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테러 경고에 긴장하는 아르빌… 자이툰 부대는 현지 민심잡기에 분주
▣ 아르빌= 글 · 사진 김영미/ 분쟁전문 프리랜서 PD
아르빌 주둔 한국군, 자이툰 부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근 아르빌 주변에 들려오는 갖가지 뉴스들은 우울한 것들뿐이다.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주둔 미군으로부터 군사작전 지휘권을 건네받고 서로 축하인사를 주고받던 날인 10월1일 방송에서는 저항단체 ‘알카에다’의 파병국가 8개국에 대한 테러 경고 메시지가 전세계로 타전됐다. 대상 국가들 가운데는 한국도 포함돼 있어 국내뿐 아니라 이제 막 이라크에 도착한 한국군에게도 적잖은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10월1일 군사작전 지휘권 발동
이날은 ‘국군의 날’이면서 자이툰 부대는 군사작전 지휘권이 최초로 이라크에서 발동한 날이다. 이날 동맹국 사령부(MNC-I) 사령관 토머스 메츠 중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도 성대하게 열렸다. 지금까지 이곳 아르빌의 군사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던 ‘TF 올림피아’ 부대가 공식적으로 ‘아르빌과 니나와주 일부 지역’의 작전권을 한국군 자이툰 부대로 넘긴 것이다. 식후에 갖은 다과회에서 메츠 장군은 “본격적인 지휘권이 이양되면서 이제 한국도 파병국가라는 이유로 적들의 테러 대상 국가가 되었다”면서 앞으로 한국군이 위험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9월에는 한국군 주둔지와 모술 사이에 있는 니나와주의 ‘칼랍’이라는 마을 주변에서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아르빌 주재 의 카메라맨과 기자가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터키로 후송됐지만, 이제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기자들을 향해서도 서슴없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터에 나온 알카에다의 경고 메시지 방송을 들은 아르빌 주민들은 “한국군이 들어와서 (아르빌이) 더욱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냐”며 서로 걱정하는 얼굴빛이 역력했다. 아르빌 시내 앙카와라는 지역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살란(45)씨는 “악화된 치안 상황 때문에 이라크에서는 이제 더는 외국인들을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이제 이라크 전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곳은 아르빌뿐이다. 아르빌주에서도 수가 가장 많은 외국인은 한국인들이다”고 한국인들에 대한 테러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이제 알카에다가 공개적으로 한국에 대한 테러를 경고했으니 일이 아르빌에서 벌어질 것 아니냐. 알카에다는 한다면 하는 사람들인데…”라며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아르빌에서의 사업을 모색하기 위해 두달 전에 이곳에 온 한국 교민 김아무개씨도 한숨을 내쉬며 불안감을 토로한다. “두달 전 아르빌에 왔을 때와 지금이 너무 다르다. 치안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다. 알카에다 저항조직의 경고 때문에 한국도 난리인데, 이라크는 더 무방비 상태가 아니냐. 더군다나 라마단(금식월)이 다가오면서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아르빌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으니 라마단이 오기 전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수천명의 한국군이 주둔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아르빌에는 나날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그러나 전쟁터나 다름없는 이곳의 치안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국군은 이제 파병을 완료했고, 군사작전 지휘권도 물려받았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이 악화되고 있는 아르빌의 치안 상황도 떠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다수가 비전투병들로 구성된 자이툰 부대의 안전이 더 아슬아슬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안전 문제를 빼면 그나마 한국군은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며 나름대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고 있는 듯하다. 아르빌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조립식 컨테이너 숙소뿐 아니라 단 며칠 만에 지은 대형 돔형 막구조 건물은 아르빌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주둔지 건설에 투입됐던 현지인들의 입에서 흘러나가는 자이툰 부대의 동정은 한국보다 이곳 아르빌 주민들 사이에서 더 빨리 퍼져나간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짧은 공사 기간이다. 불과 두달 반 전만 해도 주둔지 자리는 황폐한 언덕이었다. 이전에 한국군 주둔 예정지는 사담 후세인 군대의 포 기지 자리였다. 따라서 탱크도 즐비하게 서 있는 등 아르빌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곳이다. 주둔지 건설 공사 과정에서도 불발탄이나 탄피가 튀어나와 긴장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런 곳이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현대식 컨테이너가 500동 넘게 들어서고 대형 막구조가 들어섰다. 길도 시원하게 뚫리고, 여기저기에 입구도 생겼다. 그것도 그 짧은 시간에 말이다.
라슈킨 마을, 추석떡 반갑지 않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쿠르드 정부 관료들까지 큰 관심을 보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건물들을 짓는 것인지 궁금해 질문 공세를 한다. 그럴만도 하다. 아르빌에서 한국군 주둔지에 올라가고 있는 번듯한 건물들은 이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지금 이 컨테이너 자재가 터키에서도 동이 났다. 아르빌 한국군 주둔지 건설로 한국 업자들이 터키 시장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형 돔은 쿠르드 정부든, 쿠르드 개인이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폭탄 사고가 난다고 해서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는 쓸모가 없다.


