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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최저선은 어디인가

등록 2005-03-02 00:00 수정 2020-05-02 04:24

소득분배 개선 역할 전혀 못하는 현행 최저임금제…개선안에 사회적 기준선 둬야 할지 논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적용되는 법정 최저임금은 월 59만3560원(주 40시간 기준·시급 2840원)이다. 이 금액은 2004년 전체 노동자 정액급여(162만원·상여금 제외)의 36.6%, 임금총액(218만원)의 27.1%에 불과하다. 법정 최저임금 수준이 형편없이 낮아서 노동자 생계보장이라는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진 지는 이미 오래다. 통계청 도시근로자 실태생계비를 보면 현행 최저임금 수준은 2004년 3인 가구 월평균 가계지출(211만원)의 26.8%에 그치고 있다. 1990∼2003년까지 전체 노동자의 시간당 정액급여 평균인상률은 11.1%인데, 시간당 최저임금 평균인상률은 10.3%로 더 낮았다. 특히 한달에 60만원 받는 노동자는 임금이 10% 올라도 6만원 오르지만, 한달 200만원 받는 노동자는 10% 오르면 20만원이 오르게 돼 소득격차는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금액 너무 낮고 적용 제외범위 넓어

이처럼 현행 최저임금 수준이 소득분배 개선을 꾀하는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음에도 사회경제적으로 최저임금의 의미는 더 커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임금소득 불평등이 급속히 확대되고 저임금 계층이 확산되면서 저임금 노동자 보호 수단으로서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11%에 불과한 낮은 노조조직률, 기업별 교섭체계 등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을 빼고는 저임금을 해소할 다른 현실적 방안이 마땅히 없기도 하다.

최저임금위원회(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가 결정하는 최저임금의 수준도 턱없이 낮지만, 최저임금 적용에서조차 제외되는 노동자의 범위가 너무 넓고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에 따르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4년 8월)에서 시간당 임금이 2840원 미만인 노동자는 125만명(8.8%)에 이른다. 그러나 현행 법정 최저임금의 영향률(전체 노동자 대비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은 3.2%(45만명)다. 나머지 80만명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자이거나 최저임금법 위반업체에서 일하는 최저임금 미달자로 추정된다. 법정 최저임금 미만인 125만명을 보면 기혼자가 90만명이고, 나이별로는 55살 이상 37만명, 25살 미만 26만명, 25∼55살 계층이 62만명에 이른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미혼·미성년자·고령자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혼자와 노동력이 왕성한 층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도 많지만, ‘제도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층도 상당수에 이른다. 현행법상 가내 노동자(가정부·운전기사·일감을 받아와 자기 집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와 감시·단속적 노동자(아파트 경비원 등)·장애 노동자·훈련생·실습생은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취업기간 6개월이 경과하지 않은 18살 미만 노동자는 최저임금의 90%만 적용받고 있다. 김 소장은 “이런 적용 제외자들을 감안해도 최저임금조차 탈법적으로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가 매년 53만∼80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지만, 최저임금법 개정도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조정식 의원이 대표발의(이목희 등 열린우리당 의원 10명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이 법안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제출된 것이므로 사실상 정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양대노총 등 23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을 통해 또 다른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법안 개정을 둘러싼 팽팽한 대립 속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도 비정규직 법안처럼 4월 임시국회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충돌

열린우리당쪽 개정안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종전의 생계비·유사근로자 임금·노동생산성에다가 소득분배율을 새로 추가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최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임금보전을 명시하고 △원·하청 관계의 경우 하도급 계약에서 윗단계 도급 사용자의 귀책 사유로 최저임금에 도달하지 못한 때에는 바로 윗단계 도급 사용자가 연대 책임을 지도록 명시하도록 했다. 또 △취업기간이 6월을 경과하지 않은 18살 미만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 적용을 전액 적용으로 바꾸고 △최저임금 적용에서 배제돼온 직업양성훈련생·수습근로자, 감시·단속적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감액해 적용하도록 바꾸는 한편, △최저임금 적용 시기를 1∼12월까지로 변경(현재는 9월∼다음해 8월까지)했다. 감액 적용은 시간급의 10∼30%을 빼고 적용하게 된다. 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단속적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시간급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임금이 대폭 오르게 된다는 이유로 그동안 적용에서 배제돼왔다.

반면에 단병호 의원 안은 열린우리당 안과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임금평균의 50% 이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법제화하고 △노동부가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임명되는 공익위원을 ‘노동부 장관·노사 단체가 각각 추천한 후보 중에서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투표를 통해 선출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등 최저임금위원 선출 방식을 개편하고 △사업주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회피하려고 최저임금액에 포함되지 않는 상여금 등을 정액급여에 포함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던 임금을 그 명칭 및 지급 방식을 변경해 최저임금에 산입한 경우 종전 임금 수준을 저하시킨 것으로 보고 처벌한다’는 규정을 넣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대비된다. 또 가내 노동자, 정신·신체장애 노동자, 수습 노동자, 직업양성훈련 노동자, 감시·단속적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감액이 아닌) 전액 적용하도록 했다. 양대 노총은 “장애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오히려 사업주들이 장애인 고용을 기피해 장애 노동자 취업을 줄일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채용 기업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으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법 개정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최저임금의 ‘사회적 기준선’을 명시할 것인지 여부다. 민주노총 주진우 실장은 “최저임금이 노사 요구안에 대한 절충과, 공익위원들이 노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결정돼왔다”며 “저임금 및 임금격차 해소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최저임금의 사회적 적정수준에 대한 정책목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을 최저임금연대가 요구하는 수준, 즉 전산업 정액급여의 50%로 올린다면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월 81만1640원(시급 3940원)이 된다.

법 개정을 통해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고 최저임금 위반업체도 없어질 경우,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40%선(시급 3120원)에서 결정된다면 수혜자는 182만명이 되고 기업이 부담할 직접적 임금비용(현행 법정 최저임금 수준에서는 전체 노동자 임금총액의 0.76% 증가)은 1.16%가 늘어난다. 또 평균임금의 50%선에서 결정된다면 수혜자는 353만명이 되고 기업체의 직접적 임금비용은 2.95%가 증가하게 된다(표 참조). 김유선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제는 저임금 계층을 일소하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되고 있다”며 “기업체 부담을 고려한다면 올해는 평균임금의 40%, 2006년에 45%, 2007년에 50%를 확보하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선 단계적 상승” Vs “고용 떨어진다”

그러나 노동부 박형정 임금정책과장은 “최저임금 지대에 있는 사업장은 대부분 지불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수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도입할 경우 의도하지 않게 오히려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며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공익위원이 사회경제적 요소를 고려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있는데, 법에 하한선을 규정해 두게 되면 최저임금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형해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쪽도 “최저임금의 사회적 기준선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며 “사회적 기준선을 정하자는 단병호 의원 안과 절충할 여지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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