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조합을 둘러싼 아이쿱생협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징계와 법적 대응, 거친 상호 비난으로 1년 이상 노사가 대치하면서, 소통은 끊어지고 감정의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다. 협동조합 생태계 안의 노사 갈등이란, 우리 사회에선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다. 아이쿱생협이 맞닥뜨린 노조 사태의 귀추가 주목된다.
11월3일 충북 괴산, 스무 돌을 맞은 아이쿱생협이 잔치를 열었다. 27만 조합원과 3천여 생산자들의 십시일반 출자로 세운 괴산자연드림파크가 첫선을 보이는 날이었다.
괴산의 자연드림파크는 100만㎡(30만 2500평) 넘는 터에 1천억원 이상을 투자한 대규모 친환경 유기농식품 산업단지다. 전국 220개 자연드림 매장의 물품을 생산하는 공방과 물류센터가 모여 있고, 영화관·카페·수제맥줏집과 소규모 호텔이 들어서 있다. 괴산에 앞서 2014년에는 전남 구례에 첫 자연드림파크를 세웠다. 아이쿱 생협은 올해 예상매출 5800억원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다.
잔치가 열리던 시각, 자연드림파크의 출입구 바깥쪽에선 다른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십 명이 아스팔트 바닥에 모여 앉아 “이게 아이쿱 윤리냐”고 외쳤다. 지난해 7월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노조를 결성한 이들과 지지자들이었다. 행사무대와 아스팔트 양쪽에서 들려오는 스피커 소리가 혼란스럽게 뒤섞였고, 잔칫상을 받아든 조합원들의 마음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소통 없어” vs “노조 선 넘어” 팽팽</font></font>조합원과 직원들,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경영진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고 억지 부릴 수도 있다. 경영진에서 그걸 잘 소통해, 원칙은 지키면서도 사람을 품어안는 쪽으로 해결해야 할 것 아니냐. 괴산 행사장에서 이순규 (노조 사무장)씨를 봤다. 폐인처럼 넋 놓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법적으로 아이쿱이 나설 일 없다 하는데, 정말 그건 아닌 것 같다. 조합원들은 ‘구례 파크’를 아이쿱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 조합원들이 만들었다. 법적으로 갈라졌다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조합원들은 잘 모른다. 혹여 법적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법의 잣대만 들이밀면 되는가.”
“초기 시행착오의 상처가 너무 커졌다. 구례에 내려갔을 때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조 쪽 사람을 만난 적 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자기한테 유리한 관점으로만 페이스북에 일방적인 글을 올렸더라. 그때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멀리 온 느낌이다.” “아이쿱에서 오래 일한 직원이다. 경영진이 마음에 안 들지만, 노조에서도 아이쿱에 애정이 있는지 이젠 의심스럽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대외적 망신 주기에 나선다.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초기 대응 미숙해 노조 탄압 빌미</font></font>‘아이쿱의 노사 갈등’은 법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구례자연드림파크의 노사 갈등이다. 구례 파크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했고, 생협 매장에 물품을 공급하는 생산자들의 조직이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구례자연드림파크 안의 수제맥줏집 ‘비어락’의 부엌에서 시작된다. 내용은 단순하다. 2017년 5월 이곳의 식자재로 직원들이 사사롭게 밥을 지어 먹는다는 내부 제보가 들어왔다. 관리회사인 구례클러스터는 자체 조사를 통해 2년에 걸쳐 3천여만 원의 식자재 재고가 구멍 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곧바로 징계 절차에 들어가, 여러 차례 인사위원회를 열어 10월 무렵 관련자들에게 해고와 정직, 직위 해제 등 무더기 중징계를 내렸다. 노조는 그 와중인 7월에 설립됐다. 노조의 지회장과 사무장도 관리책임자로 징계 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이들이다. 당시 근무자 500여 명 가운데 30여 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지역생협의 한 이사장은 “돌아보면 그때 초기 대응이 미숙했던 것 같다. 비어락 직원들의 잘못이 없다 할 수는 없지만, 과도한 중징계에 나서면서 아이쿱이 노조를 탄압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쿱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사업자연합이사회의 한 멤버는 “처음 노조를 겪었고, 그에 대한 준비도 안 돼 있었다”면 서 “이렇게 일을 키우지 않을 수 있었는데 서로에게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구례클러스터 쪽 징계에 맞서, 노조원들은 지방과 중앙의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고 징계사유가 없거나 징계가 과도해 모두 부당한 징계라는 판정을 받아냈다. 노동위는 “비어락 식당에서 직원들이 나눠먹거나 집으로 가져간 식자재의 피해액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산정할 증거자료가 없다”고 판정이유를 설명했다. 노조 쪽은, 직원들이 식사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매장에서 팔다남은 물품을 식자재로 넘겨받았기 때문에 폐기처분 물량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사이 노조원과 지지자들은 페이스북 등에서 맹렬하게 아이쿱을 비난했고, 아이쿱 쪽은 연이은 명예훼손 고소·고발로 강경 대응했다.
