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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언니들을 막을 수 없다

등록 2005-05-26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늙을수록 재밌어지고 멋있어지는 커리어우먼
김미화부터 김현숙까지 개그계의 여걸파이브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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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개그우먼은 커리어우먼이다. 여배우들은 젊어서 꽃으로 대접받지만, 개그우먼들은 나이들수록 꽃을 피운다. 시절이 변했다. 요즘 개그우먼들은 개그맨들의 보조자가 아니다. 웃기는 개그맨과 받쳐주는 개그우먼의 고리타분한 공식은 깨지고 있다. 아니 깨졌다. 동년배의 개그맨들이 브라운관에서 사라질 때 동년배의 개그우먼들은 브라운관을 빛낸다. 그들은 다행히 선배 개그우먼 언니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간 전철도 되밟지 않고 있다. 연예계의 외모 잣대는 성차별적이다. 여성이면 외모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도 개그계는 외모 자본이 덜 중요한 연예 직종이다. 얼굴 안 되고 몸매 좀 빠져도, 아이디어 좋고 노력하면 성공한다. 지금껏 연예인으로 치부돼왔던 개그우먼을 직업인으로 재조명했다. 개그우먼은 커리어우먼이다.

22년차, 길을 개척하는 김미화

요즘 개그우먼 언니들은 나이들수록 재미있어지고, 늙을수록 멋있어진다. 맏언니 김미화(41)부터 둘째 언니 이경실(39), 중견 언니 조혜련(35), 뜨고 있는 김숙(30), 시작하는 김현숙(28)씨까지 ‘여걸 파이브’를 만났다. 그들의 커리어를 물었다. 여성으로 정체성을 질문했다. 참, 아쉽게도 빠진 언니들이 있다. 박미선 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정선희 언니와 박희진 언니는 요즘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했다. 여성이 살아남기 더 힘들다고 소문이 자자한 개그계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게 됐을까?

한국방송 건물의 1층 커피숍에서 만난 김미화씨는 인터뷰 내내 인사하기 바빴다. 지나가는 사람, 옆에 앉은 사람,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의 인간관계 폭이, 겸손한 태도에서 말하지 않아도 보였다. 사람들은 그를 “예외적인 개그우먼”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개그우먼’이라고 한정짓기 어색할 만큼 활동폭이 넓다. 2003년 가을부터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맡았다. 특유의 순박한 말투와 쉬운 표현으로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올 5월부터는 작가 장정일씨와 함께〈TV, 책을 말하다〉의 진행도 시작했다. 모두 개그우먼, 아니 개그맨 ‘최초’의 꼬리표를 달고 시작한 일이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

벌써 데뷔 22년차다. 강산이 두번 바뀌고도 해가 두번 바뀐 세월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잘나가는 현역이다. 비결을 물었다. 김미화씨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다”라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한 덕분”이라고 답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집안일을 돌보며 밖에서 연예활동하느라 이중으로 힘들었다고도 털어놓았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겨낼 수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었다고도 했다. 이날도 그의 가방에는 4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tv>의 진행을 위해 일주일 동안 읽어야 하는 분량이다. 정말 주경야독으로 살아왔다. 올 초에는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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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기도 있었다. 신인 시절, 밤무대를 뛰다가 방송국 PD에게 찍혔다. 무려 3~4년 동안 배역을 받지 못했다. 밖에서는 이를 악물었지만, 집에서는 통곡했다. 배역이 없어도 녹화 날이면 스튜디오에 나갔다.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시뮬레이션을 했다. 동기들, 특히 남자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그는 “흔히 여자들은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었다”며 “작품 짜는 능력, 아이디어 내는 능력, 연기하는 능력,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으려고 악바리처럼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노력했고, 성공했다. 요즘도 후배 개그우먼들이 “우리는 남자들보다 아이디어가 약하잖아요”라고 말하면 속이 터진다. 항상 “제발 ‘음매 기죽어’ 하지 마라”고 충고한다.
그는 이날도 ‘행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I love children’이라고 적힌 티셔츠였다. 얼마 전 청각장애 아동을 돕는 행사에 참여하고 얻었다. 알다시피, 그는 개그우먼이자 시민단체 활동가다. 참여연대, 녹색연합,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등 홍보대사는 도맡고 있다. 사회참여는 인기 장수의 비결이다. 그는 “공인으로 책임을 다하면, 사랑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누가 뭐래도 자신은 개그우먼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웃기고 자빠졌네’ 하잖아요. 정말 웃기다 자빠지고 싶어요. 무대에서.” 요즘도 깨어 있는 시간의 8할은 개그를 생각하며 보낸다. 최근에는 <개그사냥>의 심사위원으로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왔다. 그가 가장 듣고 싶은 소리는 “김미화가 했잖아”다. 그는 “개그맨에게 새로운 영역의 프로그램을 맡길까 망설일 때 ‘김미화가 (이미) 했잖아’라는 소리가 나온다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후배 앞길 막는 선배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달린다.

