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은행 ‘억지 합병’에 뒷말 무성… 시너지 효과 없고 일방적 추진에 불만만 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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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택은행 합병에 반대하는 국민은행 노조원들이 은행장을 감금하고 한창 농성을 벌이던 지난 12월13일. 은행장실 앞 복도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마주앉은 국민은행의 한 노조원은 침을 튀겨가며 목청을 돋웠다. 한참 동안 핏대를 세우던 이 노조원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이건 (기사로) 쓰지는 말라”면서 “심지어 은행장이 비리에 연루돼 정부로부터 (봐주는 대가로) 합병 압박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위험 수위 넘어선 금융구조조정 갈등
국민-주택은행 합병추진을 둘러싼 소동은 금융구조조정과 관련해 노·사·정간에 가로놓인 두터운 불신의 벽을 새삼 확인시켜주었으며 이번 일을 기화로 벽은 더욱 견고해졌다.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정간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은행장이 비리에 엮였는데 이를 눈감아주는 대신 합병할 것을 종용받고 있다’, ‘ㅇㅇㅇ 행장이 정부로부터 차기 합병은행장 언질을 받고 총대를 메고 나섰다’는 등 마치 협잡과 술수에 따라 합병이 진행되는 듯한 소문만 무성하다.
사실 국민-주택은행간 합병은 금융구조조정의 핵심 화두가 아니었다. 금융구조조정이 부실청소와 이를 통한 금융기관의 기능정상화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두 우량은행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소매(가계)금융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두 은행의 유사성으로 보아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게 그동안 정설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와 금융노조 모두 두 우량은행의 행보에 촉각을 곧두세우며 ‘합병 굳히기’(정부)와 ‘합병저지’(금융노조)에 총력을 쏟고 있다.
정부로서는 두 우량은행만 합쳐놓으면 나머지 은행들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게 기본 시각이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연말까지 금융구조조정 마무리’라는 목표의 실현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고위관계자는 “두 은행이 합병되면 나머지 은행들은 스스로 합병대상을 찾거나 확실한 틈새시장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다른 은행 움직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의도는 금융노조에 우량, 비우량은행 할 것없이 강하게 뭉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국민, 주택 두 은행의 합병 추진 과정에서 노조쪽이 주장하듯 정부 압력이 가해졌는지 명백한 물증은 없다. 하지만 ‘일정한 수준의’ 구실을 한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에 대한 금융감독원 한 임원의 답변은 이렇다. “정부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과장된 주장이고 ‘권장’은 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은행장이 노조원들에 의해 갇히고 이틀 뒤 풀려나는 와중에서 나타난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에서도 ‘정부 역할론’은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 금융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데다 두 은행의 대주주의 하나이기도 한 정부로선 일정한 구실을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주택은행과의 합병을 거부한 다른 은행들

문제는 왜 하필 성격이 유사한 국민과 주택은행이 합병의 쌍으로 선택됐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두 은행간 합병추진 사실이 알려진 초기부터 제기된 의문이었다. 또 애초 “시너지 효과가 없는 합병을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는 양쪽 은행장의 태도가 돌변한 대목도 석연치 않은 구석으로 남아 있다.
노조쪽의 주장대로라면 정부가 국민, 주택은행간 합병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시너지 효과는 안중에도 없이 가시적인 구조조정 실적을 올리기 위한 ‘한건주의’ 행태라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그럴까. 물론 이 대목에서도 분명한 물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부 정책이 그 정도로 단순하게 결정된다고는 믿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금감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은행은 모두 고만고만하다. 어떤 은행끼리 합병한다고 하더라도 시너지 효과에서 커다란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국민과 주택은행이 맞지 않는 합병 쌍이라고?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맞는 합병 쌍이 어디 있느냐? 있으면 대보라”고 반문했다. 또다른 금감위 관계자는 “국민+주택은행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주장은 두 은행 모두 소매금융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건 단견일 뿐”이라며 “국민은행의 대기업대출 규모는 한빛은행에 이어 국내에서 2위 수준이라는 사실이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원·조직 감축뿐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낼 부분이 없지 않다는 설명인 것이다.
물론 금융당국 역시 주택은행의 짝으로는 국민은행보다 신한, 한미, 하나은행 등이 더 어울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주택은행 김정태 행장이 이들 은행에 모두 ‘오퍼’(합병 제의)를 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로 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모두 하나같이 주택은행과 합치는 데 난색을 표시했다. 한미, 하나은행은 주택은행과 합치는 걸 거부한 뒤 상호합병을 추진하고 있으며 신한은행은 제주은행과 위탁경영 계약을 맺어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밖에도 은행들은 많지만 대부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른바 ‘부실은행’들로, 주택은행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마당이어서 정부로서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민-주택은행간 합병과 달리 적지 않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시나리오라는 점도 정부로선 부담요인이다.
국민+주택은행처럼 공적자금 투입없이도 별 어려움 없이 성사시킬 수 있는 합병을 통해 ‘불을 질러놓으면 위기감을 느낀 다른 은행들이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독자생존을 선언한 아무개 시중은행장이 요즘 들어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은행장 태도 돌변, 정부의 입김 있었나