노사 갈등 2라운드는 이른바 외주화 사건이다.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반년 사이,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는 조합원의 소속회사가 사라지거나 새로운 외주업체로 일이 넘어가는 복잡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구례클러스터(이후 오가닉클러스터로 사명 변경) 쪽에서는 징계가 취소된 청소 업무 조합원을 인스케어(사회적기업)로, 식당에서 일하던 조합원을 오가닉메이커협동조합으로 각각 고용 승계를 추진했다. 조합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6월엔 14명의 조합원 중 5명에게 괴산 근무 발령을 냈고, 해당자들이 지금까지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아이쿱 쪽에선 “청소와 식당 업무를 사회적기업과 다른 협동조합에 넘긴 것은, 노조와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추진해오던 조직 정비의 하나였고, 괴산으로 발령 낸 것은 구례에 해당 사업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부결된 합의안… 노조 “아이쿱이 고용 보장” </font></font>지난 8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가 나서서, 노사 합의가 타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8월22일 노사 양쪽은 노조 활동 보장과 전임 유급자 인정, 인스케어 등에서 고용 승계하되 구례자연드림파크 입주기업체 협의회에서 지속적인 고용 보장, 노사 신뢰 회복과 상생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공동 구성 등을 내용으로 한 잠정 합의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총회를 열어 그 안을 부결했다. 조합원들은 원래 보직으로 복직시켜줄 것, 무급 기간 중 급여를 지급할 것, 그리고 협의회가 아니라 아이쿱생협의 사업연합회에서 지속적인 고용 보장을 약속할 것을 추가로 요구했다.
잠정 합의안이 부결된 뒤 아이쿱생협 쪽은 “법대로 간다”는 강경한 분위기다. 특히 아이쿱생협에서 직접 고용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아이쿱의 책임 있는 한 관계자는 “소비자 조합원들의 최대 출자로 자연드림파크를 만들었지만, 각 사업체들이 수익을 내는 시점에 맞춰 생산자들에게 그 지분을 넘겨왔다”면서 “아이쿱생협은 수많은 독립법인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데, 그중 한곳에서 발생한 갈등을 아이쿱이 직접 나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례 파크의 사용자는 입주기업체 협의회이지 아이쿱생협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당장 갈등이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의 건강한 대타결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합원들은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앞이 안 보인다”고 걱정하면서도, “노조를 품고 가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낸다.
8월 잠정 합의 테이블에 참석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변희영 부위원장은 “조합원들이 고용 불안 없이 빨리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통 크게 풀어나갈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은 “부도덕한 행동을 한 집단으로 몰린 노조원들과 노조 탄압 집단으로 욕먹은 아이쿱 양쪽 모두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다”면서 “8월 잠정 합의안에서 다시 출발해 플러스알파를 보태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는 “아이쿱 사태는 협동조합, 나아가 사회적경제 영역 안에 엄존하는 임금노동 원칙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구례자연드림파크와 아이쿱생협이 전혀 별개라는 형식적 법논리만 내세우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대타협을 이뤄내 다른 협동조합에도 좋은 모범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노조 협상 테이블에 나섰던 아이쿱생협의 한 간부는 “너무 상처가 커서 우리한텐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생채기 난 노사, 치유가 필요하다</font></font>아이쿱의 조직문화와 사업구조를 돌아보는 내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역생협 이사장을 지낸 한 활동가는 ‘정보 비대칭’의 문제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사장들도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공식적인 이야기를 조합원들한테 전달하기에 급급했고, 조합원들이 물어봐도 대답할 게 없어 마음들이 많이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아이쿱은 특정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는 비난과 오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아이쿱생협의 사업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 책임과 권한의 소재가 분명하지 못하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아이쿱의 한 열성 조합원은 “조합원들이 20년 동안 위에서 내려온 정책을 따르기만 하다보니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쿱 경영을 이끄는 한 간부는 “아이쿱 네트워크를 100개 가까운 조직으로 분화하고 있고, 서로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면서 “어떤 조직보다 민주적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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