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로 승부하다 리메이크로 일어서던 김광석이 맘에 들지 않는 나
추모음반을 듣다 보면 구체적 얼굴들이 떠오르다니, 역시 그는 힘이 세!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나는 김광석의 ‘광팬’은 아니다.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보다는 민중가요의 ‘처음 부르기’를 좋아하고, 김광석 프로페셔널리즘보다는 동물원의 아마추어리즘을 사랑했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10명뿐인 김광석 안티”일지도. 원래 이 글도 ‘그러니까 그는 리메이크의 황제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려다가 4천4백9십9만9천9백9십 명의 돌팔매가 두려워서 ‘나는 김광석의 광팬은 아니다’라고 바꾸었다. 미안하지만, 망자에 대한 미안함도 없지 않았다. 설마 김광석의 팬이 아니라고, 김광석의 노래를 피해갈 수 있었겠는가? 당신이 대략 386세대와 엉기고, 대충 노무현에게 투표하는 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는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김광석 사후 10년, 내가 기억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기억하게 해주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인민군 송강호까지 나서서 “광서기는 왜 기케 빨리 죽었음?”이라고 아쉬워했고, 소설가 아저씨, 시인 아줌마들도 저마다 김광석의 팬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일종의 ‘교양인의 상식’이었던 셈이다.
한줌도 안되는 김광석 안티팬으로서…
물론 나도 몰상식하진 않다. 김광석은 나에게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고딩 시절, 김광석이 민중가요 <녹두꽃>을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서 김광석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단 과시하자. 김광석이 <사랑했지만>으로 알려지고, <일어나>로 일어나서, <나의 노래>로 랄라랄라라~ 하는 동안, 김광석은 내게 뭔가 탐탁지 않은 가수였다. 발라드로 승부하다 리메이크로 일어서는 모습이 어쩔 수 없다 해도 맘에 들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의 ‘다시 부르기’는 이래저래 노래운동에 젖줄을 대고 있지만, 그는 노래운동 출신이란 사실을 별로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아직 민중가요 출신이라고 밝히는 것은 대중가요 가수에게 커밍아웃의 의미도 약간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시 부르기’는 꼭 김광석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했을 법하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부르기’의 원곡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매력적인 노래들이었으니까. 내가 뭐라건 그는 성공했다. 나의 20대, 90년대 초·중반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두 장의 추모 음반이 나에게 남았다. <가객>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김광석 목소리의 비장미를 절절하게 살린 노래였다. 김광석 ‘처음 부르기’로는 모처럼 시대적 맥락까지 담고 있었다. 김광석의 다른 면모는 나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었다. <가객>에 참여한 가수는 백창우, 이정열, 권진원, 안치환 등이다. 대략 김광석의 노래운동 시절의 동지들이 주동해서 만든 음반이었다. 여기까지 90년대 후반의 이야기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올해 MP3 플레이어를 사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다운받았다. <김광석 앤솔로지 1>은 감동이었다. 안치환부터 김건모까지, 살아 있는 선후배가 죽은 김광석과 주고받으면서 부르는 음반이다.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윤종신의 목소리를 좋아하게 만들었고, <그대가 기억하는 나의 옛 모습>은 잘 몰랐던 조트리오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안치환과 주고받는 <그날들>을 듣다가는 울컥했다. 아무리 탐탁치 않아도 그는 ‘내 청춘의 영원한’ 그 무엇으로 남았다. <거리에서>를 듣다 “그리운~ 그대~”라고 목청이 올라가면 고딩 시절의 독서실이 떠오르고,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면 스물다섯이 넘어 군대 가던 친구가 떠오르고,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으면 나를 버리신 ‘그분’이 생각나고,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 막막했던 청년 실업자 시절이 떠오른다. 유행가를 들으면서 구체적인 얼굴이 떠오르면 그 노래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당신에게 그러하듯, 나에게도 그러하다. 김광석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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