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 수출 넘어 현지인 키우는 작업까지…“댄스 일색”으로 한국 시장 황폐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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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지난 10월4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SM엔터테인먼트 건물 3층 연습실에서는 중국 소년소녀들이 노래와 춤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경(21), 송병양(15), 장리인(15·여), 류조(16). SM이 중국을 겨냥해 트레이닝시키고 있는 중국인들이다. 이들은 하루에 노래 2~3시간, 춤 2~3시간의 연습을 한다. 하루 2시간씩 한국어 수업도 받는다. 숙소는 SM 부근의 빌라. 한경은 한국에 온 지 1년6개월이 넘었고, 장리인과 송병양은 7개월, 류조는 3개월이 됐다. 이들은 SM의 중국법인 ‘SM 차이나’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중국 소년소녀들은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SM은 이들을 앞으로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데뷔시킬 예정이다.
이들은 SM의 현지화 전략의 새로운 단계를 상징한다. SM은 단순히 한국인 스타를 중국과 일본 등에 진출시키는 단계를 넘어서 현지인을 스타로 키우는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다. SM은 1990년대 후반 H.O.T를 통해 한류를 주도했다. 국내에서도 H.O.T를 시작으로 S.E.S, 신화, 보아, 동방신기로 이어지는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왔다. 성공가도를 발판으로 SM은 2000년 4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는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등록했다.

중국을 겨냥한 그룹, 동방신기
하지만 SM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류의 첨병 역할을 했다는 옹호론과 10대 위주의 댄스음악으로 한국 음반시장을 황폐화했다는 비판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SM은 한류 스타를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시켜왔다.
이날 SM엔터테인먼트의 2층 연습실에서는 더 트랙스(The TRAX) 멤버들이 악기를 흔들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더 트랙스는 지난 7월 한국에서 데뷔 음반을 냈고, 올해 안으로 일본에서도 데뷔할 계획이다. 일본 음반은 일본의 전설적인 록그룹인 엑스재팬(X-Japan)의 리더 요시키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한국 음반은 SM의 이수만씨가 프로듀싱했다. SM이 4년 전부터 준비해온 더 트랙스는 SM의 한·일 동시공략 작전을 상징한다. 더 넓게는 아시아의 록시장을 겨냥한 SM의 기획 상품이다. 앞서 올 초 데뷔한 동방신기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그룹이다. ‘동방의 신이 일어나다’라는 뜻을 지닌 이름부터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멤버들의 이름도 영웅재중, 최강창민, 시아준수, 유노윤호, 믹키유천 등 중국풍으로 지었다. 동방신기는 이미 한국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
SM은 일본 시장에서 ‘보아’라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다. 보아의 일본 마케팅 전략은 이전의 한국 가수들과 달랐다. 일단 한국에서 유명해진 다음 일본에 진출하는 공식을 깼다. 한국에서 신인가수의 티를 채 벗기 전에 일본에 진출한 것이다. 물론 수년에 걸쳐 일본어를 배우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데뷔 이후에도 한국 가수라는 사실을 굳이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일본에서 보기 드문 ‘힙합 소녀’로 포장했다. 이 모든 과정이 SM에 의해 철저히 준비됐다. SM은 일본 유수의 연예기획사인 에이벡스(AVEX)를 파트너로 삼아 보아의 일본 진출을 성공시켰다. SM이 가수를 발굴하고 트레이닝시켜서 보내면 AVEX는 일본에 통할 수 있는 음악으로 음반을 제작하고 홍보 마케팅까지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었다.
이처럼 SM은 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스타를 발굴해왔다. H.O.T는 98년 중국에서 첫 정식음반을 낸 것을 시작으로 3장의 음반과 1장의 비디오 CD를 꾸준히 발매했다. 2000년 H.O.T의 베이징 공연은 한류 열풍을 뜨겁게 달군 계기로 평가받는다. H.O.T에 이은 S.E.S의 멤버도 해외시장을 고려해 한국 토박이인 바다, 재일동포인 슈, 재미동포인 유진으로 구성했다. 비록 H.O.T의 해체로 중국의 한류 열풍이 잦아들고, S.E.S의 일본 진출이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SM은 아시아 시장 진출을 멈추지 않았다. SM의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시장 진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SM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캐스팅(발굴), 트레이닝, A&R, MPR로 구성된다. SM은 10여명의 캐스팅 전문 매니저를 두고 있다. 이들이 요즘도 전국의 학교 주변 등을 돌아다니면서 스타가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원석’을 발굴한다. 일단 캐스팅된 사람은 철저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동방신기의 멤버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 트레이닝을 마치면 가수의 콘셉트를 정하고 음악을 만든다. 그 과정이 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의 약자인 ‘A&R’이다. 음반이 만들어지면 홍보에 들어간다. SM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마케팅을 포함한다는 뜻에서 MPR로 부른다. SM은 주먹구구식이었던 한국의 가요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체계화한 첫 번째 매니지먼트사로 평가받는다. SM이 현재 계약을 맺고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는 사람만 40여명에 이른다. 김경욱 S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스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타를 찾아나서는 캐스팅 시스템은 중국은 물론 일본에도 없는 시스템”이라고 자랑했다. SM은 연예전문 교육기관인 스타라이트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일본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거세다.
