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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헌 기업엔 대출금리 우대?

등록 2005-03-02 00:00 수정 2020-05-02 04:24

[‘지속가능경영’의 현재와 미래(중)]

은행권에서도 공감대 모색… 삼성SDI·현대자동차·포스코는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중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14층 중회의실에서는 바깥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한 모임이 조촐하게 열렸다. 은행연합회와 시중은행 팀장급 25명으로 구성된 ‘지속가능경영(SM) 연구회’ 첫 회의였다.

은행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자극한다

이 연구회는 지난해 11월 발효된 ‘은행경영강령’에 바탕을 둔 것으로, 올 1월 구성됐다. 은행권의 자율규약인 은행경영강령 ‘고객과 사회에 대한 책임’ 부분에는 “은행은 ‘사회책임경영’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 창출과 미래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여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속가능경영이 삼성SDI,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앞서나가는 제조업체들뿐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관심사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예다.

은행권의 SM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는 조억연 은행연합회 종합기획팀장은 “앞으로 6개월 정도 전문가 강의와 상호 토론을 거쳐 은행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공감대를 모색할 것”이라며 “은행 자체의 지속가능한 경영보다는 자원 배분 기능을 활용해 지속가능경영을 촉진하는 방안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환경 경영, 사회공헌 활동에서 앞선 기업들에는 대출 금리를 우대해주고, 그렇지 않은 데는 페널티(불이익)를 주는 방안을 도입할 수 있다고 조 팀장은 설명했다. 금리 차등화의 잣대로 매출, 당기순이익 같은 재무지표뿐 아니라 지속가능경영의 성과가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속가능경영 수준에 따른 금융 서비스의 차등화가 당장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은행권의 이런 움직임은 구체적인 재무지표 외에 비재무적인 환경 경영 및 사회적 책임의 성과가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싹’이다. 스위스의 자산관리회사인 샘(SAM), 미국의 이노베스트 등이 세계 각국 기업들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평가기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해당 기업의 가치(구체적으로는 주식이나 채권의 값)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업들에 지속가능경영을 압박하는 게 높아지는 환경 가이드라인이나 사회적 요구만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 같은 활동을 구체적으로 계량화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지속가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그에 걸맞은 활동 실적을 쌓아야 함은 물론이되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속가능경영 평가에서 이 보고서는 평가 작업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삼성SDI가 지난해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SAM의 지속가능성 평가지표인 ‘DJSI지수’에 편입된 것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SAM 방문 당시 지속가능성 애널리스트인 칼 요한 프랑케는 삼성SDI를 DJSI지수에 편입한 계기에 대해 “인터넷 검색 엔진으로 여러 기업들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삼성SDI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접하고 평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SDI가 무료 개안 수술을 해주는 이유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국내에서도 앞선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난 2003년부터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잇따라 발간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자문기구인 GRI의 기준에 따라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삼성SDI,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포스코, BAT코리아, 디아지오코리아 등 6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삼성SDI다. 이 회사는 지난해 DJSI지수에 편입되면서 지속가능경영 부문에서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올해는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사업보고서와 통합해 발간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두 보고서의 통합 발간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합친다는 뜻을 넘어선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작성하는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법정보고서인 사업보고서와 합침에 따라 지속가능경영의 실적과 약속(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담긴)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거꾸로 지속가능경영의 실적과 약속의 신뢰성을 담보해야 하는 짐은 더 무거워진다. 삼성SDI의 지속가능성 경영을 총괄하는 SM 추진사무국의 김정근 박사는 “두 보고서의 통합 발간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좀더 충실한 기업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미래 성장 잠재력이 높음을 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사회공헌 활동에서 기업의 본질적인 업무와 맥락을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도 시선을 끈다. 1995년부터 무료 개안 수술을 지원하고 있는 게 한 예다. 이는 회사의 주요 생산품이 브라운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등 사람의 눈에 관련된 디스플레이 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삼성SDI의 무료 개안 수술 지원 사업은 약 3천명이 시력을 되찾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대자동차는 업종 특성에 맞춰 친환경적인 모델 개발에 힘쓰는 한편, 환경경영전략팀을 두어 삼성SDI와 마찬가지로 2003년부터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대해선 제3자(회계법인 딜로이트) 검증을 받아 신뢰성을 높였다고 강조한다.

지속가능경영 부문에서는 포스코도 비교적 앞선 예로 꼽힌다. 포스코는 올 초 경영전략 업무를 이어받고, 각종 혁신활동을 총괄하는 혁신기획실을 새로 두고 여기에 5명 규모의 ‘지속가능경영팀’을 별도로 둠으로써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조청명 포스코 혁신기획실장은 “2003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대해 회계법인인 ‘어니스트 영’의 검증을 받아 신뢰성을 높였다”며 “앞으로 지속가능성 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통합 발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국내 기업으로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이미 발간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데가 여럿 있다. 이미 발간돼 있는 지속가능성 보고서 등을 통해 볼 때 국내 기업들이 환경적, 사회적 측면의 지속가능경영에서 이룬 실질적인 성과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수준에 이른 업체가 6개뿐이라는 점을 제쳐두고라도 앞선 기업들에서 자랑스레 내놓는 지속가능경영의 사례 중에는 기업의 본질적 업무와 연관성을 띠지 못하는 수가 많다. 이는 특히 사회적 측면의 지속가능경영에서 두드러진다. 예컨대 업종 불문하고 임직원들이 빗자루를 들고 나가 길거리 청소 이벤트를 벌이는 식의 활동을 들 수 있다. 그 밖의 사회공헌 활동에서도 비슷비슷한 일을 경쟁적으로 벌여 중구난방이란 느낌을 주고 있다. 각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한 기초 조사를 벌여 사회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지속가능경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다.

압박하기보다는 지원하는 자세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안병훈 교수는 “앞서가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속가능경영은 앞으로 더 많이 확산되고 붐을 이룰 것”이라며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거품이 끼지 않도록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그러면서도 “기업의 자발적 노력임을 감안해 정부나 비정부기구(NGO)가 기업을 압박하기보다는 지원한다는 자세를 지킴으로써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의 흐름을) 새로운 규제로 여기지 않게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금융감독원에서 비재무적 사항까지 공시하게 하기보다는 지수를 개발해 자본시장에서 활용하게 하는 방식의 간접적인 가이드가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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