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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대평의 ‘대망’으로 헤쳐 모여!

등록 2005-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충청권 독자세력 정서를 기반으로 자민련 탈당…자민련에 실망한 지역 정치 세력들 모여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판결 이후 중앙정치 무대를 향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여온 심대평 충남지사가 3월8일 10년 이상 몸담았던 자민련을 탈당하면서 ‘중부권 보수신당’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신당의 실체는 아직 모호하다. 심 지사조차 “국민에게 편안함과 미래, 비전, 확신이 필요하다면 몸을 던져서라도 국가 경영에 동참할 생각”이라고 창당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추진 주체·성격·지향점 등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하고 있다.

충청권의 대권 열망 실현할 대표주자

충청권에서는 ‘심대평 대망론’과 자민련의 위상 추락에 따라 정치적 활로를 찾지 못하던 지역 정치세력들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물린 선택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먼저 ‘심대평 대망론’은 화려한 이력과 충청권의 신망, 간단찮은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그가 정치적 비약을 위한 결단의 시점에 이르렀다는 상황 논리에 주요 근거를 두고 있다. 심 지사는 1966년 제4회 행정고시 합격 이후 청와대 비서실(1974), 임명직 대전시장(1981)·충남도지사(1988)를 거친 이력을 바탕으로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민선 충남지사에 당선됐다. 이후 내리 3선의 관록을 쌓으며 무난하게 도정을 이끌었다는 평가 속에 ‘충청권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특히 김종필 전 총리의 추락 이후 중앙정치 무대에서 적절한 대변자를 찾지 못한 충청권의 소외감과 맞물리면서 ‘충청권의 대권 열망’을 실현해줄 대표주자로 은근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심 지사가 처한 현실 정치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역의 신망에도 불구하고 그가 몸담은 자민련은 끊임없이 영향력이 축소돼왔고, 지난해 4·15 총선에서는 4석의 ‘초미니 정당’으로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자민련 부총재라는 직함을 가졌지만 그나마 당 안에서 그는 비주류다. 김학원 대표 등 이른바 현역들의 위세에 눌려 지역적 기대에 걸맞은 정치적 지분과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더욱이 심 지사는 더 이상 충남 도지사로 정치적 생존을 이어갈 수도 없는 처지다. 민선 도지사를 3번 역임한 만큼 2006년 지방선거는 출전권 자체가 상실된다. 더 큰 정치적 변신을 통한 활로를 개척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정치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심 지사를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심 지사의 임기는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뭔가 큰 꿈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으로 탈당을 결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부권 신당론의 또 다른 축인 지역 정치세력들의 ‘신당’ 욕구는 상당한 현실적 근거와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4·15 총선 이전부터 자민련의 몰락을 예감한 몇몇 정치인들은 이른바 ‘심대평 중심의 헤쳐모이기’를 도모해왔다.

이번에 ‘탈당의 첫 물꼬’를 튼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과 정우택·정진석 전 의원, 이명수 전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등이 대표적 인물로 알려졌다.

조부영 전 부의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2003년 하반기부터 자민련의 한계를 인식한 몇몇 정치인들 사이에 충청권의 정서와 흐름을 좀더 잘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중심세력이 필요하다는 흐름이 형성됐다”면서 “나를 비롯한 몇몇 정치인들이 심 시자를 만나 여러 차례 4·15 총선 독자 출마를 통한 정면 승부를 하도록 설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 지사는 김종필 총재 중심의 자민련을 배신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부담감, 자민련 내부의 견제 등으로 최종 결심을 하지 못했고 ‘심대평 중심의 헤쳐모이기’ 시도는 무산됐다.

