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시정 지시 무시한 비정규직 불법 파견행위 계속… “직접고용”주장하는 농성엔 강경대응만
▣ 울산=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매출액 27조원, 순이익 1조7천억원, 판매실적 세계 6위.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거둔 화려한 실적이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정몽구 회장은 <비즈니스위크>에 의해 2004 세계최고경영자로 선정됐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연말과 설 연휴 때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다. 하지만 현대차 울산 제5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 71명은 그 어느 때보다 서러운 설 명절을 보내야 했다. 노동부의 불법 파견 시정 지시를 무시하고 있는 회사를 상대로 무기한 밤샘농성을 벌였기 때문이다.
주야 교대 근무·재계약 여부도 직접 결정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거부한 채 오히려 이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노동계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지난해 12월 8천여명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를 불법 파견 형태로 운용해 노동부의 시정 지시를 받았다. 노동부의 조사 결과, 89개 하청업체는 형식상 현대차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나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작업 지시나 인사·노무 관리는 사실상 현대차에서 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차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노동자와 주야교대 작업을 시키는가 하면, 정규직 노동자가 산재 등으로 일을 하지 못할 경우 대체인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심지어 하청 노동자들의 재계약 여부도 직접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장에는 파견 노동자를 아예 둘 수 없도록 하고 있고, 도급을 위장한 불법 파견이 적발될 경우 사용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현대차가 사법 처리를 받지 않으려면 비정규직인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고용해야 하지만, 현대차는 “노동부의 판정이 부당하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고는 지난 1월18일부터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무기한 농성을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10일 집회금지가처분신청을 울산지방법원에 낸 데 이어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조합원 88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현대차는 또 안기호 비정규직노조위원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해 그를 구속시키는가 하면, 최근에는 제5공장의 하청 노동자용 탈의실을 농성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퇴거단행가처분신청을 냈다.
17일동안 농성장에 전기와 수도 끊어
현대차는 지난 2월7일 집회금지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를 물리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임선우 대의원은 “회사가 관리직 직원들과 경비대원들을 동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 참석을 힘으로 막고 있다”며 “경비대원들의 폭행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다쳤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월21일에는 회사쪽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단식농성을 막으려다 이를 저지하는 다른 남성 농성자들과 충돌을 빚어 노조원 1명이 머리에 상처를 입는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쪽은 “농성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권유하는 과정에서 양쪽이 가볍게 몸싸움을 벌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노동자들은 “관리직 직원들이 한 조합원을 끌고 가 머리를 시멘트벽 모서리에 짓이기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또 설연휴인 지난 2월8일부터 무려 17일 동안 농성장에 전기와 물을 공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쪽은 “연휴기간 동안에는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시설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연휴가 끝난 뒤에도 14일 동안이나 전기와 물을 공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조가영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위원장직무대행은 “회사쪽은 연휴가 끝난 뒤 다른 작업장에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별도의 배선공사까지 했다”며 “밤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추웠는데,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난방이 전혀 안 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회사쪽은 여성 노동자 4명이 이에 항의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지난 2월25일 전기와 물 공급을 재개했다.
현대차가 이처럼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현대차는 노동부의 불법 파견 판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울산공장의 김승룡 이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인사·노무 관리를 현대차가 직접 하고 있다는 노동부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며 “우리는 적법한 도급계약을 맺고 그에 맞게 하청 인력을 운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불법 파견 판정이 정확한 것임을 재차 확인했다. 울산지방노동사무소 관계자는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한 근거는 충분히 있다”며 “만약 판정이 부당하다면 이의를 제기하면 되는데, 현대차는 단 한번도 이의제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언도 현대차의 주장과 상반된다. 임선우 대의원은 “원청(현대차)의 관리직 직원이 직접 작업지시를 내릴 뿐 아니라, 특근·잔업과 휴가도 원청의 지시에 따라 집행됐다”고 밝혔다. 사실상 현대차가 하청 노동자들의 노무·인사 관리를 직접 했다는 설명이다.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의 강문대 보좌관은 “불법 파견에 매우 보수적 입장을 갖는 노동부의 판단이라는 점에서 현대차의 항변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지난해 불법 파견 의혹이 숱하게 제기됐던 조선업체들에 대한 실태 조사에서 단 한건도 불법 파견을 적발하지 못했다.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대해 “그들은 하청업체에서 해고됐기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남의 회사 시설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어서 퇴거단행가처분신청을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태를 왜곡한 측면이 있다. 