 그럭저럭 지냅니다. 결혼은 아직입니다.

‘혈연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던

괜스레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다행일까, 불행일까. 이런 부도덕한 망설임이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아버지가 살아 계시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마땅하겠지만, 저의 심사는 복잡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아마도 지방 소도시에 살았겠지요. 친척들의 부대낌 속에서. 솔직히 제겐 끔찍한 상상입니다. 건넛집 밥숟가락 수까지 알고 지내는 소도읍에 살았다면, 내가 언제 결혼할지에 대해 사돈의 팔촌까지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척하는) 속에서 살았다면, 저는 숨막혔을 겁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당신의 부재가 자주 불편했지만 때로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아버지까지 계셨으면 정말 힘들었겠다. 이런 철없는 생각을 합니다. 참 이기적인 놈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는 서울이 싫었습니다. 전학을 오고 한동안은 멍하게 교실 창문만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사춘기 소년은 고향이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의 부재가 다행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아버지와 ‘해피투게더’하기 어려웠으란 예감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끔찍한 생각이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마냥 비통해하지 않는 아들이라니, 이게 웬 패륜입니까.

저에게는 혈연공포증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외아들을 편애할수록 불편했습니다. 어쩌다 친척들이 오는 날이면 후다닥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판검사는 못 될지언정 손주조차 안겨드리지 못하다니,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다만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서울 생활은 아슬아슬했습니다. 식구 중 누가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서울은 축복이었습니다. 도시의 공기가 저를 자유롭게 했고, 익명의 자유가 저를 편안하게 했습니다. 저는 “나는 도시의 쥐”라고 말합니다. 게이들은 도시의 후미진 골목을 흘러다닙니다. 어둑한 골목에 숨은 게이바에서 비로소 자신이 됩니다. 그래도 저는 끝없는 미궁을 헤매야 하는 시골쥐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저에게 고향은 낭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가끔씩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제목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문합니다. 너는 고향에 가지 못해서 불행한가, 고향에 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인가.

내 핏줄이 없으면 쓸쓸하겠지요

아버지가 되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알겠다. 이런 상식이 진리라면, 저는 아버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저는 때때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저는 내 친구의 아버지를 동경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친구의 아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제 존재가 세상의 상식과 불화하는 만큼,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살아왔지만 역시 상식의 힘은 무섭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요즘엔 참, 숨을 거두고 나면 나를 기억해줄 핏줄이 없다는 것이 쓸쓸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괜스레 아버지께 미안하고 어머니가 쓸쓸해 보이더군요. 아버지의 부재에 안도하는, 세상에는 이렇게 동정받기 힘든 슬픔도 있는 법이지요. 이렇게 제게 가족 드라마의 해피엔딩은 어렵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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