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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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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열을 너덜해진 그대에게!

등록 2005-05-25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각계 인사 21명이 털어놓는 ‘종이잡지가 사랑스러운 이유’</font>[%%IMAGE1%%]

1. 오연호 / <오마이뉴스> 대표

한번 탑은 영원한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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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신문 경영자로서 종이잡지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솔직히 나는 종이매체의 앞날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러나 아주 그런 것만도 아니다. 종이매체도 인터넷 시대에 맞게 자신의 존재 기반을 재정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매체의 장점 중 하나는 ‘편집 서비스’에서 뛰어나다는 것이다. 내 사무실에는 편집된 종이신문 기사를 오려놓은 액자가 2개 있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에 실린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다. 그동안 이런저런 인터넷매체들이 <오마이뉴스>를 보도했지만 그 기사들을 오려서 액자에 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만큼 종이매체는 한눈에 기사 내용을 파악하게 해준다. 독자들은 잉크 냄새와 함께 편집의 편리성 때문에 종이매체를 집어들 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진중한 기사를 제대로 대접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좋은 기획기사를 썼다고 하자. 인터넷신문이 이를 1면 머리에 올려놓아도 그 자리에 오랫동안 버티지 못한다. 의미는 있지만 독자들이 클릭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각 기사의 클릭 수를 수시로 파악하는 편집부는 그 기사를 머리에 걸어두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몇 시간 안 돼 다른 읽힐 만한 기사로 대체하곤 한다. 그러나 종이잡지에서 한번 표지기사면 영원한 표지기사다. 종이잡지 독자들은 지구온난화 관련 기사를 꼼꼼히 다 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영원한 탑’의 무게에 영향을 받아 그 이슈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2. 최재천 / 열린우리당 의원

그 정겨운 찝쩍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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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로 다른 이의 생각을 가늠할 즈음부터 읽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이던 1970년대 시골엔 책이 귀했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신문이나 잡지조차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바람에 귀퉁이가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이제는 제목조차 어슴푸레한 무슨 농민잡지의 한 대목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게다. ‘보는 행위’라는, 육신을 통해 기억된 경험은 아주 오래 몸에 익어 있는 모양이어서 헌책방과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들춰보는’ 노동을 곁들인 이 습관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은 오히려 읽을 게 귀한 게 아니라 미처 읽어내지 못해 탈인 시대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겐 모니터로 들어오는 문자가 낯설다. 글자보다는 이미지 같다. ‘탐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장시간 들여다보고 있으면 멀미가 난다. 의식은 반보쯤 앞서가지만 몸에 배인 습관은 구세대여서일까. 나는 잉크가 밴 것이 좋다. 특히 주기적인 기다림을 인내한 자에게만 찾아오는 잡지의 매력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잡지는 종이에 박힌 활자의 크기와 위치, 서체의 모양과 색깔, 사진 자리와 기사가 실린 순서까지도 독자에게 말을 건다. 그런 찝쩍거림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

3. 전여옥 / 한나라당 대변인

잡지는 ‘너무 싼’ 오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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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는 ‘엔터테인먼트’(오락)다. 아니, 편안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교육+오락)다. 머리 아플 때 잡지를 읽는 것은 내 취미다. 한국방송 도쿄 특파원(1991~94)으로 있으면서 주말엔 어김없이 열대여섯권의 잡지를 사다가 오락처럼 읽었다. 일본엔 잡지가 많다. 그만큼 사회의 다양성이 발달돼 있다.

잡지는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또 원고를 쓰는 것처럼 온 신경을 집중할 필요도 없다. 어디든지 갖고 다닐 수 있다. 그냥 즐기면 된다. 보고 나서는 버린다. 그게 좋다. 다른 오락에 비해 싸다. 3천~4천원이면 족하다. 경제적으로 볼 때 술집에 하루 가서 서너명의 친구들과 술 마시는 돈이면 한달 내내 행복할 수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을 20여년 동안 보고 있다. 1987년 한국방송 보도본부 기자로 있으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취재했다. 이 잡지가 나에게 삶의 지혜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해줬다. 개인 돈을 들여 30여종의 국내외 잡지를 보고 있다. 의원실에서 구독하는 것까지 합하면 40~50종이 된다. 오프라 윈프리가 펴내는 <o> <리얼심플> 등 미국 잡지들, <아에라> 등 일본 잡지들도 구독한다. 여행을 다니면 꼭 그 나라의 잡지를 사본다.

