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편견을 가지고 저를 경멸하거나 손가락질하실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 저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자 이 자리에 용기 내 올라왔습니다.”
2024년 12월17일 부산 동래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유진(가명)씨는 최근 연이어 열린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시민 중 한명이다. 그가 12월11일 부산 서면 집회에서 했던 연설은 카메라에 포착돼 퍼져나갔는데,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 영상 조회 수는 500만 회를 훌쩍 넘겼다. 유진씨의 연설이 주목받은 이유는 다른 여느 연설처럼 ‘대통령 퇴진’만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주십시오. 더불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오로지 여러분의 관심만이 약자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라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유진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2016년 ‘촛불 집회’ 때는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부 이야기들이 이번 집회에선 조명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사회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이 소외된 이들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애써온 덕에 이뤄진 진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하게 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진씨의 연설에 큰 관심과 응원이 쏟아졌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슬픔들을 조목조목 썼는데 그게 반향이 있어서 감사했어요. 좀 많이 놀랐어요. 이렇게 공감해주신 게 기쁘기도 했고, 공감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했어요. 외면받는 발언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용기를 내서 저 또한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는 걸 입증해 보이겠다라는 결연한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그 순간 ‘2등 시민이라고 할 만한 것에서 정말로 이 집회의 일부가 됐구나’와 같은, 그런 감격을 받았어요.”
—집회는 공지를 보고 나가셨나요.
“제가 ‘엑스’를 많이 봐요. 집회 일정이 올라오기도 해서, 서면에서 저녁 7시쯤 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집회에 나가는 건, 그냥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이 사회의 시민이니까. 계엄 날 마침 제가 일을 쉬는 날이었거든요. 자기 전에 ‘핸드폰 한 번만 볼까’하고 봤는데 ‘계엄? 이게 무슨 소리야?’ 싶어서 계속 새로고침을 했거든요. 뉴스가 계속 넘어가는데 그때 정말 정말 많이 놀랐고 굉장히 걱정했어요.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계엄이 터졌을 때마다 시민들이 많이 목숨을 잃었잖아요. 혹시라도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또 총에 맞는 사람들이 나올까 봐, 그게 굉장히 두려웠는데 직접적인 유혈사태 없이 끝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문제를 연설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성소수자라는 걸 정체화한 뒤로 비슷한 친구들을 굉장히 많이 사귀었어요. 특히 성소수자 말고도 장애인이라거나, 성노동자라거나, 이주민 가정이라거나. 그런 친구들과 엑스에서 많이 팔로우하고, 서로 가치관을 주고받았던 게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자기 문제의식이 있고, 내가 소수자라는 인식이 있어야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소외돼 본 경험’이라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라도 그런 걸 겪어본 친구와 하나도 겪어보지 않은 친구는 확실히 차이가 있더라고요.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다르니까요. 그런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게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알게되니까 연대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싶어요.”
—‘소외된 경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럼 이번 정권은 그런 소외된 계층들이 더 소외되는 정권이라고 보시고 비판하신 건가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묵과하고 방치했죠. (성확정 수술을 받은 뒤 2020년 1월 육군으로부터 강제 전역 처분을 당한) 고 변희수 하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죠. 가끔씩 주변에서 부고 소식이 들릴 때가 있어요. 사실 목숨을 끊는 이유를 하나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우리가 ‘거절당한다’는 사회의 의사를 계속해서 접하다 보면 누구든지 정신이 끊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경험을 끊임없이 당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게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런데 그런 혐오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정권이 들어서면, 그런 발언을 더 조장하거든요. 국가인권위원장 발언, 여성가족부 폐지론, 유튜버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함께 혐오발언이 늘어난 것도 그렇고, 전세계가 우경화 흐름인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우경화되고 있다고 보세요.
“조금 급진적인 발언일 수 있는데, 자본주의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분노가 커지고. 또 한편에선 인터넷의 영향이 꽤 크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문장, 이미지 몇 개로만 타인을 판단하고. 그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2016년 촛불집회 때도 나가셨다고 들었는데, 이번 집회 현장과 분위기가 어떻게 달랐나요.
“전체적으로 혐오 발언이 많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얼굴 사진에 여자 나체 사진을 합성한다거나, ‘암탉’이라거나 비하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집회에선 ‘혐오 발언을 지양하자. 우리는 그런 것도 없이도 정권을 비판할 수 있다’고 사전공지를 하더라고요. ‘아, 이런 게 드디어 주류 감성이 되었구나’ 싶어 뿌듯함을 느꼈어요. ‘페미니스트들이 애써 노력한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같은 게 느껴져 굉장히 좋더라고요.”
—집회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어떤 게 있었나요.
“소녀시대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나오는 순간 너무 벅차더라고요. ‘퀴어 퍼레이드’를 하면 아이돌 노래를 항상 많이들 써왔어요. 그래서 집회 음악에 아이돌 음악을 쓰는 건, 어느 정도 ‘퀴어 퍼레이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아이돌 노래들 보면 굉장히 결연하고, 각오를 다지고, 투쟁하겠다는 가사의 노래가 꽤 많아요.”
