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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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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모아 힘 모아 ‘에너지 농사’

선도적인 에너지 전환 기업 구실 하는 에너지협동조합

올해 처음 배당한 서울 ‘태양과 바람’ 등 초기 안착 중
등록 2017-10-12 01:41 수정 2020-05-03 04:28
2014년 서울 은평구 공영차고지 관리동 옥상에 설치한 태양과바람 2호기.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 제공

2014년 서울 은평구 공영차고지 관리동 옥상에 설치한 태양과바람 2호기.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 제공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앞바다. 배를 타고 10분쯤 달려가면, 20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나란히 줄지어 허공을 가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그중 10기는 코펜하겐 시민들이 자력으로 세워 운영하는 발전기다.

“시민 조합원들이 1억7500만크로네(약 250억원)를 출자해 미델그루넨(Middelgrunden)이라는 풍력발전 협동조합을 세웠지요. 호기심 많고 에너지 감수성 높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열어 조합원으로 참여했고요. 설계사이거나 전기 전문가인 조합원들의 재능 기부로 건설비도 많이 절감할 수 있었어요.”

‘에너지 농사’ , 같이 지으실래요?

2011년 기자를 안내한 미델그루넨 협동조합의 스테판 나에프 이사는 이 회사에서 무보수로 일하고 있었다. 미델그루넨의 풍력발전기는 코펜하겐 전기의 4%를 생산해 4만 가구 이상에게 전력을 공급한다고 했다. “수익성이 낮은데도 귀한 돈을 출자한 조합원들한테 그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알리고 공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는 2년마다 조합원을 초청하는 신고리 홈커밍데이를 엽니다. 발전기 꼭대기의 탁 트인 전망대에서 조합원들이 멋진 잔치판을 벌이지요. 물론 출자 배당도 하고요.”

유럽 각국에선 협동조합이 에너지 전환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에너지 시민’의 참여를 조직하고 자력으로 초기 자금을 조달해 지속 가능한 발전 사업을 구축하는 데 효과적인 기업 형태이기 때문이다. 발전 사업으로 인한 이익이 특정 대기업이 아니라 주민 공동의 몫으로 귀속된다는 점도 에너지협동조합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독일에선 2010년 270개이던 재생에너지협동조합이 현재 850개 이상으로 급증했고, 이미 원전 1기와 맞먹는 총 1G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에너지 농사, 같이 지으실래요?’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역 입구의 은평구 사회적경제허브센터 3층. 사무실로 들어서는 현관 벽에는 에너지협동조합의 조합원을 모집하는 산뜻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옥상마다 발전소가 지어진다면? 100개소에 12년간 30억!!!” “그 수익금으로 동네에 착한 일자리를 만들고, 탈핵과 에너지전환 활동을 펼치고….” 이런 취지에 동감하는 은평구 주민 조합원들이 10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냈고, ‘태양과 바람’이라는 예쁜 이름도 지었다. 4년여 사이 조합원은 290여 명으로 늘어났고, 총출자액은 2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3월4일 정기총회에선 사상 첫 조합원 배당도 실시했다. 출자액의 3%를 현금으로 지급했다. “이익을 냈다고 배당을 해주더군요. 은행 금리보다 좀 높게요. 아, 햇빛을 모으면 전기가 되고 돈이 되는구나, 돈 많은 기업이 아니어도 시민들이 조금씩 힘을 모으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실감했습니다.” 은평구 구산동 주민 박지현(45)씨는 “앞으로도 여유가 생기면 은행 말고 협동조합에 적금 들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은 설립 이듬해인 2014년 은평 공영차고지 정비동 옥상에 각 50kW 규모의 햇빛(태양광)발전기인 태양과바람 1호기와 2호기를 세웠다. 2015년엔 난지물재생센터 유입펌프장 옥상에 100kW의 태양과바람 3호기를, 지난해엔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옥상에 90kW의 태양과바람 4호기를 설치했다. 이들은 대략 300kW의 발전설비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올해부터 상근 직원도 2명으로 늘렸다.

“햇빛 모으면 전기도 되고 돈도 돼요”
2016년 볕 좋은 봄날, 에너지협동조합 조합원 가족들이 태양과바람 3호기로 즐거운 소풍을 다녀왔다.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 제공

2016년 볕 좋은 봄날, 에너지협동조합 조합원 가족들이 태양과바람 3호기로 즐거운 소풍을 다녀왔다.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 제공

