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홍준표가 알아야 할 사실…대구는 15년째 무지개 물결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이미’ 참가기
등록 2023-06-23 22:07 수정 2023-06-28 00:23
2023년 6월17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둘러싸고 경찰과 공무원이 대치하는 유례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연합뉴스

2023년 6월17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둘러싸고 경찰과 공무원이 대치하는 유례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연합뉴스

2023년 6월17일 어스름한 새벽 5시께,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진행하는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서울 대학로에서 처음 진행된 이래 각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며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시민축제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이른바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서 15년째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부는 놀라곤 한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2009년 대구 동성로에서 처음 열렸고, 최근 몇 년간은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진행됐다. 2017년 부산과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전까지 서울 외 지역에서 유일하게 진행된 축제이기도 하다.

법원의 멋진 판결문

사실 이날 나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이 준비한 ‘퀴어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퀴어버스는 서울에서 대구의 퀴어들과 연대하기 위해 조직됐으며, 6월17일 아침 8시 40여 명을 싣고 출발했다. 그보다 이른 시간 홀로 기차를 타야 했던 이유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터무니없는 집회 방해 때문이었다.

매년 대구를 비롯해 각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할 때 극우 개신교 단체를 비롯해 반성소수자 단체들의 개최 방해, 혐오 선동이 벌어지곤 한다. 올해는 이들의 공격이 더욱 거셌다. 이들은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고발하고 축제 개최를 금지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까지 신청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랄까. 법원은 이 가처분에 멋진 판결문으로 화답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와 같은 집회의 경우, 그 집회가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표현의 자유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은 왜 축제가 열려야 하는지에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었다.

이렇게 법원을 통해서도 끝난 논쟁에 불을 붙인 이가 있었다. 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홍 시장은 “성다수자의 권익도 중요하다”며 앞의 가처분 신청을 지지한다더니, 가처분이 기각되자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불법 도로점용’이라며 축제 개최를 방해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축제 전날인 6월16일에는 현장에 직접 와서 공무원들에게 도로 점용을 막으라는 지시도 했다. 그리하여 대구시와 대구중구청은 공무원 450여 명을 동원한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경찰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으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당일 아침 현장으로 먼저 내려갔다.

무지개 물결을 만든 연대의 힘

6월17일 아침 8시, 대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노란색과 초록색 민방위복을 입은 공무원들과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들 사이,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나를 비롯해 연대를 위해 달려온 시민 30여 명이 있었다. 정당, 노조, 시민인권단체 활동가와 지역 주민 등 구성은 다양했지만 즐겁고 안전한 축제를 위한 연대의 마음은 모두 같았다.

대구 동성로를 지나며 퀴어퍼레이드 트럭에 올라 ‘동성혼 법제화/혼인평등’을 함께 외친 시간은 새벽부터 달려온 피로를 싹 잊게 해줬다. 박한희 제공

대구 동성로를 지나며 퀴어퍼레이드 트럭에 올라 ‘동성혼 법제화/혼인평등’을 함께 외친 시간은 새벽부터 달려온 피로를 싹 잊게 해줬다. 박한희 제공

오전 9시30분, 축제 무대와 부스를 설치하기 위한 차량이 시민들과 함께 현장으로 다가오자 공무원들이 앞을 막아섰다.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공무원들의 시도는 곧 경찰에게 제지됐다. 경찰과 공무원이 대치하는 유례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불법 도로점용이라고 외치는 공무원들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경찰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다소 복잡했다. 그렇게 집회의 자유를 외치는 경찰이 어딘가에서는 노조의 야간 농성을 저지하고, 장애인의 행진을 가로막으며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당일 공무원들의 근거 없는 방해를 뚫고 축제가 열린 것이, 원칙을 지킨 경찰 덕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15년 동안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해오며 대구의 성소수자 존재를 드러내고 연대를 만들어온 조직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며 함께 연대하고 모이고 말할 권리를 외쳐온 이들이 만든 변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가 있기에 경찰이 지방자치단체장의 몽니에 부딪혀도 집회의 자유라는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

오전 10시30분, 경찰도 공무원도 물러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이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스갯소리로 홍 시장의 몽니로 인해 예년보다 흥한 축제였다. 부스 40여 개와 연인원 4천여 명이라는 가지각색의 시민이 각자의 무지개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점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축제의 하이라이트, 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됐다. 찌는 듯한 무더위도 소수의 혐오세력도 무지개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동성로를 지나며 퀴어퍼레이드 트럭에 올라 ‘동성혼 법제화/혼인평등’을 함께 외친 시간은 새벽부터 달려온 피로를 싹 잊게 해줬다.

퀴어, 더 많이 드러내고 모이자

저녁 7시30분, 서울로 가는 퀴어버스에서 이날의 경험을 다시 돌아봤다. 1년 중 하루지만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성소수자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지지하는 시민들과 연대하는 경험은 그 이후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한편 축제는 수많은 성소수자가 동료 시민으로서 이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회를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축제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홍 시장이 이야기하는 ‘주요 도로에서 집회하지 말라’ 같은 말은 어불성설이다. 주요 도심의 행진을 통해 성소수자의 드러냄, 그 자체가 퀴어퍼레이드, 자긍심 행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드러내지 말라’ ‘보이지 말라’는 혐오와 낙인에 맞서 15년간 이어진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이번에 이뤄낸 성과처럼, 도로와 광장을 뒤덮는 무지개 물결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이어져야 한다.

박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