—윗 세대에 익숙한 집회는 ‘노동조합 연맹체’ 형태의 집회인데 느낌이 달라진 것 같다고들 합니다.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어요. 그런데 저는 이게 먼저 피 흘려준 싸워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백남기 농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정말 목숨을 깎아서 시위하신 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제 안전하고 평화롭게 이렇게 싸울 수 있는 거죠. 윗 세대가 투쟁해 온 결과로, 우리가 드디어 약간 즐길 수 있는 단계가 된 거죠.”
—이번 집회에서 2030 여성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실 젊은 여성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투쟁을 계속 해왔어요. 드디어 ‘우리가 발견된 거’라고 생각해요. 옛날에 극장에서 일하는 여성, 공장 노동자 여성, 이런 분들도 계속 투쟁을 해오셨잖아요. 어느날 갑자기 짜잔 등장한 게 아니라 꾸준히 있었는데 이제 드디어 세계가 우리를 봐준 게 아닐까 싶어요.”
—집회 현장에서 연설할 때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야유를 각오하고 올라갔다고요.
“각오를 했죠. 사실 저는 제가 하는 일 때문에 굉장히 많은 모멸과 경멸을 겪어봤거든요. 인터넷 상에서 ‘성노동자’라고 밝히고 ‘우리가 안전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계정을 한 번 만든 적이 있는데, 정말 매일같이 욕설이 쏟아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욕 좀 더 먹지 뭐’ 생각했어요. 저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 두렵진 않아요. 저는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많고 그 사람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아니까요.”
—당시 인터넷 상에서 말씀하신, 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었나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지만, 저희는 비범죄화에 대해 가장 많이 말하고 있어요. 많은 소위 말하는 ‘아가씨’들이 단속을 피해서 위험한 일을 감행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위험한 물건을 삼키고, 인격을 말살당하는 발언을 듣고 하거든요. ‘범죄자로 낙인 찍어 더 위험한 일을 하게 만들지는 말자’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많은 성노동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성노동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약간 자존감을 위한 면도 조금 있지 않나란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엄연히 ‘노동자’고,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이다라는 뜻에서요.”
—일을 처음 시작하셨던 계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에게 맞았던 가정폭력의 역사가 좀 있고, 또 제가 몸이 많이 아파서 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었는데 방임되기도 했어요. 보다 못한 친구 중 한 명이 밥 먹여주고 재워줄테니 와라, 하더라고요. 한여름에 정말 더울 때도 아버지는 에어컨을 못 틀게 했는데 친구는 에어컨도 시원하게 틀어주겠다면서요. 며칠 지내다가 엉겁결에 일을 시작하긴 했어요. 사실 가정폭력의 역사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다양한 질병을 얻었고, 몸도 자주 아파요. 이 일을 한다고 하면 ‘왜 그런 지저분한 일을 하냐, 쿠팡이라도 뛰어라’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건강이 못 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대체 얼마나 건강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길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이 노동을 하는 여성은 대체로 20대에서 40대가 많고, 부양할 자식이 있거나 병원비가 굉장히 많이 나가는 아픈 가족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인상깊게 본 영화나 책이 있을까요.
“미국 영화인데 ‘플로리다 프로젝트’란 영화가 있어요. 영화 배경이 플로리다에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노숙자들이 굉장히 많이 쏟아졌던 때인데, 주인공은 모텔을 전전하면서 사는 아기 엄마에요. 정말로 근근이 이것저것 물건 팔면서 살다가 도무지 안 되겠어서 성노동을 합니다. 그런데 성노동을 하면서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화장실 안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아이는 놀고 있으라고 하고 그동안 남자를 상대했어요. 그게 국가에 발각되면서 ‘아동학대’란 이유로 아이랑 엄마랑 이별하게 되거든요. 그 아이는 엄마를 굉장히 좋아하고, 엄마도 가난하지만 아이한테 굉장히 잘해줬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데 정말로 마음 아픈 영화였어요. 보면서 펑펑 울었죠. 책은 최근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정말 좋았어요. 빈곤층 아동이 성장할 때까지 인터뷰를 꾸준히 해서 모아놓은 책인데 우리 사회에서 가난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왜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지 담겨있어요. 아이들이 그 구조 속에 갇혔기 때문에, 거기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이야기가 굉장히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2016년 촛불집회 이후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나아질 거란 기대가 있었을 것 같은데, 민주당 정부는 그 기대에 부응했나요.
“크게는 안된 것 같긴 합니다. 아쉬움이 많죠. 우리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결혼을 못 하고 있고. 엘리베이터 설치 같은 기본적인 장애인 이동권 문제도 해결이 안 됐고요. 국회 구성원을 보면 다주택자 비율이 굉장히 높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들이 굉장히 많고, 또 여성의 비율도 너무 적잖아요. 인터넷에서 보고 감명 깊었던 글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 국민의 비율을 그대로 국회가 반영해주지 않는다’는 지적이었어요. 우리의 국회에도 택배 노동자, 가난한 사람, 성노동자, 고등학교 졸업자 이런 사람들이 존재해야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자들만 대변하는 국회는 정말 곤란하죠.”
인터뷰가 끝나고 카페에서 나오는 길, 유진씨는 “지금 일을 하면서 학비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늦었지만 대학에 가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활동가로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부산=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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