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검사의 직접수사(수사 개시) 범위 축소가 애초 검찰청법 개정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7월30일 당·정·청이 합의해 발표한 검찰청법 시행령을 보면,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는 오히려 검찰청법보다 더 확대됐다. 전문가와 관계자는 검사의 직접수사를 거의 축소하지 않아 애초 검찰 개혁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직접수사’ 6대 범죄가 가지를 치면
앞서 7월20일께 청와대가 법무부(검찰)와 행정안전부(경찰)의 의견을 조정해 마련한 검찰청법 시행령 초안이 비공식적으로 공개됐다. 이 시행령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검사의 직접수사 범죄가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검사의 직접수사 범죄는 검찰청법이 개정돼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6대 범죄로 제한됐다. 시행령에는 이를 세분화해 부패범죄 11가지, 경제범죄 17가지, 공직자범죄 5가지, 선거범죄 20가지,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2가지 등 모두 56가지 범죄로 불어나 있다. 게다가 56개 범죄 안에는 하위 범죄로 수백 개 범죄가 또 들어 있다. 예를 들어 6대 범죄 중 하나인 선거범죄엔 20가지 하위 범죄가 포함된다. 이 20가지 하위 범죄 중 하나인 공직선거법 범죄 안에는 다시 30가지 하위 범죄가 포함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선거범죄를 보면 검사가 공직선거법상 모든 범죄를 수사할 뿐 아니라, 선거범죄 전반을 다 수사한다. 이렇게 넓게 확보해 입맛에 맞는 범죄 수사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지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장(변호사)은 “검사의 직접수사를 이렇게 폭넓게 허용하면 수사권 조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수사 검사 수를 대폭 줄이는 조직 개편을 하거나, 검사의 직접수사를 박탈하는 내용으로 검찰청법을 재개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검사의 직접수사를 일부 허용했지만, 큰 틀에서 검사의 수사권을 제한했다. 법률과 시행령 외에 법무부와 검찰의 내규, 훈령까지 정비하면 검사의 직접수사 건수가 (2018년 3만7천 건에서) 5천 건 이하로 줄어든다고 (법무부로부터)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검찰청법에서 검사의 직접수사를 허용한 6대 범죄 외에 마약범죄와 사이버범죄를 추가 허용한 것도 비판받고 있다. 먼저 마약범죄는 통상 경제범죄에 포함되지 않는데, 무리하게 경제범죄에 넣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1조를 보면 마약범죄는 경제범죄가 아니라 ‘보건 관련 범죄’이고, 가중처벌될 때도 ‘특정경제범죄’가 아니라 ‘특정범죄’로 다뤄진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마약범죄가 진화하고 있어 경찰이 다 커버하지 못할 수 있다. 검사가 모든 마약 수사를 하는 것은 아니고, 대규모 마약 수출입 정도만 수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의 한 관계자는 “마약은 국내 생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99% 이상이 수입된다. 사실상 모든 마약 수사를 허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인력·조직 유지 위한 검찰의 꼼수?
경찰과 전문가들은 검찰이 마약범죄 수사를 요구한 이유는 조직과 예산 유지 목적이라고 해석한다. 현재 마약 수사와 관련해 검사 수는 40여 명, 수사관은 290여 명, 2020년 예산은 49억원가량 된다. 경찰의 마약 전담 수사관은 380명가량이며, 형사과 경찰관 9천여 명이 마약 수사를 할 수 있다.
사이버범죄를 대형참사에 무리하게 포함한 것도 검찰의 인력·조직 유지 목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사의 직접수사를 허용한 사이버범죄는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을 교란, 마비, 파괴하는 범죄’로 사이버 테러나 대규모 해킹을 말한다. 그런데 대형참사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거나 다치는 매우 끔찍한 사건이나 사고’라는 뜻이어서, 사이버범죄는 대형참사에 포함되기 어렵다. 그래서 상위법인 검찰청법의 위임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사이버범죄 수사 인력과 역량은 경찰에 충분히 있다. 경찰의 사이버범죄 수사 인력은 25개 조직, 2천여 명이지만, 검찰은 100여 명에 그친다. 국제 공조 수사 실적도 경찰은 연 4천 건, 검찰은 연 30건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굳이 검찰에 직접수사를 허용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부패범죄에 ‘배임수증재’ 범죄를 금액 등 제한 없이 다 포함한 것도 입줄에 오른다. 비슷한 범죄인 뇌물범죄는 공직자, 또는 3천만원 이상일 때, 사기·횡령·배임은 5억원 이상일 때로 검사의 수사 범위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배임수증재는 기업 관련이 많아서 변호사로서는 아주 좋은 먹거리(수임 사건)다. 전관 변호사를 봐주고 검사도 퇴직 뒤 먹거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포함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밖에 형사소송법 시행령의 주관 기관을 기존처럼 법무부 단독으로 할지, 아니면 법무부와 경찰이 공동으로 할지도 논란거리다. 기존에는 검사가 경찰에 수사지휘권을 가졌으나, 앞으로는 검사와 경찰관이 서로 독립적 수사권을 지니기 때문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계속 단독으로 주관한다면 수사와 관련한 유권해석이나 입법 과정을 계속 검찰이 주도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여러 논란에 대해 이번 시행령을 조정한 청와대와 법무부의 관계자들은 “현재 협의 중인 사안이어서 사실을 확인하거나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 권한 축소, 왜 이리 소극적인가”
전문가들은 이번 시행령이 검찰 개혁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검찰 개혁을 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경찰의 수사권 독립 외에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는 별로 개선된 게 없다. 그동안 검찰의 숱한 권한 남용 사건을 경험해온 문재인 정부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검찰의 권한 축소에 소극적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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