4. 황경신 / <paper> 편집장

종이는 우리와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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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하루는 온통 뒤죽박죽으로 흘러가는 듯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조명해보면, 인생이란 비교적 일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0년 전, 우리가 소규모의 자본과 인력으로 <paper>를 창간할 당시, ‘정보는 더 이상 힘이 되지 못한다. 이제 정보를 어떻게 가공해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문제다’라는 믿음이 내게 있었다. 정작 그런 생각은 반쯤 잊어먹고 매달 마감을 하느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세상은 서서히 그러나 순식간에 변화했다.
세상에 대해 대단한 의견을 피력하며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욕망 같은 건 처음부터 우리에게 없었다. 다만 갖가지 재료들이 차고 넘치는 정보의 시장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별해 정성껏 다듬고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일이 즐거웠고, 우리가 차린 식탁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화려하지 않지만, 플라스틱 그릇이나 인스턴트 요리 따윈 사용하지 않는 그 소박한 식탁이 나는 ‘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사소하고 소중한, 가장 낮은 곳에 머무르는 그 존재는 우리에게 ‘보고 듣기’를 강요하는 대신, ‘나누고 소통하는’ 마당이 되어주는 것이다. ‘종이는 우리와 소통한다’라는 것에 관한 과학적인 증거를 나는 제시할 수도 있다. 모든 종이는 한때 나무였기 때문이다. 살아 숨쉬는 생명에 대한 기억을, 그들이 잊었을 리 없다.


5. 김종욱/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냄비받침 오려서 메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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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힘과 위상이 놀랍고 두렵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은 오프라인 신문이나 잡지를 여전히 선호한다. 특히 잡지는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고 지면에 메모도 할 수 있다. 좋은 기사는 찢어서 따로 보관할 수 있다. 잡지 그 자체가 절연체이므로 뜨거운 냄비 받침으로도 쓸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왠지 인터넷에서 본 기사는 머리에 별로 남지 않는 데 반해 종이잡지에서 본 기사는 훨씬 오래 기억되고 만져보고 접어도 보고 둘둘 말아도 볼 수 있는 친근감이 있다.


6. 김현숙 / 개그우먼·<개그콘서트> 출산드라 역

그분은 번데기를 감싸며 환생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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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날로그적 인간이라 마우스보단 손가락에 침 발라 넘기는 느낌이 좋다. 다음 장엔 뭐가 나올까 침 흘리며 궁금해한다. 서둘러 밥 먹다가 젓가락 씹듯이 두세장 겹쳐 넘기곤 어리둥절해하기도 한다. 글쓴이의 냄새를 느끼며 오감으로 읽는다고나 할까. 냄새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독특한 향기로 우리를 꼬드기는 오 선생, 쥐포 선생 모실 때에는 빳빳한 잡지 종이가 최고다.
그럼 오늘의 말씀을 전하겠다. 잡지서 다음장 구구절절. 그분은, 글과 사진으로 불쌍한 영혼을 깨우쳐주시었다. 그런 뒤에도 제 몸을 뜯고 절도 있게 접히사, 문어발과 번데기를 감싸며 환생하시었다. 심지어, 적당한 두께로 내용물의 온도를 유지하사 우리를 구원하시었다. 식지 않고 데지 않게. 뿐만 아니라 그분은, 늦은 밤 홀로 라면을 끓여먹는 불쌍한 중생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뻗치시니, 라면 냄비 받침으로는 무광지가 최고다. 자유자재로 접혀 냄비 크기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냄비 바닥에 눌러붙지도 않으시며 떨어진 면발 주워먹을 때면 한줄이라도 더 읽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읽어라. 네 영혼의 시작은 삐쩍 말랐으나 그 끝은 비대하리니. 읽다 지쳐 잠이 들면 축복을 주리니….