비정규직들의 농성 원인은 불법 파견 시정 지시를 무시하고 있는 회사쪽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 균형감각 있나… 정규직도 무관심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버티기’ 전략에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고 분석한다. 먼저 현행 파견법에 불법 파견의 고용의제(파견 근로기간이 2년이 지난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규정) 조항이 없는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허점 때문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구제를 받으려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현대차로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은 “현대차는 불법 파견 판정 이후 완전도급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2년이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소송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는 현대차가 국회 통과를 앞둔 비정규직법 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분석이다. 새 법안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장에서도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이 통과되면 자연스럽게 불법 파견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노동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현대차의 이런 태도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애매한’ 불법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면서 재벌의 ‘명백한’ 불법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부는 현대차를 경찰에 고발한 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반면 지난 1월18일 현대차비정규직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울산지방노동사무소는 다음날 “불법 파업이니 당장 업무에 복귀하라”는 공문을 노조에 보내 노조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민주노동당 강문대 보좌관은 “지난해 금호타이어에서 불법 파견이 적발됐을 때 노동부는 회사쪽에 직접고용을 지시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있다”며 “행정기관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불법 파견 고용의제에 대한 법원의 판례가 확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고용 지시를 내리기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현대차는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은 정규직들도 반대하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 관계자도 “농성을 격려해주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많지만,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회사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정규직 노동자의 무관심 속에 71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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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이 맞고 있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단식하자고 했는데….” 현대차 울산 제5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김정희(49)씨. 현대차 하청업체인 ㅇ사 입사 9년차 ‘베테랑’인 그는 30대 미만의 젊은 노동자들을 ‘아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단식을 시작해보지도 못했다. 단식을 막는 회사쪽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실신하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갔다. 나머지 4명의 여성 노동자는 지난 2월2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으나 건강 악화로 15일째인 지난 3월8일 단식을 중단했다.
김씨의 남편도 현대차 하청 노동자 출신이다. 김씨의 남편은 강원도 탄광에서 일하다 15년 전 울산으로 왔다. 그는 현대차 하청업체에 입사한 지 한달 만에 작업 도중 허리를 다쳤다. 보상금으로 2천만원을 받았지만, 김씨의 남편은 다시는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졸지에 가장이 되는 바람에 건설 잡부와 청소부 등 안 해본 것이 없는데, 현대차에서 일하게 돼 매우 기뻤죠.”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김씨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야간 잔업은 물론 휴일에도 10시간씩 특근을 하는데, 한달에 특근을 다섯번씩 해도 월급은 고작 120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시급이 2년 전부터 오른 게 그 정도였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는 입사 3년차 비정규직이 180∼200만원을 받는다고 <한겨레21>에 주장했다.) 이 돈으로는 네 식구의 생계를 꾸릴 수 없어 일요일에도 공장 청소 등 일용직 잡부로 일해야 했다.
하지만 노동 강도는 지난 9년 동안 계속 세졌다. 김씨가 일하는 제5공장의 52라인은 지난해 하루 생산량을 270대에서 400대로 늘렸다. 그러나 30여명이 일하던 김씨의 조에는 고작 3명이 보강됐다. 다른 조도 사정은 비슷했다. “차가 빨리 나오니까 쉴 틈 없이 일해야 해요. 화장실 갔다오는 것도 반장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였으니까.”
추운 겨울을 차디찬 탈의실에서 지내야 했지만, 농성은 동료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회사쪽의 압박은 집요했다. 회사는 해고통지서를 농성 참가자들의 부모에게 직접 보내는가 하면, 부모들을 공장으로 불러 이들을 회유하도록 했다. 임선우 비정규직노조 대의원은 “젊은 동료들 중에는 아버지나 삼촌 등 친인척이 현대차 정규직인 경우가 많은데, 회사의 협박을 받은 이들이 농성장 앞에 와 울면서 회유하는 바람에 농성장을 이탈하는 동료가 많았다”며 “회유에도 불구하고 농성장에 남은 동료들이 ‘아버지와 인연 끊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때는 참 씁쓸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에는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 한명이 이들의 농성에 합류해 농성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울산공장 자동변속기2부에서 일하는 윤성근씨는 지난 2월23일부터 일과가 끝난 뒤 농성장을 찾아 함께 농성을 하고 있다. 윤씨가 맡은 임무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정규직들을 만나 비정규직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물론 동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나중에 우리 애들도 비정규직이 될지 모르는데, 이런 차별을 고스란히 물려줄 수는 없잖아요.” 비정규직 농성에 참가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윤씨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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