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어젠다였던 국민대통합, 문화융성은 임기 내내 제대로 이행되지 않다가 오늘에 와서야 빛을 발한다. 전국 각지에서 한마음으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으니까.
매주 열리는 대규모 집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평상시 혼자서, 동네에서 국민의 뜻을 표시하는 방법은 없을까.
페이스북 페이지(<font color="#C21A1A">https://www.facebook.com/hankyoreh21</font>), 카카오톡 옐로아이디, 집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긴 싸움, 지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을지 작은 실천의 방식들을 물었다.
간호사 최원영(30)씨는 11월19일 토요일 집회 때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에 나가 박근혜 정권의 권력자들과 최순실 일당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퍼포먼스를 했다. 정경유착을 상징하는 일당들끼리 강강술래를 하고, 빈 상자를 들고 가는 검찰을 연기하며 조롱하는 모습에 시민들이 곁에서 사진을 찍고 웃음을 터트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우리 동네에서 “퇴진하라” </font></font>깃발엔 딱딱하고 엄중한 단어 대신, 국민을 공분케 한 정유라의 ‘돈도 실력’이라는 말에 빗댄 ‘지지율도 실력이야’라는 말을 썼다. 손으로 하나하나 오린 가면 1천 개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자체적으로 정한 하야의 상징색인 하얀색 손수건을 나눠주며 떠나가는 박근혜에게 흔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퍼포먼스에 동참한 청년들 대부분은 집회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했다면 반응이 더 폭발적이었겠지만, 이들은 기존 집회 공간보다 청년들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집회에 동참하지 못한 거리의 시민들과 뜻을 함께 나눴다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11월19일 신촌에 모인 청년들과 같은 스마트폰 세대는 기존 집회 문화에 양념 역할을 하며 시민운동의 역사에 새 이야기를 더하고 있다. 개인적 성향이 강하고 ‘병맛’ 코드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청년 세대의 마이너한 감성은 굳이 ‘토요일 광장’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시공간에서 “대통령 퇴진”을 외친다.
이렇게, 광장 바깥 동네에서 웅성대는 크고 작은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동네 곳곳에서 열리는 작은 모임들이 그것이다. 청년유니온은 11월25일 서울 동북, 서남, 북서권 지역 세 곳에서 청년 모임을 열었다. 청년들은 이날 함께 영화를 보고, 최근 시국을 바라보며 느낀 생각을 나누며 집회에 가져갈 하야 피켓을 함께 만들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회사나 동네에서 ‘시국 티타임’을 갖자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뉴스는 얼마나 많았나. 각자 따라가고 있던 이슈를 공유하고, 뉴스를 정리해서 나누는 ‘시국 스터디’를 하며 수다 떠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제안이 흥미롭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와이파이 이름을 ‘박근혜 퇴진’으로</font></font>집에서, 혼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도 있다. 독자들이 보내온 의견에는 집집마다 국기 게양대 혹은 베란다에 ‘하야’ 또는 ‘퇴진’이라 적은 깃발이나 현수막을 걸어놓자는 제안이 다수를 차지했다.
독자 정정국씨는 “거주지에서도 상시적으로 퇴진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합시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고 추운 날씨 등으로 집회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국민도 상대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의사표시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독자 박성호씨는 이미 집 베란다에 걸어둔 현수막 사진을 보내왔다. 김소정씨와 허효진씨도 “베란다 플래카드 내걸기, 차량에 깃발 꽂고 다니기” 등이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 방안으로 내세웠다.
김인호 독자는 국민의 뜻을 표시하는 상징물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어떤 것이라도 표시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네요. 노란 리본 매달기처럼요.”
조왕현씨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잡히는 와이파이 이름을 ‘박근혜 퇴진’이나 ‘박근혜 탄핵’으로 설정하자는 제안을 보내왔다. 손호씨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촛불 사진으로” 올리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자고 했다.
촛불의 시간 대신 암전의 시간을 제안하는 독자도 있었다. 아이디 ‘빨간안경’을 쓰는 독자는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혹은 정해진 시간에 “각 가정과 사업장의 불을 1분 동안 꺼서 국민의 의지를 알리는 건 어떻겠느냐”고 전해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어떤 방식이든 서로 응원하자</font></font>혼자 깃발을 걸든, 동네의 소소한 시국 걱정 모임에 참여하든 시민들은 서로의 방식을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11월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만난 시민 김민지씨는 “무엇이 됐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서, ‘침묵하는 4900만이 있다’는 상대 진영의 환상을 깨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다양한 방식으로 집회에 나서는 간호사 최원영씨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의료인들이 전문심폐소생술이란 것을 배울 때, 그 과정에 ‘건설적 개입’이라는 부분이 있어요. 같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환자를 살리는 동료가 실수했을 때, ‘멍청아 지금 에피네프린을 줘야지!’가 아니라 ‘지금 에피네프린을 줄래요?’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 멍청이라고 하는 순간 상대는 그 사람이 실수하길 기다렸다가 똑같이 ‘멍청아, 너나 잘해’라고 받아치지 않을까요? 싸움의 방식 등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을 놓고 서로 다투기보다는 모두가 새 판을 짜기 위한 큰 그림을 함께 고민해나가면 좋겠어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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