7. 김종철 /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그녀에게 내 마음을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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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정당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서 <한겨레21>을 읽는 게 좋았다. 요즘 들어 온 나라로 출장을 자주 다니는 나로서는 종이잡지가 여전히 고마울 따름이다. 종이잡지는 마음을 담은 선물로서의 구실도 한다. 실제 나는 아내와 연애할 때 <한겨레21> 1년 정기구독권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만약 종이매체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음, 내 마음의 선물이야. http://www.hani.co.kr을 봐. 아이디는 $$$, 비밀번호는 &&&야.” 이렇게 선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정말 좋은 내용이 있을 때 종이로 출력해 갖고 다니며 읽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종이로 된 <한겨레21>이 주는 ‘내 것’ 같은 느낌이 나는 정말 좋다.

8. 이병곤 / 성공회대 대우교수·광명시평생학습원 원장

불쌍한 ‘올드보이’ 생각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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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은 오래전에 이런 말을 던졌단다. “모든 종이는 가라. 화장지만 빼고.” 사실 창호지나 편지지는 이제 공중전화카드만큼이나 낯선 물건이다. A4 용지 정도가 우리 감각에 익숙한 유일한 종이류가 아닐까. 그런데 왜 종이잡지가 더 사랑스럽냐고? 간단하다. ‘손에 잡히는 맛’ 때문이다. 영화 <올드 보이>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라. 사설 감방에 갇힌 최민식이 열창하고 있는 민혜경의 얼굴을 만지려고 TV 브라운관을 안타깝게 쓰다듬는 모습이 나온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7년간 한국 땅을 떠나 산 적이 있다. 그땐 인터넷으로만 국내 시사주간지 기사를 살펴야 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시사주간지를 읽던 내 모습이 꿈에 나타날 정도로 손에 ‘착’ 감기는 종이매체의 감흥을 억제할 수 없었다.

9. 김성달 /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간사

출근길 손에 들고 우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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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빳빳하고 두꺼운 종이잡지는 무거워서 손목 아프고 갖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요즘 종이잡지들은 보는 것이 즐겁다. 종이가 일단 얇고 촉감도 좋다. 게다가 세련된 디자인까지 더한 요즘의 종이잡지는 굳이 가방에 구겨넣지 않고 손에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남의 시선을 받는 듯해 괜히 우쭐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즐거움은 현안 중계에 급급한 일간지와 달리 탄탄한 기획과 발로 뛰는 현장조사에 심층분석까지 얹은 세밀한 취재기사로 나에게 현안에 대한 정확한 문제 인식과 올바른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10. 김진호 / 삼성증권 대리

부팅없는 ‘원웨이 커뮤니케이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온라인 뉴스 검색을 해야 하는 직종(홍보)인지라 무언가 읽는다는 게 때로는 고통처럼 여겨질 만도 하건만, 가판대에서 받아보는 빳빳한 주간지나 종이신문은 여지없이 읽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킨다. 아직 아무도 못 가본 처녀지에 한발 담그는 느낌이랄까? 수만번 읽어도 닳아 없어질 일이 없는 디지털 정보의 ‘차가운 내구성’이 종이지면엔 없다. 종이지면의 ‘원웨이’ 커뮤니케이션이 지니는 느긋함도 좋다. 대개 5~6명만 넘어가면 성급한 싸움이 되어버리는 인터넷의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드는 종이지면의 느긋함이 그리워진다. 혹시라도 ‘느긋함’을 ‘느림’으로 착각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한 말씀. 종이지면은 부팅이 필요 없다!

11. 황평우 /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봄밤의 수상한 바람처럼

문화재 일을 해서 그렇다기보다는 틈만 나면 책을 보고 자료를 검토한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앉아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한장한장 책장을 넘길 때의 평안함이란 마치 봄날의 어느 밤 수상한 바람처럼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겨레21>을 창간 때부터 보면서 모두 모아두었다. 나의 쓸데없는(?) 욕심은 어떤 자료라도 버리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최근 서재가 너무 좁아 책 정리를 하며 그동안 모아둔 나머지 잡지와 함께 버리기로 했다가 결국에는 버리지 못하고 헌책방에 주고 말았다. 창간호와 몇권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우리가 최근 ‘정보기술(IT) 강국’이라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심한 강박관념일 수 있다. 빠른 것이 만능일 수는 없다. 지식의 축적이나 재생산은 여유와 깊은 생각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활자로 된 종이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2. 정유진 /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리