국민, 주택 두 은행장의 태도가 돌변한 데서도 ‘정부의 입김’이 여러 곳에서 엿보인다. 노조쪽에선 두 김 행장이 정부의 압력에 따라 마지못해 합병에 나섰다고 단언했다. 우선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국내 최대, 최고 우량은행 탄생의 주역’임을 근거로 통합은행의 행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게 주택은행 노조의 해석이다. 합병논의가 가시화한 뒤 김 행장이 전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호소문의 끝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합병 확정시에도 직원 여러분과 함께하는 은행장이 될 것임을 밝힙니다.”
김 행장의 경우 호남권 금융인맥의 핵심이라는 점을 빼놓고라도 행장 취임 이후 이룬 실적에 힘입어 현재 입지는 확고해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대우사태 와중에서 대우계열사의 여신을 1조원 이상이나 회수하고, 현대건설 유동성위기 진행중에도 시중은행 가운데 두드러지게 ‘발빼기 전략’을 펴와 정부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터였다. 이번에 ‘정부가 바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면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동시에, 합병은행장 자리를 확보하는 데도 유리해질 수 있다. 금융산업노조 관계자도 “이른바 우량은행이라고 하는 곳치고 지난 10월께부터 김정태 주택행장으로부터 합병 제의를 받지 않은 데가 한 군데도 없다”며 “김 행장의 태도가 돌변한 게 아니라 평소 소신이 물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상훈 국민은행장은 올해 초 주총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행장으로 선임될 때부터 은행경영보다는 ‘금융구조조정의 정부 대리인 구실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그는 국민은행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금융감독원에서 구조조정 전담 부원장으로 일해왔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지난 7월께부터 한미, 하나, 신한 등 흡수대상이 될 수 있는 우량은행들 대상으로 여러 차례 합병제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함께 두 은행 대주주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ING생명(주택), 골드만삭스(국민) 등 외국계 대주주도 합병에 비교적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합병추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이 많은(11월 말 현재 주택 64.66%, 국민 56.22%) 두 은행의 주가가 합병추진에 따라 오름세를 보인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주택은행 합병이 결국은 성사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노조쪽 반발에 부딪혀 잠시 중단상태에 빠져 있긴 하나 정부가 밀고, 외국인 주주가 지지하는 데 도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실적인 힘의 논리가 곧 정당성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국민+주택은행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한데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합병을 통한 ‘사람 자르기’와 ‘덩치 키우기’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쪽에선 국민, 주택은행이 합치면 자산규모로 따져 세계 50위권이며 국내 전체 은행을 모두 합쳐도 이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대형화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덩치를 키워 지금과 같은 취약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합쳐봐야 50위권이라면 결국 덩치로는 승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는 합병 추진은 결국 인원·조직을 큰폭으로 줄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비판이 덧붙는다.
정부의 처리 방식이 불신 키운다는 지적

이런 근본적인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정부의 일 처리 방식이 불신을 키운다는 비판도 많다. 합병추진 사실이 금융당국자의 입을 통해 미리 새나오고 금융시장이 발칵 뒤집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금융특위(위원장 김황조·연세대 교수)라는 협의기구가 있음에도 정부쪽 위원들의 무성의한 태도로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노조쪽으로선 커다란 불만사항이다. 구조조정 대세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인원·조직 감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금융산업노조 하익준 정책부장은 “금융특위가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지만 열려도 재경부 담당 국장은 거의 나오지 않고 사무관이 대신 참석해 자리만 지키는 수가 많은 등 정부쪽의 태도가 무성의하다”고 비난했다. 금융특위는 금융구조조정의 원칙을 노·사·정이 모여 협의하고 방향을 정하자고 만든 곳인데 지금 같은 상태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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