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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벨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폐사한 5살 흰고래 ‘벨로’ 2년 전 벨루가 취재했던 기자가 띄우는 작별 편지
등록 2016-04-13 15:08 수정 2020-05-03 04:28

“벨루가가 죽었대.”
지난 4월2일 저녁, 친구한테서 너의 소식을 들었어. 친구가 보여준 기사에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사는 흰고래 ‘벨루가’ 한 마리가 폐사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지. 친구 앞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못 믿겠다’라며 흥분하듯 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담담해지더라. 수족관과 동물원 동물을 취재하면서 이미 여러 번 죽음을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동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최근 2년 동안 국내 수족관 고래 7마리가 죽었어. 하지만 네가 그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어.
신비롭고 몽환적인 너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있는 흰고래 ‘벨루가’ 3마리 중 가장 어린 5살 수컷 ‘벨로’가 최근 폐사했다. 정용일 기자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있는 흰고래 ‘벨루가’ 3마리 중 가장 어린 5살 수컷 ‘벨로’가 최근 폐사했다. 정용일 기자

너의 이름은 ‘벨로’, 5살 수컷 벨루가였지. 넌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있는 3마리 벨루가 중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작고 어린 개체였어. 9살 수컷 ‘벨리’와 5살 암컷 ‘벨라’, 그리고 너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상징이었어. 너를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을 다녀갔을까. 사람들은 하얗고 둥근 너의 몸이 부드럽게 헤엄치는 걸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고 느꼈을 거야. 나도 그들 중 하나였어. 너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그래서 네가 있는 수족관들은 몽환적 느낌의 음악을 틀어놓기도 해. 환상적인 너의 이미지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겠지.

너를 처음 봤던 날을 잊지 못해. 2년 전 여름, 롯데가 잠실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 개장을 앞두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54만달러(약 6억2400만원)를 주고 벨루가 3마리를 들여왔다는 소식을 들었어.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김영환 간사와 함께 강원도 강릉의 한 대학교 해양생물연구교육센터 건물로 달려갔지. 그곳에서 벨루가를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거든.

“푸우~ 푸우~. ”

천막 건물 안에서 들리던 너의 숨소리는 크고 거칠었어. 사진과 영상으로만 너를 봤다면 작고 귀엽다고만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너도 벨리처럼 다 자라면 몸길이가 5m를 넘을 만큼 커지는데 말이야. 차가운 동해의 물을 끌어올리는 3개의 펌핑 장치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파란 수조 안에서, 너의 미끈하고 하얀 몸이 슬그머니 올라올 때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어류와 갑각류 등 수산자원 연구를 주로 해온 대학에 벨루가의 ‘임시 보육’을 맡겼던 점이나, 그 보답으로 롯데가 대학 및 학생들에게 상당한 지원을 한 점, 대형 해양포유류인 네가 사용하던 큰 수조가 네가 떠난 뒤 송어 양식 연구에 쓰이는 상황 등등이 난 조금 우습기도 했어. 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통해 자본이 야생동물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기업 입장에서도 넌 분명히 귀한 존재였을 거야. 네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어버리면, 아쿠아리움을 찾는 관람객이 줄어들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빨리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거니.

야생과는 다른 사육 환경이 문제?
2014년 벨루가를 취재한 뒤 최우리 기자가 스케치한 그림이다. 최우리 한겨레 기자

2014년 벨루가를 취재한 뒤 최우리 기자가 스케치한 그림이다. 최우리 한겨레 기자

만약 수조 크기가 좀더 넓었다면 어땠을까. 1년 넘게 살던 강릉의 수조 크기는 지름 10m 남짓으로 다소 작았어. 잠실의 수조(1250t)는 외국의 수조와 비교해볼 때 크게 문제 삼을 만큼 작지는 않았어. 하지만 외국에서도 대형 해양포유류가 지내는 수조의 적정 크기 기준을 동물을 사육하는 수족관협회에서 지정하니까. 야생에 살던 네가 살기에는 어떤 기준도 만족스럽지 않았을 거야.

소음과 진동에 그대로 노출된 것은 조금 더 심각한 문제였어. 동물보호단체는 너의 수조를 보러 갈 때마다 이 문제를 제기해왔지. 특히 생태설명회를 하는 쪽의 수조 높이는 사람 가슴 높이밖에 되지 않았어. 사육사가 네 옆에 서서 먹이를 먹여줄 정도였으니까. 관람객의 박수 소리와 공연용 음악 소리를 견뎌야 하는 사육 환경이 너에게 스트레스를 줄까봐 걱정됐어. 열대어가 살 만큼 비좁은 어항에, 몸집이 큰 네가 우스꽝스럽게 들어가 있는 느낌이 관람객에게도 좋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동물보호단체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너희끼리 싸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곤 했어. 실제로 9살 수컷 벨리의 눈 주위에 큰 상처가 났던 적도 있었고, 너희 몸에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기도 했어. 물론 야생에서도 상처는 나지만 말이야. 하지만 관람객과 사육사가 떠난 뒤, 너희가 어떻게 밤을 보내는지 우리는 잘 몰라. 다만 고래 전문가들이 말하길, 수족관에 사는 고래 중에는 종종 번식기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끼리 다툼을 할지 모르니 일부러 같은 성별로만 사육하는 경우도 있대. 물론 롯데처럼 다른 성별을 섞어서 사육하는 경우도 있고.

난 너를 보면서 ‘유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했어. 30여 년 전부터 전시와 쇼 목적으로 이용해온 큰돌고래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큰돌고래쇼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제는 좀더 새로운 너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넌 큰돌고래보다 신비롭고 평화로운 이미지잖아.

2012년 여수엑스포에서 너를 처음 본 뒤 불과 2년 만에 국내 벨루가 수가 여수한화아쿠아리움(3마리), 거제씨월드(4마리), 롯데아쿠아리움(3마리)까지 10마리로 늘어나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우리의 욕망이 더 새롭고 신비로운 너에게로 향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야. 동물보호단체는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환경부가 추가 고래류 수입을 하지 못하도록 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해.

아직 너의 부검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어. 아쿠아리움에 물어보니 4월 중순께 공식 발표를 할 예정이래. 다만 네가 다른 고래들보다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알려줬어. 듣기로는 최근에 넌 5살 벨라와 같이 감기에 걸렸다가 벨라만 나았다고 해. 넌 통 밥을 먹지 못하고 컨디션이 나빴다고.

너에게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

전문가들도 쉽게 사인을 추정하지 못하고 있어. 아마 기업의 수족관 운영과도 관련돼 있으니 말하기 조심스러울 거야. 2년 전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환경부를 통해 받은 ‘2009년 이후 폐사한 고래의 사인’ 자료를 보면 수족관 돌고래의 사인으로는 패혈증과 바이러스 감염, 심장마비, 뇌부종 등이 가능해. 특히 폐질환이나 패혈증, 감염 등은 사육 환경이 좋지 않을 때 걸리는 질병이야. 만약 너도 그랬다면 난 화가 날 것 같아.

“엄마 젖 떼자마자 팔려와서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네.”

친구와 내가 안타까워 한 말이야. 세상엔 죽음이 많지. 너의 죽음은 금방 잊혀질 거야. 하지만 아쿠아리움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수족관 돌고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조금 용서가 될까. 벨로야, 고생 많았어. 잘 가렴.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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