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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향군인회는 어디로…

등록 2004-10-15 00:00 수정 2020-05-03 04:23

최근 국보법 사수 집회 등 정치활동 참여 논란…정치활동의 자유 허용하되 특혜 없애는 해법 제기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정부·여당과 재향군인회 사이에 ‘기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종교·보수단체의 국가보안법 사수 집회에 재향군인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정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감독기관인 국가보훈처가 “제재 검토”를 언급하고 나선 탓이다.

기업체 보훈성금과 국고지원금으로 예산 충당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은 10월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학진 의원(열린우리당)한테서 “재향군인회가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질의를 받고 이런 뜻을 밝혔다.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10월4일 국가보안법 사수 집회에 공동 주최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시청앞 광장은 인공기로 뒤덮이고 친북·좌경 세력에게 이 나라를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연설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감 뒤 의 물음에 “변호사의 자문을 거쳐 가능한 제재 방안들을 검토 중”이라며 “그러나 재향군인회가 ‘정치활동 혐의’를 부인하는데다 구체적인 제재 수단도 마땅치 않아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실제로 “안보단체로서 안보 수호 활동을 한 것뿐인데 무슨 제재냐”며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오히려 기세를 올렸다.

이런 모양이 빚어진 것은, 논란의 초점이 ‘정치활동 여부’로 빗나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향군회법은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3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순수 민간단체이든 관변 성격이 있는 단체이든 정치적 의사표시의 자유를 정부가 제재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할 것 같다.

이에 따라 여권 일각에선 재향군인회 같은 단체에 정치활동의 자유를 허용하되, 운영 기반이 되어온 각종 사업의 특혜성을 제거하는 해법이 제기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재향군인회가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순수 예비역 민간단체로 전환된다면 안보활동이 아니라 그 이상의 정치활동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향군인회(본부)는 2003년에 244억1200여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 가운데 189억원을 산하 기업체가 낸 ‘보훈 성금’으로 충당했다. 그 밖의 나머지는 대부분 국고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실제 회비 수입은 거의 미미한 상태라고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밝혔다. 재향군인회가 ‘550만 예비역 회원의 대변자’를 평소 자임해왔으나 실제 운영내역을 보면 ‘550만명의 뜻’을 제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적은 것이다.

수의계약 등의 특혜 시비 많아

게다가 재향군인회 산하 기업체들은 정부기관으로부터 수의계약을 통해 납품권 따위를 유지함으로써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켜왔다. 김홍일 의원(민주)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방부 조달본부는 특별법으로 설립된 군인공제회, 재향군인회, 농협중앙회,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과 2002년 879억원, 지난해 994억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고 공개하면서 시정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최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수도권에 공급한 택지의 61%인 100만평 이상이 수의계약으로 우선 공급됐으며, 군인공제회와 재향군인회 등의 아파트 분양사업이 수익사업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재향군인회는 현재 중앙고속, 향우산업, 향우실업, 제조사업본부, 충주호 관광선, 호남규석광업, 사업개발본부, (주)통일전망대 등 모두 12개 산하 기업체를 두고 있다. 이들 기업체는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 설립되어 독점적 사업권 등을 딴 경우가 대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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