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기무사령관(오른쪽)이 7월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중요시설 494곳 및 집회 예상 지역 2곳(광화문, 여의도)에 특전사 등으로 편성된 계엄 임무 수행군을 야간에 전차, 장갑차 등을 이용해 신속히 투입한다.”
2017년 3월3일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계엄령 문건)의 세부 계획을 담은 자료가 7월20일 오후 청와대에서 공개됐다. 상상에서나 있을 법한 서울 광화문의 탱크 진입이 현실이 될 뻔했다. 이뿐만 아니다. 국가정보원장을 국군기무사령관 아래로 두면서 정부조직을 장악하고, 신문·방송을 검열해 언론을 통제하며,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를 위한 포고령을 선포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드러났다.
야당 의원 무더기 체포 계획도세부 자료에는 신속한 국정 장악뿐만 아니라 안정적 운영을 위한 반헌법적 방법론도 담겼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77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이 국회 계엄 해제 의결에 불참하도록 하고, 불법시위에 참석하거나 반정부 정치활동을 한 (야당) 의원을 집중적으로 검거해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건 위법성과 시행 계획 여부, 문건의 배포 단위 등에 대해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양손에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와 합동참모본부가 2년마다 수립하는 계엄실무 편람을 들고 흔들었다. 계엄령 문건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뜻을 분명하게 밝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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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작성된 계엄령 문건에서 남은 쟁점은 ‘실제 어느 정도까지 준비했느냐’일 것이다. 이는 계엄령 문건의 마지막 장 ‘향후 조치’를 톺아보면 맥락이 잡힌다. ‘향후 조치’로 ‘:지속’이라는 제목 아래 세부 내용으로 ‘헌재 탄핵결정 선고 전후 진보(종북)·보수 세력 동향 추이’ ‘탄핵심판 결과 관련 집회·시위 양상 변화 등’을 언급한다. 이와 관련해 기무사 사정에 밝은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에 “당시 시민사회단체 동향을 포함해 광화문 등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를 이미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며 “기무사가 민간의 시위·집회 사찰을 정당화할 때 가장 쉽게 꺼내드는 것이 종북 동향 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보(종북)세력 동향, 집회·시위 양상 등을 사찰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계엄령 문건을 입안한 3처(방첩·대북정보)만 아니라 군인사 정보와 동향을 파악하는 1처도 계획에 참여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윗선이 어느 정도 개입했느냐’도 관건이다. ‘향후 조치’에는 청와대 등 윗선의 명령이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의명’에서 언급되는 ‘의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군이 의명이라는 단어를 쓰는 습관이나 탄핵심판일까지 7일이 남은 현실을 고려하면 ‘명령대로’ 대비 계획을 국방부·육본 등 관련 부대(기관)에 제공하고, 계엄(합수)기구 설치·운영을 준비하며, 계엄임무수행군 임무수행 절차를 구체화하도록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심판 일주일 전 기무사는 이미 국방부 직할부대가 아니라 정권의 친위부대로 탄핵 정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철저한 보안 대책 강구 下 임무수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음”이라는 문구도 의미심장하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계엄을 향한 기무사의 준비는 탄핵심판 당일까지 계속됐을 것이다.
황교안·박근혜 개입 여부 규명도 관건명령권자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처음부터 배제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기무 조직 내 우려에도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직접 책임지고 기획·검토했다”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다른 지휘계선을 통해 일을 진행했던 것으로 안다. 이는 수사에서 밝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관이 아니라면 지휘 책임에서 남은 것은 군 통수권자다. 실제 특별수사단의 수사는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나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데 집중되리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계엄이 실행될 가능성도 어느 정도였는지 따져봐야 한다. 군 전문가들은 기무사가 계엄령 문건 중 겉표지와 목차를 뺀 6쪽 중 3쪽을 ‘위수령’을 설명하는 데 할애한 이유에 주목한다. 우선 위수령은 발령 절차가 간단하다. 기무사는 계엄령 문건에서 “시위 양상이 위급할 경우 위수령을 발령한 후 방송·통신·신문 등을 이용해 담화문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군이 과거 위수령을 발령한 것은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1971년 교련 반대 시위, 1979년 부마항쟁 등 세 차례로 모두 ‘시위’가 원인이었다. 육군참모총장은 ‘군사상 필요’에 의해 위수사령관을 임명할 수 있다. 기무사는 시행 요건으로 “평화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되면서 경찰력만으로 중요시설 방호 및 시위대에 대한 통제 곤란”을 내세웠다. 위수령 제2조 3항에 있는 ‘군사상 필요’를 촛불 정국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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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령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시위대가 군 중요시설에 접근시 경찰 협조하 외곽 경계선을 확장시켜 조기 접근 통제’라고 언급한 내용을 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여기서 언급된 군 중요시설에 청와대가 포함된다. 계엄령이 아니라도 광화문 집회에 군이 등장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열 2위 육참총장이 왜 계엄사령관?당시 이순진 합참의장 대신 장준규 육참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했다는 점도 실행 가능성을 높이려는 방안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장 육참총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36기)으로 3사 출신인 이 합참의장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청와대 김관진 안보실장(육사 28기)의 통제가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박범계 의원이 우병우 민정수석이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통해 장 총장에게 인사 청탁을 한 사실을 폭로한 내용을 보면, 청와대가 기무사령관을 통해 육참총장 출신 계엄사령관을 통제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당시 장 총장은 우 전 수석의 청탁대로 인사가 이뤄지지 못하자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조 사령관에게 사과했다고 전해졌다. 계엄령 문건에는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당시 2차장은 대표적인 ‘우병우 라인’(최윤수)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기무사가 청와대를 보위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치밀하게 계엄을 준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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