18년차, 개그우먼의 전형 이경실

이경실씨는 매우 늦었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 넘게 늦었다. 그는 헐레벌떡 경기도 일산 탄현의 SBS 녹화장으로 뛰어들어왔다. “메이크업 하고, 헤어 하느라 늦었다”고 한다. 마침 비가 내려 차가 막혔다. 늦었는데도 밉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1996년부터 방송할 때는 꼭 헤어와 메이크업을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받는 돈에 부끄럽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외모도, 마인드도 ‘아줌마’가 돼서는 안 된다는 철학도 갖고 있다. 김미화씨가 “예외적인 개그우먼”이라면, 이경실씨는 “전형적인 개그우먼”이다. 개그로 출발해서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로, 드라마 연기자로, 개그우먼의 전형을 개척하고 있다. 물론 그도 ‘최초’다. 오락 프로그램 단독 사회를 맡은 최초의 개그우먼이다. 그는 <진실게임>의 단독 사회자로 인기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그의 안정감 있는 진행, 재치있는 입담은 업계 최고로 인정받는다. 요즘도 <콜럼버스 대발견>을 단독으로 진행한다. 한 방송국 PD는 “이효리씨가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단독 진행을 맡기지는 않는다”며 “이경실씨는 현재로서는 단독 진행을 맡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여성 엔터테이너”라고 평가했다.
그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오늘은 창대하다. 1987년에 데뷔했으니 연예생활 18년차, 이경실씨는 갈수록 잘나간다. 사실 데뷔 초기, 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이경실씨는 ‘톱’의 위치에 올라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그것이 그의 강점이다.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도 여성으로서 어려움을 절감한다. 그는 “솔직히 전에는 여성으로 정체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혼하고 나서 여성으로서 고충을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사회를 맡다 보면 제 일상을 이야기해야 되잖아요. 부부간의 에피소드라든지. 이혼을 하고 나니까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워지고 꺼리는 프로그램이 생기게 돼요. 그래서 이제는 드라마를 하려고 해요.” 그에게 “이혼이 아직도 장애가 되느냐”고 묻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이 아니라 영원히 장애가 될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 그는 최근 <불량주부>로 10년 만에 드라마에 돌아왔다. 얘기했듯이 각본이 있는 드라마를 하면 아무래도 편하기 때문이다. 생활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그래도 진솔한 삶이 담긴 토크쇼는 영원한 마지막 목표다. 그는 “이제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었으니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언젠가는 연예인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인들이 나오는 토크쇼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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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6699"> △ 코미디극과 쇼 프로그램에서 '언니'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코미디하우스> '장금아, 장금아" 의 조혜련, 이경실, <개그콘서트> '꼭 그렇지만은 않아' 의 김현숙(가운데), 이제는 '여걸 식스'로 바뀐 '여걸 파이브' 의 이경실, 조혜련, 옥주현, 정선희. (사진/ 한국방송, 문화방송 제공) </font>


13년차, 일본 진출 준비하는 조혜련

그도 어느덧 데뷔 13년차다. 이제는 지칠 때도 됐지만, 여전히 도전정신이 넘쳐난다. 한국방송 <즐거운 일요일 해피선데이> ‘여걸 식스’ 촬영 현장에서 만난 조혜련씨는 진짜 여걸이었다. 그는 대뜸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일본어 공부도 열심이다. 그는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하면 일본어로 코미디 못하겠느냐”며 “5년만 투자하면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라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남자들한테는 프로그램 사회를 맡기면서 여자들은 패널로 부른다”고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엔터테이너이자 영원한 에너자이저다. 개그에 연극에 노래까지 겸하고 있다. 이미 드라마에는 심심찮게 출연했다. 최근에는 연극 <6월의 아트>에서 씩씩한 대학교수 역을 맡아 무대에도 오른다. 추억의 팝송 <원티드>를 조혜련식으로 부른 <아나까나>는 이미 공전의 히트 중이다. 올 봄학기에는 동아방송대 방송연예과 겸임교수로 연기도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어서 스타니슬라프스키 연기론 책을 다시 읽고, 스승인 한양대 연극영화과 최영희 교수님의 수업도 도강했다”고 뿌듯해했다. 지치지 않는 비결을 물었다. “일을 즐기면서 하니까.” 그는 영화배우가 꿈이라고 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문소리씨가 한 역할을 제가 하지 못하란 법 없잖아요?”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10년차, 난다김은 위기를 느낀다

