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유리온실 1만평에서 연 17억원 소득 올리는 신선농산물 수출 1위 작물
논갈아 엎은 96년 뒤 장미 실패하고 건져 올린 정영식씨의 첫 개가</font>
▣ 진천=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충북 진천군 이월면에 들어서면 시골 길가 몇 군데에 ‘에덴영농조합법인’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올해 일본으로 수출 물량이 크게 늘었어요. 부산 수출항으로 우리 농장의 파프리카를 싣고 갈 차량들이 많아졌는데, 농장을 잘 찾지 못해 헤매는 것을 보고 얼마 전부터 길가 진입로 몇곳에 팻말을 붙였죠.”
배 500만 달러 vs 파프리카 5천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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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영농조합법인(대표자 정영식·57)은 1만평 규모의 유리온실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있는 농가다. 생산한 파프리카의 3분의 2는 일본에 수출하고, 나머지는 국내 백화점 등에 공급하고 있다. 올해 파프리카를 팔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농가수입은 무려 17억원. 정씨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까지 합쳐 일가족 네명이 경영하는 농가에서 한해에 무려 17억원의 수입을 올린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 가족이 밤낮 없이 일하긴 하지만, 어디 도시 월급쟁이하고 소득이 비교나 되간디. 올해부터 파프리카 재배로 재미보고 돈 만지면서 우리 두 아들도 어디 다른 데 취업할 생각 전혀 안 해.”
파프리카는 지난 94년 국내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했다. 국내 생산 파프리카는 국내 소비분을 빼고 거의 다 일본 시장에 수출되는데 2003년에 파프리카 수출액 5천만달러를 달성했다. 파프리카는 시장 개방에 떨고 있는 농가들에게 ‘수출농업’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작물이다. 현재 국내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곳은 400여 농가로 평균 재배면적은 0.6ha(1700평)다. 국산 파프리카는 지난해 일본 시장에서 네덜란드를 제치고 점유율(55%) 1위로 뛰어올랐다. 그동안은 네덜란드가 8∼11월에 일본에 수출하고, 국산 파프리카는 재배와 수확 시기를 달리해 서로 경쟁을 피해왔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파프리카는 지난해 4870만달러, 올해는 6월 말까지 295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사과·배의 연간 수출 규모는 500만달러에 불과하다.
에덴농장 유리온실에 들어서자 어른 키 두배 정도로 거의 다 자란 파프리카 수만 그루가 거대한 숲처럼 재배되고 있었다. 나무마다 어른 주먹만 한 파랗고, 노랗고, 빨갛고, 또 주황빛이 도는 여러 색깔의 울퉁불퉁한 파프리카가 10여개씩 매달려 있었다. 아주머니 몇명이 사다리와 흡사한 레일카에 올라타 나무 위에 매달린 파프리카를 따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이 농사짓는 사람은 다른 건 못 지어. 한 나무에 이렇게 많이 매달려 있잖여. 무지하게 달렸는 거 봐. 따고 나면 달리고, 따고 나면 또 파프리카가 달리고, 내 참.” 정씨는 입가에 번지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해 연신 허허 웃었다. “일본은 품값이 비싸서 파프리카 경쟁력이 없어. 우리가 생산만 하면 얼마든지 다 수출할 수 있어.” 파프리카는 한평에 10그루 정도 재배되는데, 한번 심으면 나무마다 대여섯번씩 수확할 수 있다. “여기서 파프리카를 많이 딸 때는 1주일에 1억원어치도 나와. 여기서 저기까지 파프리카 한 줄만 따도 5kg들이(약 25개) 20박스씩 나오는데, 한 박스에 우리가 도매시장에 파는 값이 3만원이야.” 요즘 1주일에 수천 박스씩 담아 일본 시장과 백화점에 팔고 있다. 유리온실에서 마치 돈을 쓸어담듯 파프리카를 수확하고 있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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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장의 유리온실은 가동과 나동으로 나뉜다. 가동은 10월에 파종해서 이듬해 3월에 파프리카가 나오고, 나동은 4∼5월에 파종해서 8월에 수확한다. 연중 풀가동 생산 시스템인 셈이다. “우리 농원의 파프리카는 국내 다른 파프리카 농가들이 수확을 다 마칠 때쯤 시장에 나오는 게 특징이야. 남들은 다들 8월 여름철에 재배를 시작하는데 나는 거꾸로 봄과 가을에 파종하는 거지. 파프리카 작기가 전혀 달라. 남들은 여름 몇달 아니면 재배가 안 되는 걸로 아는데 그 관행을 내가 깬 거야. 처음에는 나더러 다들 ‘배짱도 좋다’고 했지. 그런데 과감하게 바꿔 시도한 게 딱 맞아떨어진 거야. 남들이 안 할 때 해야 하거든.” 물론 정씨 농장의 파프리카는 수확 시기상 일본 시장에서 네덜란드산과 직접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씨는 “전체적으로 생산량이 줄어들 때 우리 농장에서 파프리카가 나오기 때문에 국내 시세도 받쳐주고, 일본에서도 얼마든지 네덜란드산과 붙어볼 수 있다”며 “예전에 네덜란드에 가보니 네덜란드는 연중 기온이 16∼28도라서 우리나라처럼 크고 맛 좋은 파프리카를 생산할 수 없더라”고 말했다.