김경욱 대표는 대주주인 이수만 이사와 분업 시스템으로 SM을 이끌고 있다. 김 대표가 기획, 마케팅, 홍보를 담당하고, 음반 프로듀싱은 이수만씨가 책임진다. 이씨는 SM의 고유한 음악 색깔이 성공의 한 비결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힙합음악을 가장 잘 소화하는 나라”라며 “서양 리듬에 동양적 멜로디를 가미한 한국 음악의 경쟁력은 높다”고 말했다. 경쟁력 있는 음악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댄스실력까지 더해져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춤꾼들의 실력은 다른 나라 춤꾼들의 교본이 될 만큼 높다. 특히 한국 춤의 역동성은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한류로 실제로 돈 번 가수가 없다
SM의 음악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중음악 평론가 박준흠씨는 “한국의 댄스음악은 콘텐츠의 고유성이 부족하다”며 “설사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경쟁력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음악을 카피한 ‘짜깁기의 비교우위’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수준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중문화 평론가 신현준씨도 “모든 대중음악의 자원이 댄스에 집중된 상황에서 그 장르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10대 아이돌 스타의 댄스음악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대중음악 시장의 기형적 구조에서 나온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한류의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대중음악 분야에서 보아를 제외하고는 한류로 실제 ‘돈’을 번 가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중국에서는 불법복제 음반 때문에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SM쪽도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수긍한다. 이수만씨는 “98년 중국 진출을 할 때부터 향후 10년 동안 수익을 올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며 “장기적인 시장 가능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한국 음악이 인기를 얻은 이유가 일본이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준흠씨는 “일본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중국에 진출하지 않는다. 일본의 모사품인 한국 음악이 비어 있는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일본이라는 경쟁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인 일부의 취향을 과대 포장해서는 곤란하다”고 진단했다.
한국 음반시장의 불황도 해외 진출을 재촉하고 있다.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국내 시장에서 실패해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90년대 후반부터 SM 등이 주도해 국내 음반시장이 10대 위주의 댄스음악 위주로 재편됐지만, 2000년대 들어 10대들이 음반시장에서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음반시장 전체가 황폐화됐다는 것이다. 2000년 매출액 4100여억원에 달했던 국내 음반시장은 2002년 2861억원, 2003년 1833억원으로 급락하고 있다. 이런 국내외적인 조건하에서 SM은 아시아 네트워킹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M은 2001년 일본 유수의 연예기획사와 합작으로 ‘SM 재팬’을 만든 데 이어 ‘SM 차이나’도 설립했다. 한·중·일만 합해도 15억원이 넘는 시장을 SM이 주도하는 합작 연예기획사로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콘텐츠, 일본의 자본, 중국의 시장을 결합하는 구상이다. 이수만씨는 “한국이 음악을 담당하고, 일본의 축적된 마케팅 경험과 자본을 활용하고, 스타는 중국인을 내세우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털 미디어그룹 지향
SM의 최종적인 목표는 할리우드에 아시아 에이전시를 세우는 것이다. 전초 작업으로 SM은 2002년 5월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 회사들과 함께 SMAA(SM Asia Agency)를 설립했다. SM이 궁극적으로 토털 미디어그룹을 지향하고 있다. 가수, 배우의 매니지먼트뿐 아니라 음반회사,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사까지 아우르는 회사로 커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수만씨는 “아시아 각국의 대표적인 연예 기획사가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2년 안에 할리우드에 아시아 에이전시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SM 야심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도 많다. 하지만 SM의 앞날이 한류의 미래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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