주둔지를 나서서 오른쪽 길로 바로 3분 거리에 28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라슈킨’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주변에 한국군 주둔지가 생기기 전부터 아르빌 공항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공항을 쿠르드 자치 정부가 확장시키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이 마을을 철거하려고 했다. 혹시 테러 세력이 이 마을로 잠입해 비행기에 박격포 공격 등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은 토착민들로 조상 대대로 이 마을에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집과 땅을 버리고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보상 문제 등이 걸린 터라 쿠르드 정부도 골치를 앓고 있어서 지지부진하는 와중에 한국군 파병지가 아르빌의 이 마을 옆으로 결정됐다. 그러자 그동안 옥신각신했던 라슈킨 마을 문제가 한국군에게 떠맡겨졌다. 쿠르드 자치 정부쪽이 이번에는 아르빌 공항의 안전상 문제가 아닌 한국군 주둔지에 안전상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다시 철거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또 보상 문제도 한국군이 떠맡으라는 식으로 모는 눈치다.

그래서 지금 한창 라슈킨 마을 철거 문제로 쿠르드 정부와 한국군 사이에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다. 이 틈에 정작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라슈킨 마을 주민들이다. 28가구이긴 하지만 이 지방의 특색대로 모두 친척 관계인 마을 사람들은 언제 이 정든 고향 땅을 쫓겨날지 모른다. 작은 마을이지만 학교도 있다. 50여명의 초등학생이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학교까지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다. 마을 입구에는 오랜 세월에 거쳐 만들어진 무덤이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마을에서 고령자로 통하는 한 주민은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철거 문제로 걱정이 많다. 집만 옮긴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재산인 양들까지 끌고 시내로 들어갈 수 없다. 땅도 없으니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정부쪽에서 집을 다른 곳에 지어준다고 했지만, 우리 집안이 그곳에 가서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힘들다. 그런데 정부도 한국군도 아직 분명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아 답답하다.”
마을 사람들이 초조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던 차에 자이툰 부대원들이 이 마을을 방문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철거 문제로 ‘한국군이 무언가 말하려 왔나 보다’라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동네 이장 격인 현지인의 집 마당에는 순식간에 70여명의 주민과 아이들이 모여들어 한국군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았다. 그런데 정작 한국군들은 “오늘은 한국의 큰 명절이라 함께 축하하기 위해 떡을 나눠먹으러 왔다”며 현지인들의 기대에 호응해주지 못했다. 1시간 가까이 한국군이 머무는 동안 철거와 보상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고 아이들에게 떡과 과자, 축구공만 나눠주고 떠났다. 한국군이 돌아간 뒤 움 라짐(34)씨는 “맛있는 과자와 축구공은 고맙지만 왜 철거 문제는 전혀 이야기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했다. 한국군의 현지 마을 방문 장면은 추석날 한국에도 방송이 되었다. 이라크에서도 자이툰 부대 장병들이 추석을 즐겁게 보내며 이라크 현지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는 내용이다. 한국식으로 떡도 돌리고 마을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건데 정작 이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즐겁지 않은 추석이었던 셈이다.
한국군 대상 신종사업 생겨
한국군이 들어와서 요즘 뜨는 신종 업종이 있다.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야채 농사다. 쿠르드 지역은 옛날부터 농업지대이다. 이라크에서 생산되는 밀의 70%가 이곳에서 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답게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농사가 잘된다. 쿠르드인들이 주로 먹는 토마토나 향채를 비롯해 오이, 호박, 고추, 열무와 비슷한 ‘파질’이라는 야채를 한국인들이 많이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모두들 이 야채들을 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야채 열풍이다. 아르빌에 주둔해 있는 한국군을 포함해 교민 등 3천여명의 한국인들이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탓에 어떤 이는 밭을 뙈기로 사서 야채를 심어야 한다. 특히 파질은 한국군 식당에서 열무김치처럼 김치를 담가먹는 통에 가격이 엄청 올랐다. 그동안 한국에서 김치를 보급하기가 어려워 임시방편으로 만든 김치인데, 한국군들도 잘 먹고 가끔 들르는 미군들까지 군침을 삼킬 정도다. 따라서 주둔지 근처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 파질과 오이, 호박을 공급하는 잘란(50)씨는 요즘 신이 났다. “한번에 2300달러 정도의 야채를 매일 한국군 관련 업자에게 판다. 그래서 지금 우리 마을에는 이 야채의 씨를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모두들 난리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집도 사고 차도 샀다. 우리 가족들 모두가 붙어서 농사를 짓는데 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일생 동안 만져보지 못한 큰돈을 벌게 해준 한국군에게 감사를 보낸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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