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알려진 세가지 <독립신문>과는 다른 해방 후 첫 우리말 신문
1945년8월17일 창간호에서 “쇠망해가는 일본인 뒤꽁무니에 침뱉지 말자”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해방을 맞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발행되던 신문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딱 하나였다. ‘민족지’ 논란을 빚고 있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전시 총동원기’의 핍박을 못 이겨 1940년 8월10일 나란히 폐간됐고, 몽양 여운형의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일장기 사건’으로 1937년에 문을 닫았다. <매일신보>는 해방을 맞는 8월15일 지면에서도 ‘항복’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은 채, 일왕의 일본어 조서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소개했다.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사)는 “<매일신보>는 전쟁이 끝날 무렵, 타블로이드 2면의 빈약한 지면을 발행하면서도 일본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논조로 독자들을 기만했다”고 말했다.
일제의 집요한 정보 통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하기 위해, 해방 조국에서 제일 먼저 창간된 우리말 신문은 무엇이었을까. 근현대사 관련 자료 수집가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가 8월9일 <한겨레21>에 공개한 <독립신문> 창간호(1945년 8월17일치)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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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김영준 대표가 <한겨레21>에 공개
그동안 알려진 <독립신문>은 모두 3가지로, 첫째는 1896년 4월7일 서재필 박사가 창간한 원조 <독립신문>, 둘째는 상하이 임시정부가 발간해 <아리랑>의 김산이 식자공으로 일하기도 했던 <독립신문>, 셋째는 상하이 독립신문의 경리부장으로 일하던 김승학이 발행한 <독립신문>(1945년 10월12일~1949년 4월)이다. 이 신문은 언급된 3가지 <독립신문>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서둘러 제작된 듯 16절지 크기의 누런 종이 1장에 앞쪽만 인쇄됐고, 발행인은 ‘박용구’로 표시됐다. 신문 발행기관은 ‘독립신문사’로 되어 있다. 정진석 명예교수는 “창간 날짜로 볼 때 이 신문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신문인 것이 확실하다”며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발행 기간이 극히 짧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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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첫날,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왔을 것 같지만, 이는 해방 정국을 다룬 드라마가 만들어낸 ‘허구’다. 조선 사람들은 일제의 철저한 정보 통제에 길들여져 급박한 세계 정세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한국사)는 <한국현대사>에서 이 광경을 “(8월15일) 12시 일본 천황의 방송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어려웠고, 라디오를 가진 사람도 많지 않았다”며 “다음날 휘문중학교 교정(지금의 현대 계동 사옥)에서 열린 몽양 여운형의 사자후를 들으면서 해방을 실감했다”고 적었다.
그렇지만 해방 소식이 전해진 뒤 흥분한 군중은 일본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헌병과의 충돌도 빈번했다. 신문은 ‘쇠망해가는 일본인의 뒤꽁무니에 침뱉지 말자’는 기사를 통해 “36년간 갖은 학정을 한 것은 일본 정부이요, 그들 개인은 정부의 앞잡이거나 못 먹어서 찾아온 불쌍한 족속”이라며 “이제 나라가 망하고 쥐구멍을 못 찾는 그들을 불쌍히 여김은 빛나는 신라 화랑도를 이은 우리 민족의 대도량”이라고 국민들에게 현명한 대처를 촉구했다.
또 ‘가두 실황 방송’이라는 코너에서는 감격에 겨워 만세를 외치는 서울의 들뜬 표정과, 건국음악 총본부를 설립하려고 이화고녀(현 서울 정동 이화여고)에 음악계와 연극계 인사들이 모인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악질 폭적은 한 가지를 보아도 열 가지를 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덕수궁 앞에 고등법원(현 서울시립미술관)을 짓고, 독립문을 지나 형무소(현 서대문 형무소 역사공원)가 있다고 일제의 학정을 에둘러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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