민성환 이사장은 “발전 용량이 조금씩 커지면서 kW당 200만원에 이르던 시설 투자비를 150만~170만원대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약간 이익을 냈는데, 큰마음 먹고 배당을 실시하고 상근 직원도 1명 늘렸어요. 조합원 다수가 에너지 전환에 일조한다는 마음이 강한 분들이라 배당 요구가 크진 않아요. 그래도 에너지협동조합이 사업체로서 굴러가는구나, 조합원들이 확인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지요. 지역 일자리도 창출하고요.” 그는 “은평 지역은 협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편이라 열성 조합원이 많다. 적금을 깨서 1천만원 출자한 조합원도 있고 100만원대 고액 출자자도 다수다”라고 말했다. 태양과바람 조합원들은 지난해 5월 태양과바람 3호기 등을 탐방하는 가족 소풍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에도 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이는 협동조합이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참사가 위기의식을 고조시켰고, 2012년 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이 협동조합 사업체를 설립하는 구체적인 길을 열었다. 2013년 33개의 에너지협동조합이 생겨나더니 최근까지 무려 112개로 늘어났다. 다만, 실질적인 발전 사업을 벌이는 에너지협동조합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쪽은 소속 사업체가 기껏 25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아직은 공적 지원 없이 초기 안착이 쉽지 않은 탓이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발전설비 용량만으로 보면 국내 에너지협동조합은 아직 말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미하다”면서 “하지만 에너지협동조합은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창조하는 선도적인 에너지전환 기업 구실을 한다”고 미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어 “협동조합이 에너지 시민성을 발현하고 배양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햇빛발전이나 풍력발전을 추진할 때마다 벌어지는 주민 갈등을 극복하는 장치로도 협동조합은 효과적이다. 발전사업의 이익이 특정 대기업이 아니라 주민 조합원 공동의 몫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2013년 초 생겨난 경기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에너지협동조합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사업 자립의 최소 규모인 발전설비 용량 1MW(1천kW)에 이른 유일한 협동조합이기도 하다. 조합원이 700명을 넘어섰고, 지금까지 건립한 8기의 햇빛 발전기의 발전 용량은 876kW이다. 추진 중인 5기의 발전기가 정상 가동되면 발전 용량이 1500kW 규모로 늘어난다. 이창수 이사장은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청정에너지인 햇빛발전을 홍보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나아가 경제적 이익도 누리는 1석4조의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안산시민햇빛은 경기도와 안산시의 정책적 지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에 경기도의 에너지선도사업 자금 7억원을 지원받았다. 연 4%의 이자를 지급하는 시민펀드 가입도 상시적으로 받고 있다.

원불교·한살림도 ‘햇빛 발전’ 박차

종교계와 생활협동조합에서도 에너지협동조합 사업에 나서고 있다. 햇빛발전기를 설치할 자체 공간 확보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조직적인 조합원 모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불교는 교단 차원에서 ‘햇빛발전소가 협동조합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연에너지를 공동체 이익을 위해 협동으로 활용하는 것이 교법 정신의 사회적 실천이다.” 원불교의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은 전국 각지의 교당 옥상과 주차장 등을 활용해 22기의 햇빛발전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작게는 0.5kW부터 224kW 규모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5만원 이상 출자 조합원이 420명에 이르고, 출자총액도 3억원을 넘어섰다. 둥근햇빛발전도 연 4% 금리를 지급하는 ‘십시일반 햇빛펀드’ 가입을 받고 있다.

생협의 맏형으로 조합원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한살림은 “한살림의 소비지와 생산지마다 햇빛발전소를 세우는 꿈”을 꾸고 있다. 한살림 조합원들이 설립한 햇빛발전협동조합의 강석찬 이사장은 “대안에너지 운동은 한살림의 생명살림 정신과 맞닿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한살림햇빛발전은 경기도 안성물류센터 옥상에 438kW의 대규모(?) 햇빛발전기를 설치했으며, 대전물류센터와 경기 횡성산내마을에도 각각 31kW의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다. 2015년 정기총회부터 올해까지 3년째 2~4%의 조합원 배당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400명 가까운 조합원들의 배당금(600만원)을 기부받아 라오스 산골마을에 햇빛발전기를 세우는 착한 사업도 벌이고 있다.

시민발전협동조합의 싹이 힘차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도적 난관도 도처에 있다. 태양과바람의 민성환 이사장은 “민간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우니 지자체 저리 자금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고, 서울에서는 발전기를 설치할 공간 확보가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입찰 방식으로 운영되는 지금의 재생에너지 현물거래 시장에선 전기 판매 가격이 널뛰기한다”며 “햇빛발전 거래 시장이 도박장 같아 안정적 경영을 해나갈 수 없다”고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소규모 햇빛발전 사업체에 대한 발전 차액을 보상하는 기준가격(고정가격)구매제도(FIT)의 재도입도 요구한다. 전국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연합회는 한국전력이 자회사를 통해 비싼 임대료 등을 제시하며 학교 옥상의 햇빛발전 사업 싹쓸이에 나선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한 부소장은 전력 시스템의 구조 개편을 끌어갈 에너지협동조합의 미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협동조합이 햇빛발전 생산이라는 주변적 위치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 협동조합들은 햇빛발전보다 규모가 큰 풍력과 바이오가스 발전에도 뛰어들 뿐 아니라, 우리의 경우 한전이 독점한 배전과 판매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미국, 897곳 협동조합이 11% 전기 공급

실제 미국에서는 농촌 지역 송배전 사업에서 협동조합이 지배적 위치에 있다. 미국농촌전기협동조합연합회(NRECA, www.electric.coop) 자료를 보면, 미국에선 농촌 지역에 근거를 둔 897개 전기협동조합이 47개 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전국 송배전망의 13%를 차지하고, 총발전량의 5%와 총 전기 판매량의 11%를 공급한다. 협동조합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사업체·가정·학교·농장이 1900만 곳을 넘어섰고, 협동조합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지역이 미국 전체 면적의 3분의 2에 이른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의 저자인 미국 예일대 로스쿨의 헨리 한스만 교수는 “전기 없는 농촌 지역에 농민들이 직접 배전협동조합을 세웠고, 이것이 대규모의 발전 및 송전 협동조합으로 통합 발전했다”고 기술했다. 또 “협동조합은 전기 소비자와 기업의 이익이 합치하기 때문에 독점으로 인한 비용 누수를 줄일 수 있고, 이 점을 인정해 미국의 30개 주는 협동조합의 요금을 규제하지 않으며 10개 주는 협동조합에 대해 간소화된 규제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 면에서도 전기협동조합은 안정적 이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으로 평가받아, 민간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정부 지원금의 부실률이 0.001%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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