악성 리플 없지요, 누워서도 보지요

쓸데없는 악성 리플을 보지 않아 좋다. 무심코 본 악플은 ‘정말 못 볼 것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줄 리플로는 좋은 의견을 내기 어려운 것 같다. 종이잡지는 맨 뒷장부터 보면 훨씬 재밌다. 뒤에서 앞으로 왔다가 다시 앞에서 뒤로 가는 일종의 잡지 탐색 ‘리와인드’와 ‘패스트 포워드’. 주간지의 거의 맨 뒷부분에 나와 있는 만화를 먼저 보려고 뒤에서부터 보는 걸 시작했는데 이제 신문·잡지 할 것 없이 맨 뒤에서부터 보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누워서 보기도 좋다. 두꺼운 월간지를 누워서 보는 것은 가슴팍에 가해지는 압박이 장난 아니지만, 주간지는 척추쪽의 움직임 없이도 넘기면서 보기 좋다. 휴대성도 좋아서 도시락 가방보다도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성들도 A4 사이즈의 주간지 크기를 불평할 필요 없다 데굴데굴 말면 가방 한구석에 몰아넣을 수 있다. 펴면 바로 모양 원상복귀. 돌돌 말아서 맘에 안 드는 누군가를 살짝 때려줄 수도 있다.

13. 이정원 / (주)효성 부장

출퇴근할 때도 안 피곤하잖아

온라인 뉴스가 보기 좋은 것 같지만 사실 너무 장황하고 복잡하고 분량이 많다.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다. 복잡해 빨리 피곤해지는 측면도 있다. 이에 비해서 종이잡지는 친근하고 익숙하고 편하다. 정돈된 느낌이다. 제일 좋은 건 자신의 느낌을 갖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선 나는 출퇴근할 때 꼭 챙겨서 가지고 다닌다. 새로운 표지 사진들이 눈에 와 닿으면 나도 모르게 얼른 손이 간다. 양도 신문보다 많고 읽을거리도 많다. 지하철에 앉아서 차분하게 보다 보면 내려야 할 역을 놓치기 일쑤다. 특히 종이잡지는 기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다시 볼 수 있다. 주간지 나름의 차별화된 시장이 있다고 본다.

14. 박소현 /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4학년

소개팅 때 강력한 임펙트를 주다

남자를 소개받아 나갈 때 “나 이 정도다” 하는 임팩트를 주려고 종종 <한겨레21>을 소품으로 쓴다. “내 머릿속에 이 정도 들었는데 너 나 감당할 수 있어?” 하는 거다. 때때로 나는 내가 읽는 잡지가 나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애착에서 비롯된 달가운 착각. 종이에 적힌 글들은 읽는 이의 굳어 있는 뇌 근육을 사용하게 만든다. 잡지를 손에 쥐고 한줄한줄 읽다 보면 어느새 몰입하게 되고 행간 여백에 다다르면 금세 딴 생각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그 생각들은 빠른 스크롤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인터넷이 상호 소통의 장이긴 하지만, 너무 상대방만 쳐다보면 나 자신은 잊기 일쑤다. 멍하니 빠져드는 TV는 더 말해 무엇하랴. TV에게 눈물도 조종당하는 마당에. 하지만 종이잡지는, 평소에 접고 있던 ‘나’의 잡다한 상상력의 꼬리를 활짝 펼칠 수 있는 무한의 공간이다. 지금 공작새 꼬리를 상상해보시라. 머릿속에 형형색색의 깃털들이 나부끼지 않는가. 나는 그 깃털들의 휘황찬란함 때문에 ‘신속성’ 대신 ‘생각’을 선택한다. 참, 잡지는 화장실에서도 사랑스럽다.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맛깔 나는 입담 때문에 화장실에서 낄낄거릴 때, 그때의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안다.