자민련 전면 개조 모색했으나…

그러나 4·15 총선에서 자민련의 몰락이 현실화되자 충청권의 신당 욕구는 더욱 거세졌다. 열린우리당이 새로운 충청권의 맹주로 떠오르자 낙선한 전직 자민련 의원들은 물론, 2006년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자민련 소속 도의회 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들까지 심 지사를 상대로 신당을 만들자며 전방위 압박전에 나선 것이다. 3월9일 8명의 충남도 의원이 심 지사를 지지하며 탈당했다. 이 대열에 동참한 한 도의원은 “자민련의 몰락에 충격받은 도의원들은 총선 직후부터 최근까지 여려 차례 심 지사를 만나 ‘자민련에서는 도민의 마음이 떠났으니 새 집을 짓자. 심 지사가 중심이 돼달라’는 요구를 계속해왔다”면서 “심 지사 탈당 하루 만에 동반 탈당한 것도 심 지사 중심의 신당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도모해온 정치적 욕구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총선 이전, 총선 이후 지속돼온 지역 정치 세력들의 신당 창당 요구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던 심 지사가 탈당을 최종 결심한 계기는 무엇일까.

충청지역에서는 신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 이후 지역 유지들까지 ‘독자세력 추진론’에 공감하는 등 저변이 확대됐고, 자민련 쇄신을 통한 정치적 비약 가능성이 원천봉쇄된 것을 핵심 근거로 지목하고 있다.

우희창 충남민언련 사무국장은 “행정수도 위헌 판결 직후 행정수도이전범국민연합에 참여한 상당수의 지역 명망가들은 충청의 정서를 대변해줄 정당이 없어 농락당하는 것이라며 ‘중부권 신당’에 대해 교감하고 호응했다”며 “이런 정서의 확산이 중부권 신당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도일보> 등 몇몇 지역언론은 위헌판결 직후 심 지사 중심의 신당 창당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본격적이 불지피기에 나섰다. 침묵하던 심 지사도 이때부터 “지역 주민의 뜻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 힘을 모으는 데 내가 나서겠다”며 ‘충청권의 맹주’로 변신 의지를 드러냈다.

물론 심 지사는 자민련의 전면 개조 가능성도 함께 모색했다. 그러나 김학원 자민련 대표를 상대로 한 당 쇄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말부터 탈당 수순을 밟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심 지사의 정치적 ‘복심’으로 알려진 이명수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심 지사가 지난해 말 김학원 자민련 대표를 만나 도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자민련을 분권형 정당으로 전면 혁신하자고 요구했지만 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면서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탈당을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심인 선 심 지사는 이후 조부영·정우택·정진석 등 자민련 소속 전직 국회의원, 충청권에서 ‘뉴라이트포럼’을 결성한 이명수 전 행정부지사와 장일 전 자민련 부대변인, 충남 도의회 일부 의원들과 탈당 및 신당 창당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결국 국회의 행정도시 특별법 통과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신당 창당의 지렛대로 악용한다는 우려가 최소화된 시점을 택일했다. 충남도청의 핵심 관계자는 “행정중심도시법 통과 뒤인 3월 초순부터 주변 인사들과 탈당을 구체적으로 상의했다”고 말했다.

심 지사는 자신의 행보가 이른바 ‘중부권 신당’으로 제한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는 8일 탈당 회견에서도 “(지역에)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 필요와 기대를 신당으로 표현한다면 공감한다”면서도 “중부권 신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중부권을 넘어선 더 큰 그릇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자민련 신장개업’ 우려 떨칠 수 있나

그러나 그의 꿈이 현실화되는 데는 적잖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특히 자민련의 한계를 지적하며 탈당했지만, 신당 참여 의사를 밝힌 인사 대부분이 자민련 소속이라는 모순은 신당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 지난 10일 신당 합류를 선언한 변웅전 전 의원은 “비록 탈당의 거리를 건너지만 앞으로 탄생할 신당과 자민련이 손잡을 수 있도록 전령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당창당론’의 주역인 조부영 의원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신당이 자민련을 배척할 수는 없다”며 “김학원 대표도 지금은 언짢겠지만 모두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가에서 신당 합류설이 나도는 현역 의원도 김낙성(충남 당진), 류근찬(충남 보령·서천) 등 모두 자민련 소속이다. 결국 ‘자민련 신장개업’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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