파종시기 차별화, 네덜란드 컨설팅도
사실 정씨가 파프리카 재배로 쏠쏠한 재미를 본 건 올해가 처음이다. 200마지기 쌀농사를 짓던 정씨는 지난 96년 정부 보조금을 절반 받아서 30억원을 투자해, 논 50마지기를 갈아엎고 그 자리에 유리온실을 세웠다. 처음에는 온실에 진천 특산품인 장미를 대규모로 재배했다. 당시 장미 생산은 그런대로 잘됐다. “생산만 잘되면 뭐해. IMF가 터져서 누가 꽃을 사가나? 대체 사는 사람이 있어야지.” 계속 장미를 심었다가는 이자 갚느라 갖고 있던 논마저 다 날리든지 온실이 날아가든지 할 판이었다. 무엇을 심어야 돈이 될까? 두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전국 유리온실 재배농가를 돌아다녔다. “다녀보니 약은 농가는 이미 다 장미나 원예는 접고 파프리카로 돌아가 있더라.” 정씨도 파프리카 재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2년 마무리도 못 짓고 폭우로 농사가 결딴나고, 2003년에도 유리온실에 물이 가득 차 종자가 쓸려가버렸다. 올 초에는 남은 논 70마지기를 팔아서 유리온실 빚을 다 청산했다. “예전에 충북에서 비닐하우스로 22개 농가가 파프리카를 재배했는데, 그 전에는 소비자들이 먹을지도 몰랐고 전혀 안 팔려서 피망이라고 속여 팔 정도였어. 물론 다 망했지. 근데 지금은 골다공증 예방 효과에다 피부미용에 좋다고 파프리카 열풍이 불고 있잖여.
논 200마지기 중에서 70마지기는 팔아서 유리온실 빚 갚고 100마지기나 아직 남았지만, 정씨는 “요즘 쌀값? 나 잘 몰라”라고 말했다. 파프리카로 대박이 터졌는데 쌀농사는 이제 대수롭지 않다는 것일까? “이거 몇개나 달렸나 봐. 나무마다 하얗게 꽃 피고 헛것이 하나도 없잖여. 마디마디 빨갛게 노랗게 주렁주렁 매달린 게 말도 못해. 이러니 이거밖에 다른 농사지을 것 있겠냐고. 따고 나면 또 나무가 빨갛게 되고 주렁주렁 매달리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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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제로 시대엔 ‘수출’이 살길</font>
농촌경제연구원 정명채 연구위원은 “길면 20년, 짧게는 10년 안에 거의 모든 농산물들은 관세 제로 퍼센트로 개방될 것이다. 이제 농산물은 해외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면 다 죽고, 수출 시장을 개척하면 산다”라고 말했다. 수출과 관련해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는 파프리카에 이어 농업 수출 품목으로 집중 육성할 작물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사쪽과 서울대 김완배 교수, 정명채 연구위원 등 5명으로 농산물 수출전략자문팀을 구성해 채소류·과수류 등 5개 분야에 걸쳐 14개 품목을 선정했고, 더 압축해 최종 10여개 품목을 확정할 계획이다. 품목별로 50만달러 이상의 수출 시장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품목이어야 선정 대상이 되는데, 국내 재배 여건과 세계시장 규모, 가격경쟁력 등을 따져보고 있다. 선정된 품목에 대해서는 품질·유통·브랜드·마케팅을 유통공사 차원에서 집중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한국을 농산물 수출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공사는 집중 수출 육성 품목을 다른 경쟁국에서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초기에는 국내 농민들한테도 알리지 않을 방침이다. 알려지면 금방 생산 과잉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통공사 관계자는 “파프리카에 이어 우리나라 수출농업을 이끌어갈 품목을 찾고 있다”며 “품목이 선정되면 일단 파일럿 시스템(정부에서 수출 가능성을 시범적으로 테스트해본 뒤 상품성을 따져보고 시험이 끝나면 농가에 사업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공사가 먼저 시작하고, 그 뒤에 민간에 이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육성 품목은 2008년부터 전략적으로 단계별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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