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 쥐 · 고양이를 보내고 결국 인간과의 결투까지… GOD 주식회사에서 자신감을 찾다
▣ 정지아/ 소설가
그날, 술집 한 귀퉁이에 붙여진 광고를 발견했던 것은 인생의 축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평소에 자주 들리던 술집이었지만 그 광고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감을 되찾아 드립니다. 성공은 자신감에서 비롯됩니다. -주식회사 GOD”
맨 아랫줄에 작은 글씨로 그렇게 씌어 있을 뿐 광고지는 온통 새까만 공백이었다. 박 차장이 자신의 기획안을 가로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지 못한 것은 그래봤자 넉살 좋은 박 차장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결국 자신만 한심한 놈으로 낙인찍히고 말리라는, 해묵은 패배감 탓이었다. 술을 마시다 말고 그는 광고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는 지금 당장 방문해달라고 했다.
바퀴벌레가 준 알 수 없는 쾌감
고만고만한 기획사려니 생각했으나 고층 빌딩의 스카이층에 위치한 기획 사무실은 생각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고글 선글라스를 쓴 담당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일단 오늘 기본 코스를 경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후에 결정하십시오.”
담당자는 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소파 곁의 문을 가리켰다. 엉겁결에 그는 그 문을 들어섰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공포가 온몸에 전달되어 세포 하나하나가 잔뜩 긴장했을 때, 갑자기 희미한 조명이 밝혀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바닥과 벽 사이로부터 무언가 시커먼 것이 몰려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지은 지 20년 가까운 아파트라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바퀴벌레와 몇년을 동거동락해온 그로서도 본 적이 없는, 어른 주먹만 한 바퀴벌레였다.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것들은 사방 벽으로부터 그를 향해 돌진해왔다. 별수 없이 그는 돌아서서, 똑같은 검정색이라 벽인지 문인지도 알 수 없는, 방금 통과해온 문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마구 두드렸다. 그러나 푹신한 방음장치가 그의 주먹을 포근하게 감싸안을 뿐이었다. 그가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는 사이 바퀴떼는 순식간에 그의 다리를 타고 기어올랐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는 이리저리 날뛰었다. 갑자기 발밑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벌레가 터지는 듯한, 기분 나쁜 감촉이 전해졌다. 잠시 흠칫했으나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은 알 수 없는 쾌감이었다. 바퀴벌레를 밟아죽이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그는 다시 날뛰었다. 그는 손 안으로 기어든 바퀴벌레를 털어내려다 그냥 주먹을 꾹 쥐었다. 기묘한 소리와 함께 바퀴벌레가 터지면서 끈적끈적한 분비물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한 가닥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천장에서 내리쏟는 물줄기 때문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어찌된 일인지 그는 샤워 부스 안에 서 있었고, 바닥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옷과 몸 전체에 남아 있는 바퀴벌레의 기분 나쁜 분비물이 아니었다면 꿈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샤워 부스 옆에 놓여 있던 새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었을 때, 비로소 문이 열렸다.
“계약하시겠습니까? 한달에 한번, 전 과정을 거치는 데 1년이 소요됩니다. 비용은 1200만원, 선불은 받지 않고, 한달에 한번 과정을 마치고 결제하시면 됩니다. 단, 시작한 이상 도중에 그만둘 수 없습니다. 자체 조사 결과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그만둘 수 있고 그럴 경우 전액 환불해드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10년째 계약을 연장하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해부대 위에 묶인 고양이의 눈빛
고민의 여지없이 그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으나 그의 몸은 십대의 어느 날로 돌아간 듯 상쾌했고, 이상한 충만감으로 심장이 터져나갈 듯했던 것이다.
