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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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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환경부 따로 놀지 마라”

아프리카돼지열병 전문가의 여섯 가지 조언
등록 2019-11-06 10:01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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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는 전파 경로가 아주 단순하다. 오가는 길이 눈에 보인다. 구제역과 달리 공기 전파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길게 3년을 잡고 방역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사이 1년 정도 소강상태가 온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계속 주시하고 지속해서 대책을 보완해나가야 한다.”

10월14~17일 한국의 방역 현장을 둘러보고 스페인으로 돌아간 호세 마누엘 산체스 비스카이노 박사(사진)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잡기 위한 여섯 가지 처방’을 에 보내왔다. 산체스 박사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 산하 아프리카돼지열병 표준연구소장이다.

농가가 가장 분노하는 것은

첫째,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퇴치하려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의 갈등을 조정하고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농가 방역은 농식품부 일이고, 농가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멧돼지를 관리하는 것은 환경부 일이기 때문이다. 두 부처 위에서 힘있게 명령할 수 있는 ‘파워맨’이 있어야 한다. 상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두 부처 공동의 전문위원회도 가동하라.

(실제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초기 농식품부와 환경부의 협력이 원활하지 않았다. 따로 놀았다. 환경부는 멧돼지 감염 조사에 소극적이었고 개체 수를 줄이는 데도 나서지 않았다. 농식품부는 자기 일이 아니었다. 멧돼지 관리에 구멍이 생겼던 것이다. 양돈농가에서 정부를 크게 원망하는 이유다.)

둘째, 단계별 전략이 필요하다. 시기별·지역별 대책을 미리 세워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6개월 지속될 경우, 1년 뒤 다시 발생하는 경우, 그리고 발병 농장이 (지금은 14개이지만) 100개 이상일 경우, 또 200개 이상일 경우 대책을 마련해둬야 한다. 그래야 곧바로 대응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지역 단위로 전면 살처분하는 방식으로는 계속 갈 수 없다. 구제역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백신이 없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엉뚱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올 수도 있다.

셋째, 전국적으로 멧돼지 실태를 조사해 지역별 차단 전략을 촘촘하게 세워라. 차단 지역을 빠져나가더라도 좁은 범위에서 막아야 한다. 멧돼지 개체 수 조절은, 경기도 북부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해야 한다. 멧돼지 사체 주변의 환경 조사와 소독도 철저히 해야 한다. 야생동물이 주변 흙을 옮겨,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넷째, 돼지농장 현장과 멧돼지를 알면서 역학 조사 역량도 갖춘 전문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 전문가가 없다면 최대한 빨리 양성해야 한다.

다섯째, 거듭 강조하지만, 철저한 농장 방역으로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다. 이중으로 울타리를 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멧돼지가 웬만한 울타리 하나쯤은 뛰어넘거나 부숴버린다. 파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축사 등에 방충망을 쳐라. 외부 차량은 농장 내부로 들이지 말아야 한다. 불가피하게 차량이 들어오더라도, 사람이 내리면 절대 안 된다.

축사에 파리도 들어오지 못하게

여섯째, 서로 비난을 자제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환경부와 농식품부 그리고 농가가 서로 다투기 쉽다.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백신도 없다. 원인을 찾기도 힘들다.

산체스 박사는 “여섯 가지 대책을 당장 시행할 것”을 당부하면서 “내일이면 늦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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