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의 추억_드라마]
최진실도 심은하도 고소영도 다 싫다고 심술을 부리고 싶다
벌써 전지현·이나영·강동원·현빈 같은 80년대생들에 열광하다니…
▣ 강명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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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진실이 싫다. 심은하도 싫다. 고소영도 싫다. 물론, 드라마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심은하가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열렬히 환영할 것이고, 다시 돌아와준 고현정에게 감사한다.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건 지극히 편협하고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다.
10년 전, ‘X세대’니 ‘신세대’니 하는 말들은 거의 신드롬처럼 사회를 뒤덮었고, 막 전성기를 시작한 그들은 신세대의 상징이 됐다. 아예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라는 <질투>로 톱스타가 된 최진실의 별명은 ‘신세대 요정’이었고, 고소영은 ‘당돌한 신세대 여성’이었으며, 심은하가 스타가 된 건 당시 모든 남학생들의 꿈을 덩크슛으로 바꿔버린 ‘슬램덩크’의 영향을 받은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부터였다. 그리고 그 ‘누나들’에게 열광하던 76년생 고등학생이 서른이 되는 지금까지, 그들은 여전히 톱스타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난 그게 불만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없었다고요
왜 그 누나들만 10년 동안 톱스타를 해야 했을까. 최진실과 고소영, 장동건과 배용준, 서태지와 신승훈이 연예계의 아이콘 자리를 유지하는 동안, 내 또래의 연예인들은 좀처럼 그들의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그나마 고교생 때부터 헉 소리 나는 미모를 인정받아 일찍 눈에 띈 김희선 정도가 예외였다. 그리고 최진실이 아줌마 파마를 하고 <장밋빛 인생>에 나올 때쯤 되니, 사람들은 1976년생들을 건너뛰고 곧장 언제 태어났는지도 몰랐던 80년대생 전지현과 이나영, 강동원과 현빈에게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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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 X세대, N세대. 세대를 위한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우리를 위한 이름은 없었다. 우리는 신세대가 입에 오르내릴 때는 아직 고교생이었고, N세대는 1976년생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의 ‘애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 리메이크하는 <사랑과 야망>의 원작도 보았고, 반대로 <위기의 주부들> 같은 외국 드라마나 <논스톱>도 즐겨 볼 수 있다. 그 대신 저것이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만큼 우리의 ‘애매한’ 정서를 반영하는 작품은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그래서 딱 서른살짜리 여자가 주인공이었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반가웠다).
괜한 심술이란 건 안다. 하지만 한창 취업해야 할 때 IMF와 불황을 겪었고, 직장에 들어가니 경기 호황 당시 입사해 자리를 굳히고 있는 선배들과, ‘아예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받기 시작한 80년대생들을 보며 이상한 거리감을 느껴야 했다. 이상한 거리감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왜 드라마에서까지 우리는 주인공으로 잘 안 나오는 거냐고요. 서른살짜리 배역은 서른살한테 시켜야지 왜 나이 많은 톱스타나 댓살은 더 어린 애들이 연기하냐고요. 어쩌면 우리는 김선아나 김정은처럼, 오랫동안 경쟁에서 ‘살아남았’다가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하는 게 최선인 운명인 걸까. 그래도 가끔은 톱스타도 해보고 싶은데. 정말,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내가 서른이 되긴 됐나 보다. 이번 추석엔 조카들한테 용돈도 줘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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