두 번째 코스는 살아 있는 쥐를 욕조에 익사시키는 것이었다. 새하얀 모르모트여서 징그럽지는 않았다. 그가 물에 담갔을 때 모르모트는 믿을 수 없는 힘으로 꼬리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몸이 거의 반원형으로 구부러질 지경이었다. 그는 더 깊이 담갔다. 꼬리로 빳빳한 힘이 전해졌다. 꼬리에 녀석의 전 생명이 담긴 듯했다. 그 뒤로 한동안 그는 손끝에 전해지던 녀석의 팽팽한 힘을, 서서히 빠져나가던 생명의 힘을 잊지 못했다. 어쩌면 그날 이후 그는 그 게임에 중독된 것인지도 몰랐다.
세 번째로 그를 기다린 것은 해부대 위에 묶인 고양이였다. 사지가 묶여 있긴 했으나 고양이는 살아 있었다. 녀석은 제법 으스스한 이빨을 드러내고 사지를 뒤틀며 발악했다. 미래를 예감하는 듯 녀석은 필사적이었다. 그런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푸른빛을 반사하는 메스를 잡아든 것은 꼭 30분 만이었다. 해부에 대한 상식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는 절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목 아래서부터 일자로 내려 그었다. 살 속으로 메스가 파고드는 느낌과 함께 그의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홍해가 갈라지듯 살이 쩍 벌리고,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처음으로 대기 중에 드러난 내장의 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둣빛과 핑크가 뒤섞인 그 생명의 빛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어떤 꽃도 비할 수 없이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몇초쯤이었을까? 찬란한 생명의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녀석은 여전히 살아서 그르렁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녀석의 눈에서 분노가 사라짐과 동시에 내장은 역겨운 회색빛으로 변했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으로 사람의 심장을 손에 쥐었던 여섯 번째 과정이었다. 임종을 앞둔 의식불명의 행려병자이긴 했으나 그는 어느 때보다 오래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칼을 잡고 말았다. 그날 밤 그는 악몽을 꾸었다. 악몽은 오래 지속되었고, 한달 내내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자신의 손 안에서 팔딱이던 심장의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무엇보다 그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반년 동안 그는 큰 거래를 다섯건이나 성공시켰고, 엄청난 성과급을 받았으며, 다음달에는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온몸의 에너지가 분출구를 찾아 자신의 몸을 치받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심장을 손에 쥔 생사여탈의 주관자, 이 세상의 지배자라도 된 듯했다.
상급 코스에서 칼을 뽑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GOD 주식회사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절대 안 된다는 양심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벌써 상급 코스군요. 믿을 만한 고객이시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국내 유명 CEO 중의 상당수가 우리 고객이랍니다.”
선글라스의 사나이에게 등 떠밀려 그는 낯선 방으로 들어섰다. 반대편 문이 열리고 양복 차림의 한 사내가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두 사람은 영문을 모른 채 방을 둘러보았다. 방의 양쪽에는 진열대가 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칼이며 도끼며 무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각종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둘 다 상황을 파악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먼저 칼을 잡은 것은 상대편이었다. 그 남자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자 그도 정신없이 칼을 뽑아들었다. 먼저 칼을 뽑은 건 당신이야. 내가 아니라구. 자신의 마음 어딘가에서 미약한 변명이 들려왔으나 그의 몸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생생한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속보] 한덕수 탄핵안 국회 본회의 보고…내일 표결
[속보] 국회, 헌법재판관 마은혁·정계선·조한창 선출안 가결
[영상] 탄핵열차 막아선 한덕수…여야 합의 내세워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탄핵 찬성’ 국힘 김상욱·조경태 “헌법재판관 표결 참여할 것”
궁색한 김용현…한덕수에 계엄 사전보고 했다더니 “국무회의 직전 보고”
육사 등 없애고 국방부 산하 사관학교로 단일화해야 [왜냐면]
우리가 모르는 한덕수 [12월26일 뉴스뷰리핑]
여고생 성탄절 밤 흉기에 찔려 숨져…일면식 없는 10대가 범행
받는 사람 : 대통령님♥…성탄카드 500장의 대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