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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보며 생각을 비운단다

물고기 반려인 송준의씨
등록 2019-05-02 10:36 수정 2020-05-03 04:29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현관에 들어서니 물비린내가 났다. 거실 양쪽으로 놓인 3층짜리 어항들을 보니 이해가 됐다. 지난 4월23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빌라에서 만난 송준의(50)씨 이야기다. 송씨 집에는 어항이 14개 있다. 수초를 분재하는 한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어항들에는 스리랑카에서 온 블랙루비, 어항을 청소하는 플레코, 사람들이 많이 기르는 구피, ‘열대어의 황제’ 디스커스 등 10여 종이 100마리 정도 있는 걸로 추정된다. 13개 어항마다 종별로 나뉜 물고기를 세던 송씨도 마릿수를 세다 멈췄다. “못 세겠는데요.”

송씨는 어릴 때부터 ‘애어가’였다. 비단잉어를 기르던 아버지의 영향과 관악산에서 뛰놀며 송사리, 가재 등을 잡던 게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열대수족관에서 카디널테트라를 본 날 밤에는 잠도 자지 못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갖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심지어 훔치는 꿈까지 꿨어요.”

그 뒤 약 40년간 송씨의 인생에서 물고기를 제외한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송씨는 ‘애어가’를 넘어 ‘반려어’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삶은 꽤 번거롭고, 신경 쓸 일투성이다. 하루에 2~5번 먹이를 줘야 하고, 물도 갈아줘야 한다(환수). 먹이를 많이 먹는 치어는 분비물 양이 많아 매일 물을 갈아야 한다. 그래서 송씨 집 베란다에는 환수를 위한 큰 물통 2개와 호스 5~6개, 수석 등이 자리를 온통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일상에서 반려어는 1순위다. 반려어를 둘 데가 없어 이사를 망설이기도 수차례였다. 최근 새로 산 집에도 반려어를 옮기기 어려워 이사를 포기했다. 현재 20년 넘게 살고 있는 집도 10년 전 도배한 게 전부다. “베란다는 수평이 안 맞기도 하고 어항을 옮기는 게 꽤 어렵거든요.” 가족 여행도 가장 길게 간 게 1박2일이다. 지난해 송씨를 빼고 아내와 아들만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지난해 여름 최악이라는 더위에도 에어컨을 많이 틀지 못했다. 수온에 예민한 열대어가 스트레스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수 때문에 수도요금은 관악구민의 서너 배 정도 나온다. 전기요금도 매달 10만원 이상이다. “가족이 별로 안 좋아하죠. 동호회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다수가 그래요. 아내와도 종종 다퉜어요.(웃음)”

환수와 먹이 문제로 송씨는 긴 여행과 시원함을 포기했지만, 반려어는 포기할 수 없다. “내 욕심 때문에 작은 어항에 가둬 미안하지만, 반려어들을 보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힘든 일이 있을 때 어항에서 반려어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 멍하게 생각을 비울 수 있더라고요.”

반려어가 치어를 키우는 모습에선 세상을 배우기도 한다. 전에 기르던 헤켈디스커스 부부는 치어를 애틋하게 돌봤다. 먹이를 주면 교대로 먹고, 사람이 오면 치어들을 숨기기도 했다. “요새 아동학대 문제를 보면 ‘물고기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려어와 함께 산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하기도, ‘붕어에 미친 사람’이라며 이해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반려어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수다가 폭발한다. “반려견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반려어는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죠. 그리고 다른 반려동물에 비해 물고기는 죽으면 처리하기가 수월해 쉽게 키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좋아서 기를 순 있어요. 하지만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욕심내 기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애어가’에서 반려어와 동반자로서의 삶을 사는 송씨가 사람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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