15. 원희룡 / 한나라당 의원

심층성과 공신력은 대체할 수 없어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단발적이고 피상적인 보도가 인터넷과 일간지에 홍수를 이룬다. 시야를 넓히고 인식을 깊게 해주는 샘물 같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겨레21> 같은 주간지는 기획성과 시사성이 곁들어 있다. 거시적 안목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깊이 있는 심층성과 공신력은 다른 매체가 대체할 수 없다고 본다. <한겨레21>을 창간 때부터 봐왔다. 인상 깊은 특집기사가 나오면 항상 오려둔다. 여기에 다른 매체나 인터넷을 통한 검색은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주기도 한다. 한번 읽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의 흐름을 충실히 반영하는 샘플로 보고 있다.

16. 정재승 /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조교수

e-페이퍼를 겁내지 말지어다

나는 종이잡지를 사랑한다. 요즘도 주말마다 대전과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서 내 손엔 항상 종이잡지가 둘둘 말아져 있다.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곳도 <과학동아>라는 종이잡지였고, 독자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도 두해 동안 ‘정재승의 과학으로 세상읽기’를 연재했던 <한겨레21>에서였다. 글쓰기 초짜 시절, 잡지 나오는 날이면 제일 먼저 서점으로 달려가 몇주 동안 열심히 준비해 쓴 내 글이 어떻게 활자화되고 근사한 사진들과 어울려 있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확인하며 ‘글쓰기의 매력’에 빠졌다. 종이잡지에 실린 내 오랜 연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옛 친구들의 소식까지 전해주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잡지를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머지않아 종이잡지에 다가올 운명을 그리 낙관하진 않는다. 앞으로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종이 역할’은 점점 줄어들 것이며, 종이잡지의 위상도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아질 것이다. 종이잡지가 e-페이퍼의 위협에서 멀찌감치 벗어나기 위해서는 ‘읽고 삭제해버리는 기사’가 아니라 ‘모이면 역사가 되는 기사’들로 그 귀한 지면을 가득 메우는 일뿐이다. 종이잡지여, e-페이퍼가 무섭다고 피하지 말지어다. e-페이퍼는 종이잡지의 대체물이 아니라 머지않아 다가올 ‘종이잡지의 새로운 진화 형태’일 뿐이니.

17. 노부하라 미키에 / 일본인

일본인은 왜 잡지를 좋아하나

안녕하세요, 한국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1주일 동안 서울을 방문한 미키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인들은 잡지를 무척 좋아합니다. 한국인은 연령에 관계없이 인터넷을 많이 쓰지만 일본은 아직까진 이용자와 비이용자가 뚜렷하게 구분이 되요. 모바일 정보도 이용요금이 비싸서 거의 쓰지 않죠. 여전히 잡지를 많이 봅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는 자기가 찾는 정보만 보게 되잖아요. 하지만 잡지를 보면 ‘앗,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만한 새로운 발견들이 있죠.
저도 무료 잡지인 <프리페파>(free paper)를 꼭 챙겨 보는데, 영화·책·요리·피트니스·미용 등의 정보를 가볍게 얻으면서 할인쿠폰들도 받죠. 서점에선 ‘다이어트’ ‘한국’처럼 제가 관심 갖고 있는 주제들을 특집으로 다룬 잡지를 사서 즐겨 봅니다. 잡지를 통해 한국 배우들은 물론이고 요리·영화·명소 등을 많이 알게 됐죠. 홈쇼핑보다 통신판매 잡지를 보면서 쇼핑하는 게 더 일반적입니다. 후쿠오카에 돌아가서도 잡지로 한국 소식을 많이 접하고 싶습니다.

18. 안홍철 / CF감독

‘마티에르’를 아십니까

종이잡지에는 마티에르(matiere)가 있다. 미술용어인데 ‘재질감’을 뜻한다. 캔버스 종류나 붓터치에 따라 그림 느낌이 달라지듯이, 종이잡지도 어떤 종이에 사진들이 인쇄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 모니터로 사진을 볼 때도 LCD나 CRT, ATSC 등 화면의 종류에 따라 많이 다른데 종이의 경우엔 그것들과는 또 다르게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게다가 넘겨서 봐야 하니, 시각뿐만 아니라 촉감으로도 마티에르를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오래된 잡지엔 냄새가 있다. 콩기름 잉크를 쓴 특유의 냄새가 기억나지 않는가. 어떤 잉크를 썼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운반하고 어디에 보관하느냐에 따라 종이는 세월과 함께 특유의 냄새를 지니게 된다.

