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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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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위한 국회의 시간

‘공수처’ 설치 자유한국당 “21대 국회가 해야” 주장하는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4당이 뜻을 모아야
등록 2019-10-19 15:24 수정 2020-05-03 04:29
조국 법무부 장관(맨 왼쪽)이 사퇴 하루 전인 10월13일 국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검찰개혁 고위 당정협의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맨 왼쪽)이 사퇴 하루 전인 10월13일 국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검찰개혁 고위 당정협의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제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10월1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직을 내려놓으며 거듭 강조한 것은 ‘검찰개혁’이다. 검찰개혁은 조 전 장관이 36일이라는 짧은 기간 장관 자리를 유지한 명분인 동시에 자리를 내려놓는 명분이기도 했다. 조 장관이 36일 동안의 성과로 꼽는 것은 국회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대통령령과 법무부령 제·개정 등 제도 변화다. 검찰 직접수사 부서인 특수부를 서울·대구·광주 3곳만 남기고 축소하거나 심야 조사와 별건 조사에 제동을 거는 등 11가지 ‘신속추진 검찰개혁 과제’를 발표했고, 이는 앞으로 검찰과 논의해 현실화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16일 법무부 장관 대행을 맡고 있는 김오수 법무부 차관을 청와대로 불러 검찰개혁 방안을 10월까지 마무리하라고 지시하며 자신이 직접 검찰개혁 고삐를 잡아당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11가지 ‘신속추진 검찰개혁 과제’ 발표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검찰개혁의 핵심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 즉 검찰의 힘을 분산해 줄이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모두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하는 과제로 조 전 장관이 언급한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은 ‘국회의 시간’을 뜻한다. 조 전 장관의 사퇴와 ‘서초동 촛불’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정부와 여당은 검찰개혁 법안 처리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정의당 등이 검찰개혁 법안과 이에 연동된 선거법 개정을 두고 각각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정부와 여당에는 여전히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조 전 장관 사퇴를 지렛대 삼아 검찰개혁 법안을 10월 말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는 4월 국회 폭력 사태로 상징되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추진 당시 어정쩡하게 봉합한 국회 내 갈등의 골을 다시 드러내야 하는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4월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처리가 지지부진한 법안(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을 한데 묶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패스트트랙은 법안이 여야 갈등으로 하염없이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인데 개별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상임위원회 논의(최대 180일), 법제사법위원회(90일), 본회의(60일)를 다 합쳐 최장 33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되고, 찬반 표결을 하게 된다.

문제는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과 함께 공수처 설치를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들의 범죄행위를 수사하고 죄를 따질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공수처 설치 목적은 고위 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겠다는 것인데, 특히 ‘셀프 수사’ 논란에 항상 휩싸이는 검찰을 겨냥한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수처를 뺀 검찰개혁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말한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는 21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황교안 당대표)며 제동을 걸고 있다. 공수처가 독립적인 기관을 표방하지만 대통령 뜻에 따라 악용될 수 있다는 게 자유한국당의 입장이다. “공수처는 결국 대통령이 맘대로 할 수 있는 독재적 수사기관이 될 것이다”(황교안 당대표) “공수처는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수사청, 검찰청”(나경원 원내대표) 등의 발언이 계속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다. 검찰 힘을 줄이자면서 또 다른 사정기관을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 권력기관의 권한과 힘을 축소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다른 특별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지 않는다”(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주장이 여당 안에서 나오기도 한다.

바른미래당 “선거법 처리가 먼저”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끝내 반대할 경우 패스트트랙 4당 연대를 살려 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려 한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하더라도 민주당(128석)과 정의당(6석), 평화당(4석),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9석), 무소속·바른미래당 일부 의원 등의 표까지 모으면 처리가 가능하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일단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17일 “남은 시간 동안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성실하게 협상하겠다. 자유한국당의 변화된 태도를 거듭 촉구한다”며 자유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패스트트랙 4당이 뜻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각 당의 엇갈리는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4월 패스트트랙 합의 당시 4당은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 순서대로 법안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이 조 전 장관 사퇴와 함께 선거법보다 공수처법을 먼저 처리하려고 나서자 바른미래당은 선거법 처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공수처 법안도 현재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한 안이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는데 두 법안의 차이도 좁혀야 한다. 바른미래당 법안은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 동의를 받아 공수처장을 임명하도록 하는 등 민주당 법안(공수처장 대통령 지명, 국회 인사청문회)보다 국회의 공수처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에는 동의하지만 민주평화당은 선거법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정의당은 검찰개혁 법안 처리 뒤 선거법을 처리해도 괜찮다는 입장으로 각 당의 시각이 엇갈린다. 이렇다보니 10월16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만나 법안 처리와 관련해 첫 협상을 했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법안 심사 기간 해석도 각각

민주당이 10월29일부터 본회의에 검찰개혁 법안을 올려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희망 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상임위원회 논의 최대 180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최대 90일을 거쳐 본회의에 올라가게 되는데, 민주당은 법사위 심사 기간 90일을 생략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10월29일부터 본회의 처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 법안이 법사위로 넘어온 9월2일부터 90일의 심사 기간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 여야 협상이 제대로 안 되면 12월 초에야 본회의에 관련 법안이 올라간다. 민주당이 야 3당과 의기투합해야만 검찰개혁 법안이 올해 안에 처리될 수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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