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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는 ‘오세훈 서울시’의 시민이 아닌가…서울광장도 못써

광장 사용 신고서 같은 날 신청한 회복콘서트…오세훈 시장의 ‘큰 그림’이라는 의혹 밝혀야
등록 2023-05-12 22:10 수정 2023-05-16 16:37
2022년 7월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수만 명의 시민이 참여해 거리를 행진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2022년 7월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수만 명의 시민이 참여해 거리를 행진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2023년 7월1일에는 제24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다. 애초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5월3일 서울시가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이하 광장운영위)를 통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제출한 사용 신고를 끝내 불수리했다. 대신 그날 서울광장에서는 CTS기독교TV가 주최하는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이하 회복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2015년 이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려 최근엔 수만 명이 참가한 서울퀴어퍼레이드와는 달리, 회복콘서트는 누리집조차 없는 신생 행사다.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포함됐으나 사실상 기독교 계열 행사로, 서울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급조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 어디서 나왔나

조직위는 행사 90일 전인 4월3일, 서울시에 광장 사용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틀 뒤인 4월5일 서울광장 홈페이지의 스케줄표를 통해 같은 날 신청된 다른 행사의 존재를 인지했다. 서울시는 해당 행사의 주최를 조직위에 고지하지 않았다. 4월6일, ‘한국교회언론회’는 논평을 내어 같은 날 중복 신고된 행사인 회복콘서트의 개최를 옹호하며 “서울광장에서 음란한 동성애 축제는 불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종교계 언론은 논평을 전하며 회복콘서트의 광장 사용 승인과 서울퀴어퍼레이드 불허를 촉구했다.

4월12일, 서울시의회 이성배 국민의힘 의원(예결산위원장)은 부활절 퍼레이드가 성공적으로 열렸다며 “오는 7월1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는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시민 모두가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다수 언론에 밝혔다. 4월17일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 준비위원회’는 ‘동성애퀴어축제 서울광장 사용승인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준비위원회에는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단체가 포함됐다.

4월24일,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은 회원들에게 단체문자를 보내 광장운영위가 5월 초 열릴 예정이라고 알리며 퀴어축제 반대 민원을 넣을 것을 촉구했다. 조직위는 제보를 받아 이 내용을 인지하고, 광장운영위 개최 사실을 확인하려 서울시에 재차 연락을 시도했으나 전화는 계속 불통이었다.

왜 중복 일정을 조정할 수 없었을까

조직위는 서울시에 회복콘서트의 주최 단위가 어디인지 여러 번 질의했으나, 서울시는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과 함께 날짜 조정 가능성이 있는지 조직위에 물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광장 사용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적법한 절차를 거친다면 서울시민 누구나 사용료를 내고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다. 중복 신고 단위가 있으면 조정절차를 거치고 이후 광장운영위를 열어 수리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 서울시는 조정 과정을 적절하게 진행하지 않았다. 중복 행사 주최 쪽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날짜를 바꿀 것이냐는 담당자의 전화 한 통을 조정절차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전에 타단체 행사와 날짜가 겹쳤을 때 대면 회의를 해 날짜를 양보한 일 등이 있었기에, 조직위는 당연히 조정 회의가 진행되리라 여기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광장운영위가 열린다는 소식은 당일 새벽, 서울시 누리집(서울정보소통광장)를 통해 알려졌다. 그 회의 결과는 서울퀴어퍼레이드의 광장 사용을 불허한다는 결정이었다.

광장운영위 결정이 어떤 근거로 내려졌는지, 광장운영위 위원들이 특정 종교에 편향적 옹호를 한 것은 아닌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회복콘서트가 서울시의회 예결산위원회를 통해 예산이 배정된 행사라는 의혹에 대한 해명도 필요하다.

2019년 퀴어문화축제의 일부로 서울광장에서 ‘핑크닷’ 행사가 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2019년 퀴어문화축제의 일부로 서울광장에서 ‘핑크닷’ 행사가 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자긍심 행진’은 공권력에 대한 저항

서울시의 불수리 소식이 알려진 뒤 서울시 홈페이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국내외 언론은 서울시 결정에 반대하는 여론으로 뜨겁다. 서울퀴어퍼레이드 참여가 확정된 각국 대사관들은 행사 개최 여부를 연일 문의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울시가 중복 신고 단체 간 조정절차를 생략한 이유다. 회복콘서트의 서울광장 사용을 확언한 서울시 의원의 발언 배경도 밝혀져야 한다. 말로만 시민위원회라고 하면서 반 이상 서울시 공무원과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채워진 구성원들의 이력, 특히 특정 종교 관련 이력도 공개돼야 한다. (종교 관련 행사 심의에는 당연히 이해당사자가 배제돼야 한다.) 회복콘서트가 서울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오세훈 시장이 계획한 ‘큰 그림’이라는 의혹, 근본적으로는 서울시의 각종 ‘시민’위원회가 사실은 행정의 책임을 민간으로 떠넘기기 위한 꼭두각시놀음이라는 의혹 역시 검증돼야 할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퀴어문화축제 같은 전세계적 성소수자 행사인 자긍심행진(프라이드퍼레이드)은 성소수자 공간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에서 비롯됐다. 성소수자가 집 밖에서 모일 수도 없던 시절, 성소수자가 조용히 모인 술집을 경찰이 급습해 사람들을 체포한 것에 저항한 스톤월 행진이 그 시작이다. 서울시는 편법과 위법으로 공적 공간에서 성소수자를 몰아내고 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삶으로 더는 살지 않겠다는 성소수자 ‘시민’들의 저항은, 마치 스톤월 행진과 같이 다름 아닌 공권력에 의해 촉발됐다.

정규리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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