19. 인정옥 / 드라마 <아일랜드> <네 멋대로 해라> 작가

네멋대로 해라, 단 잘해라!

종이잡지…. 좋다. 종이잡지 말고 다른 잡지를 본 바가 없으므로…. 이른바 웹진을 본 바가 없는 듯하다, 난. 그러니까, 그냥…. 종이잡지라도 좋아하기로 한다. 그러나, 실은…. 종이잡지…. 싫다. 몇개 보던 잡지도 끊었다. 그나마 미용실에서 보는 패션잡지가 최고다. 활자 빼고 사진만 보여줘도 그 잡지의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맞다. 종이잡지로서의 임무가 문제였다. 그래서 싫었다. 내 맘대로 이유 만든다. 종이잡지 좋은 이유가 아니라, 종이잡지 좋을 이유를 만들어달라며 투덜대고 말겠다. 종이잡지로서의 임무. 무책임한 불편부당함 가고, 당당한 편파성 와라. 이 정도는 시사·문화 잡지들이 얼추 행한다. 바로 얼추…. 얼치기라는 게 문제다. 한번 같은 편 먹기로 한 사람, 무작정 밀어주는 편애가 바로 그 얼치기다. 편 먹기로 한 거 젖혀두고, 상황만을 따지고 바라보는 냉정한 균형감각 속에서만, 뒤 안 구린 화끈한 편파성이 깃든다.
종이잡지로서의 임무. 과거 회고하는 명사는 가고, 현재를 뛰고 있는 기자는 와라. 잡지 전체에 리듬이 있어야 하는 건 맞다. 숨 좀 돌리고, 다시 조이고…. 그렇지만 딱 숨 돌릴 정도만…. 딱 궁금할 정도만…. 그 정도의 명사 칼럼이면 된다. 장르가 확실하지 않은 잡지들이 명사 칼럼으로 내리 지면 때운다. 기자들 노는 꼴 못 보겠다, 난. 숨막히는 추적극을 만들 능력이 안 된다면, 차라리 만화가나 사진작가에게 지면을 주는 게, 두배는 낫다. 아니, 세배. 이렇게 해주면…. 종이잡지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집요하고 편파적인 연구자료. 돈 주고 사서 줄 긋고 봐야 할 연구자료로서의 가치전환. …나 혼자 구시렁댄다.

20. 심재옥 / 서울시 민주노동당 의원

만화 맛은 잡지 맛

일단 질감이 좋다. 침 묻혀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반쯤 접어서 들고 다니며 읽다가 방어용 무기도 될 수 있지 않나. 손이 심심하지 않다. 추억도 많다. <한겨레21> 같은 경우엔 집 책꽂이에 모아놨는데 이사하면서 몇번 고민했다.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다. 꽂아놓고 심심할 때 보면 뿌듯하다. 이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느낀다. 나는 만화로 한글을 깨우쳤을 만큼 만화를 매우 좋아하는데, 종이잡지에 나오는 만화의 마니아다. 조남준씨 연재가 끝났을 때 통곡했던 사람이다. 부활해달라. 만화야말로 인터넷으로 보면 맛이 안 난다. 종이잡지만의 강점이다.

21. 김경식 / 현대INI스틸 팀장

광고마저 전달력이 뛰어나도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종이잡지는 일체감을 느끼게 해준다. 온라인 매체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강점이다. 종이잡지를 읽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잡지와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종이잡지는 활자매체로서 영구적으로 보관된다는 점이 좋다. 모든 인쇄물은 보관할 필요가 있다. 종이잡지는 시대와 무관하게 보관성이 있는 반면 온라인으로 보는 글은 파일이 날아가버릴 수도 있고, 그래서 늘 불안하다. 종이잡지는 사진과 글의 배치, 편집 레이아웃 같은 디자인 안목을 높여준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사실 이런 디자인 측면은 종이잡지를 즐겨 찾게 하는 훌륭한 강점이다. 광고 측면에서도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의 것과 전혀 다르게 종이잡지에 실리는 광고는 전달력도 뛰어나고 금방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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