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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태풍’ 예고 방송, 큐!

등록 2005-03-02 00:00 수정 2020-05-02 04:24

최문순 사장 체제의 문화방송은 어떻게 변화하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스템·내용 개혁의 전망

▣ 손원제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wonje@hani.co.kr

‘전환의 계곡에 서서’. 지난 2월25일 공식 취임한 최문순(49) 문화방송 사장의 취임사 제목이다. 그의 첫 일성대로 문화방송이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미답의 영역이다.

“철저하게 비주류로 살아온 분”

최문순 체제의 등장은 그 자체로 문화방송의 기존 관성에 엄청난 충격과 균열을 야기하고 있다. 그의 최고경영자 입성은 사상 유례없는 ‘임원을 거치지 않은 노조위원장 출신 40대’ 사장의 출현을 의미한다. 1984년 입사한 그의 선배그룹만 전체 임직원 1450여명 가운데 200여명에 이른다. 그는 기자로 현장을 뛸 때도 정치부와 경제부 등 이른바 ‘핵심 부서’는 한번도 거쳐보지 못했다. 노조위원장과 전국언론노조 초대 위원장 등을 지낸 노동운동 경력을 빼면, 사장 공모를 위해 사표를 낼 때까지 <시사매거진 2580>을 담당하는 보도제작국 부장으로 일한 게 그의 회사 안 최종 경력이다.

한 기자는 “최 사장이야말로 철저하게 비주류로 살아온 분”이라고 말했다. 한 PD는 “그의 등장 자체가 문화방송 안에서 개혁이 당위가 되는 상황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문화방송 안팎에선 이런 그가 몰고 올 변화의 파고를 가늠하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최 사장은 일단 ‘원(One) MBC, 월드와이드 MBC’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단결된 MBC, 강한 MBC로 탈바꿈해 지역과 이념, 계급 대결의 상처를 치유하고 세계로 나아가자”고 했다. 급격한 방송환경 변화 속에서 문화방송 또한 “특권의 자리로부터 약탈적 경쟁의 세계로 내던져진” 이상,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것 외에 살아남을 길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세계로 뻗어가는 방송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며 강력한 개혁을 강조했다. 현재의 인력 구조와 조직으로는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며 회사와 구성원의 고통 분담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사장직에 응모하며 10가지 개혁 과제를 내걸었다”며 “여러분, 특히 선배님들의 마음을 무겁게 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임직원 전원에게 수시로 회사를 위해 뭘 내놓으실 것인지 묻겠다”고도 했다. 그가 이끌고 갈 문화방송의 진로가 결코 만만하지 않은 험로가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취임사에 구체적으로 담아내지 않았지만, 그는 2월22일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사장 내정 직후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개혁 구상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은 바 있다. 그가 특히 강조한 부분은 문화방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스템 개편이다. 그는 “간부 1천명에 평사원 500명인 기형적 구조를 일 중심 구조로 바꾸겠다”며 △단일호봉제 폐지 △대국 소팀제 △지방사 광역화 △비정규직의 일부 정규직화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10% 임금 삭감을 노조와 협의해 추진하겠다”며 “이를 위해 사장 임금부터 먼저 20% 깎겠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의 해외 마케팅 강화를 위한 조직 재편 또한 해법의 하나로 제기했다.

시사 프로그램, 진보적 의제 설정 강화

시스템 개혁의 강조는 그가 최고경영자로서 현 시기 문화방송 위기의 본질을 경영적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찾고 있음을 말해준다. 문화방송은 지난해 이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뉴스를 망라한 전 분야에서 시청률 저하와 광고판매 축소 같은 경쟁력 약화에 시달리고 있다. 취임사에서 “독과점 시대의 특권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며 방송 환경의 변화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또한 효율성과 경쟁력 저하에 대한 대안 제시가 경영자로서 화급한 과제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이런 시스템 개혁은 프로그램의 경쟁력 강화와 그에 따른 수익 증대를 위한 토대 닦기에 해당한다. 당연히 프로그램의 내용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에선 경쟁력 강화를,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선 심층 보도 및 진보적 의제 설정 강화를 각각 해법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최 사장의 한 측근은 “광고와 프로그램 판매 수익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문화방송의 재원 구조에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MBC적 경쟁력’을 강조해온 최 사장의 평소 지론에 비춰볼 때 경쟁력 강화가 곧바로 상업적 요소의 강조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는 지난해 11월 문화방송 뉴스의 보수화를 비판하는 11인 성명에 참여하며 “MBC 뉴스의 시청률 저하는 MBC 특유의 진보성과 공적 관심이 축소되면서 빚어진 일”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드라마 또한 MBC의 정체성을 벗어나는 내용을 무리하게 전개하는 바람에 시청자의 채널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한 간부급 PD는 “MBC는 원래 아래 부문의 민도가 높기 때문에, 이긍희 사장 때와 같은 간섭만 사라져도 다시 진보적 활력이 살아날 것”이라며 “현장 출신으로 이를 잘 아는 최 사장으로선 굳이 내용 측면에서 자신의 견해를 강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스템과 내용 개혁 모두 첫 시작은 인적 쇄신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문화방송 안에선 콘텐츠 약화의 책임 규명과 시스템 개편에 따른 대규모 인사 태풍이 불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 때문에 2월28일 임시주총에서 이뤄지는 본부장(이사급) 인선과 일주일 간격으로 이어질 지방 문화방송 사장 및 본사 국장 인사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본부장급에선 안정 위주로, 국장급에선 쇄신형 발탁 위주로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최 사장 체제의 한 핵심 인사는 “적어도 본부장급에선 최 사장보다 낮은 기수로 대거 물갈이되는 세대파괴형 인사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 개혁에도 영향 줄 듯

실제로 25일 주총에선 부사장에 1976년 입사해 제작본부장을 지낸 신종임 울산 문화방송 사장이 임명됐다. 한 PD는 “프로그램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인선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최 사장과 함께 사장 공모에 응했다 떨어진 고석만 전 교육방송 사장도 제작본부장 또는 이사급 PD 형식으로 영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영 실패의 책임 규명 차원에서라도 이긍희 사장 체제에 참여했던 임원들의 경우 용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노사 관계 또한 최 사장 체제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최 사장과 문화방송 노조의 ‘개혁 친화성’을 거론하며 협력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25일 문화방송 새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상훈 전국언론노조 사무처장은 최 사장의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재임 때 정책실장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러나 임금 삭감과 조직 개편 등에선 노조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현 노조 관계자는 “최 사장이 개혁 명분을 선점해버려 새 노조 집행부로선 매우 난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사장의 개혁 행보는 한국방송을 비롯한 방송·언론계 전반의 구도와 관행에도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최 사장의 개혁 구상에 큰 영향을 끼친 한국방송은 노조의 ‘반정연주’ 공세 속에 개혁 피로 증세를 드러내고 있지만, 문화방송의 개혁이 가속화할 경우 오히려 개혁 지속의 외부 압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최 사장이 내정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방송과 신문의 겸영 금지가 낡은 처방이라고 지적한 것을 두곤 반응이 엇갈린다. 그러나 방송정책의 전환을 겨냥한 목적의식적 발언이라기보다는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때부터 급변하는 언론 환경을 지켜보며 가져온 고민의 원론적 토로일 것이라는 평가가 좀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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