‘난다김’ 김숙씨는 요즘 위기다. 2년 동안 해온 난다김 캐릭터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그는 요즘 “지금 잘못하면 바로 잊혀진다”는 위기감에 시달린다. 오랜 무명 생활이 그의 위기감을 부추긴다. 어느새 데뷔 10년이 흘렀다. 7년을 무명으로 지냈다. 이화여대 앞에서 옷장사도 해봤다. 2002년 <개그콘서트>에서 ‘따귀소녀’로 겨우 떴다. 하지만 따귀소녀는 6개월 만에 <개그콘서트> 출연진 교체로 막을 내렸다. 다행히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난다김 캐릭터가 인기를 얻었다. 그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미연의 연가>를 패러디한 <난다김의 트로트 연가>를 내고 음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요즘엔 부쩍 선배 개그우먼들에게 기댄다. 박미선, 송은이 선배가 그의 ‘멘토’다. 그는 “개그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혼자 성공할 수 없다”며 “개그우먼들끼리도 방송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친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개그우먼들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개그우먼들이 더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송은이 언니에게 ‘그래도 언니 정도면 자리잡은 거 아냐’라고 하면 ‘내가 뭘, 아직 멀었어’라고 대답한다”고 전했다. 그도 어느새 공개 개그 프로그램의 맏언니가 됐다. 그는 “후배 개그우먼들이 너무 빨리 사라진다”며 “후배들이 힘들다며 조금 쉬겠다고 하면 가슴이 덜컥한다”고 말했다. 세상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개그우먼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1년차, 출산드라 김현숙의 미래

요즘 뜨는 개그우먼, ‘출산드라’ 김현숙씨의 개그에는 ‘여성’이 녹아 있다. 출산드라의 웃음은 (특히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래 출산드라는 지금보다 더욱 여성주의 성격이 강한 풍자 코미디였다. 그는 “원래는 출산드라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까불면 아이를 낳아주지 않을 테다’라고 하면 남자들이 무릎을 꿇는 형식의 일부다처제 코미디였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직은 너무 급진적인 페미니즘이어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음식 소재를 끼워넣다 보니 오늘의 출산드라가 만들어졌다. 그는 “개그는 자신을 낮춰서 타인을 웃기는 작업”이라며 “살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는 여성들이 더 강한 페이소스가 담긴 개그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한계도 우려했다. 그는 “세상의 중심이 남자이고, 개그는 사회의 반영이어서 여성들이 개그에서 핸디캡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출산드라의 ‘말씀’처럼,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막내 출산드라부터 맏언니 김미화씨까지 개그우먼들은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참 보기 좋은 ‘시추에이션’이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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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의 계보를 말한다</font>

최초의 유행어 탄생시킨 김보화, 단독 코너에서 스탠딩 개그 처음 선보인 박미선

▣ 임기홍/ 코미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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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코미디언과는 다른, 개그맨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였다. 본격적인 개그맨의 등용문이 열린 것은 1979년 당시 동양방송(TBC)이 주최한 <개그콘테스트>를 통해서였다. 서세원 등 개그계에 족적을 남긴 개그맨들이 많이 탄생했지만 아직 개그우먼은 한명도 없었다. 다음해인 80년 TBC 제2회 개그콘테스트에서 첫 개그우먼이 탄생했는데 바로 이성미와 김은우다. 79년과 80년에 탄생한 신인 개그맨들을 주축으로 기존 코미디와는 다른 예능 프로가 탄생했는데 TBC의 <살짜기 웃어예>와 문화방송의 <청춘만세>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개그우먼들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오히려 탤런트 출신인 박성미와 지예(본명 지연성) 등이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은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탤런트였지 개그맨은 아니었다.
이후 81년 문화방송의 개그 콘테스트에서 특별한 개그우먼이 탄생했으니 바로 김보화다. 김보화는 “아! 어느 세월에” “일단은~” “아! 이 사람아! 뭘 그리 놀~라나” 등 개그우먼으로는 최초로 유행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83년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에서도 개그 콘테스트를 개최했는데 이선민이 탄생했고, 다음해엔 김미화·이경애·임미숙 등이 발탁됐다. 87년과 88년에는 이경실과 박미선 등이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뽑혀 어느 정도 개그우먼들의 입지가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박미선의 등장은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박미선은 한국방송의 <쇼 비디오쟈키>에서 ‘별난 여자’라는 단독 코너에서 스탠딩 개그를 선보인 최초의 개그우먼이 되었다.
이후 90년대에는 개그맨 못지않은 재간꾼 개그우먼들이 많이 등장했다. 김지선, 정선희, 조혜련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김지선이 비주얼한 개그를 선보였다면 정선희는 박미선식 여성적 웃음의 대를 이었다. 여기에 조혜련은 이경실과 김미화가 펼친 ‘강한’ 개그를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다. 2000년대로 온다면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박희진, <개그콘서트>에서 ‘출산드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현숙, ‘난다 김’으로 음반까지 낸 김숙, ‘알까리라 뉴스’의 김세아 등이 주목받는 신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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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12D84">[초점]</font> 국적 ‘마녀사냥’을 중단하라…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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