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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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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공포콩트페스티벌] 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

등록 2004-08-20 00:00 수정 2020-05-03 04:23

처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저수지의 괴물을 향해 다이너마이트 불을 붙이자 엄청난 폭음이…

▣ 성석제/ 소설가

“내가 한 5년 전부터 낚시에 미쳐서 돌아다녔던 건 알고 있을 거야. 그때는 친구고 식구고 없고 그냥 낚시만 하고 싶더라고. 마흔 넘게 낚시터 근처에도 안 가본 내가 왜 갑자기 그렇게 낚시에 미쳐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어. 이런 이야기는 잘 안 하는데 오늘은 친구들하고 달빛이 교교한 저수지 앞에 있으니까 생각이 나는구만.”

잠시 말을 중단한 정대는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삼재가 그의 잔을 채웠다.

“낚시도 진짜 도를 닦듯이 열심히 하다 보면 유명한 낚시터나 큰 데보다는 후미지고 작은 데를 찾게 돼. 산중 계곡을 막아서 만든 조그만 저수지 같은 데 말이지. 사실 계곡형 저수지는 물이 차서 고기가 별로 없어.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 손을 잘 안 타고 그래서 가끔 대물 손맛을 볼 수도 있는 거지.”

흐느끼며 신발을 벗던 미모의 처녀

정대가 다시 막걸리를 마셨다. 삼재는 진지한 표정으로 잔을 마주 들어올렸고 그 옆에 있던 문호는 이미 들어본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들 일행이 앉아 있는 저수지가 식당 안팎을 살피는 데 더 열심이었다.

“이년 전쯤에 오늘하고 비슷하게 더운 날이었어. 평일 오후에 세 시간을 운전해서 난생처음 가는 깊은 산골 마을까지 들어갔지. 동네 뒷산 바로 밑에 만들어지고 나서 한번도 낚시꾼이 온 적이 없다는 저수지가 있는 거야. 가보니까 라면 봉지 하나 없는 게 이건 완전히 처녀 같은 데더라구. 자리 펴고 자세를 잡았지. 일급수인 계곡지에는 중태미라고 부르는 버들치가 많은데 이놈들이 달려들기 시작하면 정말 귀찮거든. 그런데 이상해. 그 저수지는 물이 맑아서 중태미 떼가 다니는 게 보일 정돈데 전혀 미끼를 물지를 않아. 뭔가 아주 큰 놈한테 쫓기고 있어서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하여간 저녁이 돼서 날이 어둑어둑해졌지.”

문득 정대는 맞은편 둑에 웬 처녀가 서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런데 처녀는 흐느끼며 막 신발을 벗고 있는 중이었고 곧 물에 뛰어들 작정인 것 같았다. 정대는 얼떨결에 손나팔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거 봐요. 잠깐만.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좀 기다려. 아, 기다리라니까.”

처녀는 생각지도 못한 낚시꾼의 외침에 놀랐는지 신발을 도로 꿰어신기 시작했다. 정대는 내친 김에 무넘기와 버드나무 숲을 지나 맞은편 둑까지 쫓아갔다. 처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둑을 따라가고 있었다. 정대는 처녀의 팔을 붙들었다. 그러자 처녀는 그 자리에서 푹 주저앉고 마는 것이었다. 정대는 얼른 그 팔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야, 정말 무지하게 예쁜 아가씨더구만. 거기다 화장 하나 안 한 천연 그대로의 얼굴이야. 내가 무슨 흑심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냐. 나중에 또 남 낚시하는 데 와서 아까같이 신발을 벗어제낄까 싶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지. 대답을 안 하더라고. 계속 앉아서 흐느껴 우는데 사람 미치겠더군. 남이 보면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한 놈으로 알 거 아냐. 마을에서 저수지까지는 아무리 크게 울어도 소리가 안 들리기는 해도. 그렇게 한 이십분 있었나.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더니 달이 막 떠오는 거야. 그것도 커다란 보름달이. 나참, 이게 뭐냐, 싶더라고. 내가 정말 못 참고 가려고 하는데 그 아가씨가 울음을 그치고는 나한테 쪼끄만 소리로 고맙다고 그러더구만. 그래서 내가 말했지. 뭐가 고마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나한테 고마우면, 뭐 때문에 그런 짓을 하려고 했는지 이야기나 해보라고.”

처녀는 긴 한숨과 함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처녀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네에서 자랐고 나이가 들면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한동네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을 꺼리는 습속 때문에 드러내놓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그들은 인적이 드문 저수지에 와서 사랑을 나누곤 했다. 왜 그 저수지에 인적이 드물었던가. 무엇인가 저수지에 살고 있는데 그게 사람보다 더 큰 괴물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노인이 소를 끌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그 존재를 목격하고 놀라 무넘기 아래로 굴러떨어진 뒤 죽음으로써 소문은 한층 구체성을 띠었다. 젊은 연인들은 그런 소문 따위에 구애받지 않았고 이틀이 멀다하고 저수지로 올라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가 아기를 가진 것을 알게 됐다. 청년은 기뻐하면서 그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고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했다. 그 전에 자신이 당당한 남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저수지에 살고 있는 괴물을 잡아내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괴물의 등을 가프로 내리찍었으나…

“잉어나 가물치가 크다고 하지만 정말 큰 거는 초어라는 거야. 70년대에 외국에서 수입한 종인데 최대어 기록이 150cm든가, 뭐 그래. 스킨스쿠버 하는 사람들 말로는 물속에서 그런 괴물을 만나면 가슴이 콱 막힌다고 하더구만.”

그러나 초어가 살기에는 그 저수지는 지나치게 외지고 작았다. 그는 그 괴물이 기껏해야 묵은 잉어일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처녀의 말은 달랐다. 청년이 잉어 잡는 그물을 쳤는데 두번이나 그물이 찢겨져 나갔다는 것이었다. 잉어보다 큰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청년은 대물 낚시를 위한 채비를 하고 가프라는, 대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작살까지 준비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청년이 잡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녀는 거의 매일 저수지로 올라가 청년을 설득했다. 그런 건 잡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내버려두라. 이만한 정성이면 부모도 허락할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하여 보름달이 싯누렇게 떠오르던 어느 저녁, 마침내 청년의 낚싯대 줄이 피아노줄처럼 핑핑 울리기 시작했다. 처녀는 내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청년을 돌아보았다. 청년 역시 처녀에게 웃음을 보내며 낚싯줄을 감기 시작했다. 10초도 되지 않아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수면에 떠올랐다. 청년은 낚싯대를 걸어놓을 곳이 없자 자신의 다리 아래 놓고 발로 낚싯대를 밟은 채 가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거대한 물체를 향해 가프를 내리찍었다. 퍽, 퍽 하고 가프가 괴물의 등에 박히는 소리가 처녀의 귀에까지 들렸다. 처녀는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런데 우와악, 하는 비명이 들려오는 바람에 처녀는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처녀의 눈에 청년이 낚싯줄에 발목이 감겨 물로 딸려가는 게 보였다. 처녀는 비명을 지르며 물가로 달려갔다. 청년은 물에 들어가서도 안간힘을 다해 가프를 휘둘렀다. 그러나 청년은 곧 물을 먹으면서 힘을 잃었다. 처녀는 계속 비명을 질렀다.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떠오른 청년의 시신은 낚싯줄로 칭칭 감겨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저수지의 물을 모두 빼서 그 괴물을 처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물을 빼고 나서도 괴물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프 역시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를 의심했다. 처녀는 울면서 죽을 방법만 생각했다. 그렇게 꼬박 한달이 흘렀다.

뻥! 뻐벙…

“그런데 말이지. 그 아가씨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에 정말로 저수지 가운데로 뭔가 천천히 떠오르는 거야. 처음에는 꼭 시체 같더라니까. 소름이 쫙 끼치데. 그런데 그놈 등에 뭐가 꽂혀 있어. 그게 그 아가씨 애인이 꽂았다는 가프 아닐까 싶더라고. 내가 아가씨한테 조용히 저수지 가운데를 가리키니까 보자마자 즉시 기절을 해버리데. 내 낚싯줄이 잉어용 육호선이었는데 그거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더라고. 사실 나한테는 발파용 다이너마이트가 하나 있었어. ‘꽝’이라고 하는 거 말야. 예전에 초보 시절에 하나 얻었던 거야. 써본 적은 없었지. 그건 낚시가 아니라 학살이니까. 어쨌든 그놈은 사람을 죽인 괴물 아니겠어? 가프를 돛대같이 몸에 꽂고도 살아 있는 괴물. 시간은 없고 잡기는 해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차로 뛰어가서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돌아왔지. 불을 붙이고 던질 때까지도 그놈은 유유하게 보름달 달빛을 즐기고 있더라고.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니까 엄청난 소리가 나는데….”

정대는 문호를 돌아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문호가 말했다.

“뻥!”

삼재가 영문을 몰라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데 문호와 정대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뻥, 뻐벙, 뻥이야. 뻥이요!”

삼재는 그제야 사태를 깨닫고 상 모서리를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

“에라이, 이 나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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